생성형 AI의 콘텐츠 산업 적응기
최근에 유튜브에서 우연히 접한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을 듣자마자 취향 저격이었는데, 이후 플레이리스트의 모든 곡들이 AI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의 댓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였으면 속았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을 수도 있었을 텐데 반감이 크게 들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AI 콘텐츠의 반감을 줄일 수 있었을까요?
AI 기술이 지금처럼 상용화 및 고도화되기 전에는 '창작'의 영역이 AI의 한계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AI가 창작의 보조 도구이자 창작자 그 자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AI 생성 콘텐츠 소비 경험 및 태도 관련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도 몇 번씩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접한다'는 응답이 73.9%에 달하고, '사람이 제작한 콘텐츠 못지않게 AI 생성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인지한다'는 응답이 66.3%를 차지하였습니다.
하지만 익숙함과는 별개로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반감은 여전히 콘텐츠 업계 및 제작자의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AI 생성 콘텐츠 소비 경험 및 태도 관련 조사'에 따르면, 'AI가 생성한 콘텐츠가 신기하긴 하지만, 자주 접할수록 부정적인 감정이 커지는 것 같다'는 응답이 55.6%, '왠지 모를 불쾌감이 든다'는 응답이 48.0%로 절반에 달했습니다. 이제는 무턱대고 생성형 AI를 활용하기보다 콘텐츠에 대한 반감을 줄이고 호감을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AI를 활용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1) 필수불가결의 완성도
아무리 쉽고 빠르게 AI가 제작을 해준다지만 AI를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것은 냄비에 재료만 넣고 맛있는 요리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알맞은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꼼꼼히 결과물을 검수하고, 적정 범위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의 판단 하에 인간의 손을 거쳐야만 합니다. AI 활용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를테면 'AI스러움'이 콘텐츠의 컨셉이거나 부득이하게 AI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등의 상황이 아니라면, 콘텐츠 홍수 속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콘텐츠에 대한 반감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입니다.
최근에 AI로 어설프게 편집된 아이돌 그룹의 사진이 공식 계정에 게재되어 팬들의 반감과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실존 인물을 활용한 콘텐츠' 및 '단순 상품 이상으로 가치와 관계성이 요구되는 콘텐츠'의 경우 반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유튜브 '정서불안 김햄찌'는 온라인 게임인의 애환을 잘 담아내어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고 더불어 AI를 잘 활용하여 완성도가 높은 콘텐츠를 제공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2) 적합한 목적의 전달과 달성
전곡이 AI로 제작된 플레이리스트에 반감이 들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는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이용하는 목적에 있습니다. 저는 '특정 상황 및 분위기에 맞는 / 낯선 음악을 / 플레이리스트로 가볍고 빠르게 찾아 듣고 싶어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종종 이용하곤 합니다. 이는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의 'MZ세대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듣는 이유'에서도 비슷하게 볼 수 있는데요. 조사에 따르면, '무료로 들을 수 있어서'라는 응답이 24.0%로 1위, '내가 모르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라는 응답이 15.7%인 2위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AI로 생성된 음악'이라는 사실과 무방하게 콘텐츠의 소비 목적을 달성하였기 때문에 크게 반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해당 영상의 댓글에서도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보다는 '음원 플랫폼에서 들을 수 없어서 아쉽다'는 반응을 더 많이 보였습니다. 이처럼 AI 생성 콘텐츠를 통해 세분화된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기 용이해지기 때문에 소비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더 쉽고 편리한 환경에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선의의 목적이라 할지라도 여느 인간 창작물처럼 호불호는 여전히 있을 것이며 모두를 충족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나, 기존 원작자의 창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무단 사용하거나 독창성 없이 획일화된 모방 결과물을 대량생산하는 경우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원작자나 그들의 팬덤에 한정되는 것뿐만 아니라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반응입니다.
일부 생성형 AI 서비스에서는 저작권이 없는 독자적인 음원만 학습데이터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목적을 무턱대고 충족하기보다는 슬롯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적절한 범위에서 목적을 전달하고 달성할 수 있도록 콘텐츠 생산 및 공급의 가이드라인이 뒷받침되어야만 합니다.
(3) 적절한 정보의 제공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AI 생성 콘텐츠 소비 경험 및 태도 관련 조사'에 따르면, 'AI가 만든 콘텐츠를 배포할 때 AI 제작 여부를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81.6%, '워터마크 등 AI 제작 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80.3%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국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EU,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AI 사용 여부에 대한 표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올해 1월부터 '인공지능 투명성 확보' 등의 조항이 포함된 AI 기본법이 시행되어 현재는 계도 기간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생성형 AI에서는 콘텐츠에 가시/비가시형 워터마크를 적용하고 있으며 콘텐츠 플랫폼에서는 AI 활용 여부를 게시자가 설정할 수 있도록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설정이 의무가 아닌 각 플랫폼 서비스 기준(유튜브, 인스타그램)에 따른 권장 사항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필터링 등을 통해 콘텐츠 소비 전에 AI로 제작한 콘텐츠를 사전에 제외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EU에서 위험도에 따라 AI 등급을 정의한 것처럼 향후에는 콘텐츠 산업에서 구체화된 AI 등급으로 사전에 소비자가 더 용이하게 식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영상물의 연령 등급처럼 콘텐츠 전체가 AI로 제작되었는지, 일부 편집 및 가공에 활용되었는지, AI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콘텐츠인지 등으로 말이죠.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년 4분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콘텐츠산업의 생성형 AI 도입률이 2025년 2분기에는 조사 대상자의 20.0%, 2025년 4분기에는 32.1%에 달했습니다.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콘텐츠사업체의 도입 분야는 콘텐츠 제작이 62.7%, 사업 기획이 43.7%, 콘텐츠 창작이 32.8% 등의 순으로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Precedence Research에 따르면, 생성형 AI 시장 규모가 2026년에는 $55.51에서 2035년에는 $1,206.24로 연평균 36.97%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였습니다. 생성형 AI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콘텐츠 제작자와 창작자, 플랫폼 서비스 기업, 생성형 AI 기업,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협력하여 건강한 AI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야 합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AI 생성 콘텐츠가 인간 창작물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합니다. AI 생성 콘텐츠의 시장 잠식으로 인해 인간 창작물의 시장이 작아질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인간 창작물 고유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보이지 않던, 관심받지 못했던, 당연했던 창작자의 노력이 AI 생성 콘텐츠를 통해 재조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유 가치를 잘 살리는 인간 창작물은 AI 생성 콘텐츠와는 또 다른 진가를 발휘하며 상생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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