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나가는 시간보다 늦어졌다. 늦어도 9시반 전에는 나가는데 이것저것 하다보니 10시가 다 되었다.
그렇다고 넘기기에는 오늘따라 묵직하게 먹었다.
반만 뛰고 오자.
햇수로 3년차.
밤달리기는 이제 루틴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운동화 신고 집 밖을 나가는 게 고역인 시기는 지났다. 오히려 쉬면 근질근질해서 못 배길 지경이다. 몸도 몸이지만 이제는 내 정신이 더 원하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달리고 와야 하룻동안 뻑뻑하고 어지럽게 엉킨 철실타래가 풀어지지 않아도 느슨해지기라도 한다.
그러니 이제는 의지의 문제는 아니고, 다만 변수가 있다면 어쩌다 너무 늦은 시간이 될 때.
지방의 소도시, 이 안에서도 우리 동네는 도심에서 벗어나 위치해 있다. 오래된 초등학교 하나가 있을 뿐, 중고등학교도 근처에 없고, 십 년 사이 아파트가 두어 단지가 더 생겼지만 입주 세대수에 비례해서 상권이 딱히 발달하지는 않는 조용한 동네다. 이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동네를 가로지르며 크지 않은 하천이 있고, 하천을 따라 산바카라로가 있다. 이 길을 기준으로 한 쪽엔 하천이 흐르고 다른 한쪽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을 뿐 그 흔한 카페 하나가 없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개구리 합창 소리를 크루 삼아 무념무상으로 걷거나 뛰기에 그저그만이다. 이 길을 사랑하는 이유기도 하다.
해질 녘부터 시작해서 저녁 9시까지가 소박하나마 이 동네의 피크 시간대다. 그러나 나로써는 9시 전에 나와 달리기는 쉽지 않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7시. 가족이 다같이 저녁 먹고 뒷정리까지 하고 나면 8시 반이 훌쩍 넘으며, 아이들과 어쩌구저쩌구 하고, 어느 정도 소화도 좀 시키고 나면 9시에서 9시 반은 되어야 달리러 나갈 시간이 된다.
수년 째 식지 않고 여전한 러닝 열풍의 발원지라고 할 만한 한강은 새벽까지도 운동하는 사람으로 북적인다는데 여기 시골은 밤 10시면 인적이 끊긴다.
가로등이 밝히고 있다고 무섭지 않는 게 아니다. 저녁 무렵 피크타임이나 한강 유역처럼 사람이 아예 많으면 모를까, 아예 없어도 무섭고 가끔 한 사람이 나타나도 그것대로 무섭다. 정유정 소설 <종의 기원> 을 읽은 후로 더욱 그렇다.
컨디션도 게으름도 아닌 유일한 변수가 너무 늦은 시간 나가게 되는 것,인 사연을 길게 썼다.
- 엄마 다녀올게.
- 지금요?!
- 응, 늦어서 쫌만 뛰고 올게.
거리는 역시나 한적하다.
대신 밤공기는 산뜻해서 뛰기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
공기는 단순히 코와 입을 통해 폐로만 들어오지 않는다. 온 몸의 세포를 깨우듯이 스며드는데, 걸을 때보다 달릴 때 더 거칠고 밀도 높게 받아들이는 탓에 그 공기의 결을 더욱 민감하게 느낀다. 낮에 내리쬔 태양의 지글거림은 내 소관 아니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변신한 밤공기에는 그 안에 민트 입자라도 섞인 듯 선선하고 청량하다.
밤날씨 좋은데? 발걸음이 가볍게 속도를 올린다.
무서움이 피쳐링하는 귀소 본능과, 날씨가 깨우는 질주 본능이 그렇게 공존하던 중이었다.
1미터를 막 지났을 무렵.
저기 앞에 나란히 달리는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200미터쯤 떨어진 거리여서 세밀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한 사람은 그보다 작았는데, 큰 사람은 자태로 보아 한 눈에 남자임을 확신했고,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옆사람은 성별을 유추할 수 없었다.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저 두 사람은 내게 안전한 존재,라는 안도감이었다.
둘은 앞뒤로 젓는 팔이 서로에게 닿을 듯 말 듯한 가까이로 나란히 뛰고 있었다. 길 폭이 딱 그 정도이기도 했지만 달리면서 서로 바라보거나 하는 행동이 없어도 분위기는 친밀해보였고 (내 추측 속)둘의 친한 사이는 나의 안전함을 보장해주는 듯 느껴졌다.
끈 떨어진 연이라도 될까봐 불안한 나는 내 시야에서 그들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의식하지 않고(당연하다) 나역시 전혀 의식하지 않는 척할 수 있는 거리.
보통 2미터에서 2.5미터 정도 되었을 때 찍고 턴하여 되돌아오는 나의 지점이 있다. 어느 새 그 지점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저기서 돌아서야 하는데, 저들이 만약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 앞으로 자꾸 달려 나가면... 그러면 나는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지 못하고 무섭지만 다시 혼자가 되어 되돌아와야...
그 순간.
두 사람이 속도를 줄이더니 딱 돌아서는 게 아닌가. 바로 나의 턴 지점에서.
긍정적인 경우의 수로 미처 넘어가지 못한 시점이었다. 돌아서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그들과 마주하게 된 나는 당황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은 다행히 밤이 가려주었다. 내 갈 길 갈 뿐이라는 양 쿨하게 그들을 지나친 후 나역시 그 턴 지점에서 찍고 돌아섰다.
되돌아가는 길 위.
아까와 똑같은 간격을 두고 두 사람과, 눈을 모로 하고 그들을 흘깃거리 한 여자가 달리고 있다.
거리 폭이 멀어지지도 않고 좁아지지도 않는 간격을 유지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들도 나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지 싶다.(조바심에 기원한 나의 의지이긴 하다.) 한 번 발 박자를 맞춰볼까. 핫둘 핫둘. 발이 딱딱 맞는데. 낯선 이들과 발이 착착 맞는 쾌감이 있다. 마치 원격으로 이인삼각을 하는 것 같은. 내적친밀감이 솟는다.
신뢰마저 든다.
나는 180bpm으로 뛰고 있다.
요즘 러너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차고 다니는 스마트워치 대신 아날로그 손목시계를 차는 나는, 그러나 달리는 내내 180bpm을 칼같이 유지하고 있다. 180bpm에 맞춰진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달리고 있는 덕이다. 무리하거나 쳐지지 않고 달리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저 둘은 외부적인 도움을 받는 나와 어떻게 저렇게 거의 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거지? 그들의 자세로 보아 하루이틀 달리는 것 같지 않게 안정적이기는 하다. 스스로 속도를 조절할 정도로 몸에 밴 걸까? 아니면 혹시, 함께 달리고는 있지만 각자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나처럼 180bpm 메트로놈이나 음악에 맞춰 달리고 있기라도 하는 걸까. 그렇다면 저들의 플레이리스트는 뭘까. 안그래도 한두가지만 듣기 지루한 참인데, 좋은 게 있으면 공유하고 싶네. 가끔은 음악 대신 다른 콘텐츠를 라디오처럼 들으며 달리기도 하는데 저렇게 안정적으로 달리는 고수들은 유튜브에 어떤 알고리즘이 있을까. 나처럼 자기계발 콘텐츠나 아니면...
N인간의 상상은 신나게 고삐 풀렸다.
저 앞 그들에게서 보이는 후광은 착각일까.
그들의 운동복 소재가 야광은 아닐진대 마치 발광되는 듯하다. 단단할 것이 틀림 없는 등근육과 뒷다리도 땀 덕인지 돋보인다. 적어도 우리집 근처까지는 이대로, 딱 이만큼 앞서서 죽 달려줄 것 같은 신뢰마저 든다.
너무 늦은 시간 무서우니 반만 달리고 들어가야지 하며 나왔던 마음이 무색하다.
그 반마저도, 길에 아무도 없으면 없어서, 혹은 한 사람이 등장했다면 그 한 사람이 있어서, 역시나 정처없는 상상에 휩싸여 달렸을 게 뻔하다-그 덕에 기록을 냈을 수도. 다만 장르는 공포 스릴러가 되었겠지. 좀비물도 가능.
두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이렇게 얘기가 달라지다니. 긴장으로 쫄깃했지만 어느샌가부터 나사 하나 풀린 듯 촐랑대는 기분이었다. 촐랑댄다는 건 편안하다는 의미라는 걸 아이들 키우면서 알았다. 어깨에 힘이 빠졌고 재미있는 말풍선이 연신 떠올랐다.
그런데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중요할까.
사실 내 마음먹기에 달린 걸 수도 있다. 어차피 그들은 나와 관계없이 그들의 길을 달린다. 나 혼자 상상하고 무서워하고 히죽거릴 뿐이다.
이 정도 공상이면 <맨 끝 줄 소년>의 최민식 급이다.
잠깐만.
앞에 달리던 두 사람, 정말 거기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