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72)
(부캉이가 그물망을 뚫고 친수공원쪽으로 들어가는 모습. 사진출처 : 채널A 시청자 이은지)
부캉이를 외해로 내 보내기 위한 2차 시도 -그물을 제작하여 외해로 부캉이를 몰아내는 것-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부캉이는 그물이 설치된 다음날에 사람들이 보라는 듯 유유하게 그물을 넘어 친수공원쪽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도 현장에서 그 장면을 보진 못했지만 유튜브에서 찍힌 장면을 보니 사람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가뿐히 그물을 넘는 부캉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https://youtu.be/Vfan0aQn8Vo?si=MXU0s11A22tsd0tD
저 때 사람들의 함성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외해로 쫓아내려는 사람들의 그물을 탈출한 부캉이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의 주인공 '앤디'만큼이나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들의 답답한 삶처럼 꽉 막힌 그물을 가뿐히 넘는 부캉이의 모습에서 대리만족 혹은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와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준 부캉이를 마지막으로(?)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에 연휴 마지막 날인 어제, 나는 와이프와 막둥이를 데리고 북항으로 갔다. 이렇게도 영리하게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한 부캉이를 아내와 막둥이에게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일어나자 마자 계획을 짰다. 오전에는 막둥이가 졸업사진 찍는 날에 입고 갈 -세상에나 네상에나~ 막둥이가 벌써 유치원을 졸업할 시간이 되었단다~ 정말 세상 오래살고 볼 일이다.- 바지와 티셔츠를 사고, 점심때쯤 부산역 맞은편으로 가서 그렇게 맛있다는 이**피자에서 피자를 먹고 -서울 사람들도 이 피자 먹으러 부산에 내려오기도 한다던데 부산에 살면서 이런 걸 한번도 안사준다면 아빠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번에 큰맘(?) 먹고 사주기로 했다. 이것도 부캉이가 가져다 준 선물이라면 선물일까?- 그리고 부산역을 지나 북항 친수공원에서 부캉이의 실물을 영접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너무 차가 몰린다니 가족여행으론 거의 처음으로 차를 가져가지 않고 지하철로 가기로 한 것도 소소한 재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막둥이가 어릴 적엔 어딜 놀러가면 거의 차를 가져가야 했지만 이제는 지하철을 스스로 타고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출발했다. 원래는 막둥이 옷만 사기로 했지만 쇼핑몰에서 사다 보니 내 춘추잠바도 하나 사고 -짠순이 와이프가 어쩐 일로 서방님 옷도?, 이것도 부캉이 덕?~ㅋ- 출발도 순탄했다. 이**피자에서 맛본 피자는 내 생각대로 '피자가 거기서 거기'였지만 와이프는 치즈가 너무 부드럽다며 감탄을 연발했고 긴 웨이팅에 지친 막둥이는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피자를 두조각이나 먹어치웠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오픈게임에 불과했다. 우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부캉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북항 친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산역에서 거기까지 설치되어 있는 통행로는 사람에 치여 거의 어깨빵(?)을 해야할 지경이었다. 거기다 사람들도 다들 글로벌하게 보여 역시 '부캉이'가 국내용이 아니라 국제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두 여자는 부캉이의 존재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처음에는 몇 번 사람들 틈에 끼어 부캉이가 다가 오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가도 부캉이가 가고 나면
"또 언제 와?~"
하고 다시 오길 기다리기 지루해했다. 몇 번 그러는 사이 막둥이는 어느새 제 또래의 여자애와 사귀어서 숨바꼭질을 하는 데 정신이 빠져 있었고 와이프는 커피를 사러간다며 가서 오지 않았다. 여기서 커피 파는 데는 부캉이 때문에 대박친 사장님(?)이 있는 이*아 뿐이라고 들었는데 보나마나 대기 줄이 길어서 사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그깟 커피 안마시면 될 텐데 여자들은 왜 꼭 커피를 마셔야 하냐고 말하려다 참았다. 나는 사실 우리 세 가족이 사이좋게 부캉이가 헤엄치는 걸 보고 싶었는데 한 여자는 친구에, 또 한 여자는 커피에 꽂혀 버린 걸 보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흘러간 옛노래가 그 가사와 함께 내 뇌리에 리플레이 되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자신을 가두려던 우리에서 탈출하여 이렇게 멋있게 동물계의 '쇼생크 탈출'을 찍고 있는 부캉이가 너무 예쁘지 않냐고 말하려 했으나 두 여자는 벌써 내곁에 없었다. 한 여자는 친구와의 숨바꼭질에, 또 한 여자는 커피의 향기에 취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 여자는 땡볕에 얼마나 숨바꼭질을 했는지 얼굴이 벌겋에 달아서, 또 한 여자는 양손에 커피 컵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언제 갈거야?"
그들의 질문에 나도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 이왕 사온 거니 이거나 먹고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막둥이는 자기 껀 없냐고 했다. 난 다시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 다시 부산역까지 걸어가서 막둥이의 뿌*뿌* 음료수를 사왔다. 그리고 우린 부캉이는 잘 보이지 않지만 북항의 하늘이 잘 보이는 수변공원 언덕으로 올라가 음료수와 커피를 마셨다. 시월의 산들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머리칼을 쓸어넘겨 주었다. 부캉이를 같이 보며 즐거워하진 못했지만 시월의 바람을 느끼며 북항을 아내와 막둥이와 거닐 수 있어서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