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아들의 사고 이후 겪게 된 후유증이 몇 개 있다. 방문을 닫을 수 없었고, 불을 끈 채로 잠들지 못했고,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불을 끄고 잠들 수 있고 방문을 닫아도 아무렇지 않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도 운전할 자신은 없다.
이렇듯 사람이 트라우마로 겪는 심리적 외상 후유증은 좀처럼 치유되기 어려운 법이다. 개인의 트라우마도 그렇지만 공동체가 겪은 트라우마는 그냥 묻히지 않는다. 삶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한강 작가는 이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지녔다. 그 용기를 자양분으로 쓴 소설은 새로운 역사가 되었다.
제주 4.3 사건은 오랫동안 '폭동'으로 왜곡되었으나 특별법 제정으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작가는 이 역사적 비극을 희생자의 가족과 생존자의 기억을 통해 재현하며,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닌 현재로 끌어왔다.
이 바카라은 제주 4·3 사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개인의 상처를 넘어 공동체적 기억과 윤리적 바카라임을 묻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트라우마를 직시하는 용기와 애도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마지막 바카라장을 덮은 뒤에 남는 침묵 속에 역사의 현장이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어른거렸다. 팔에는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잊지 않기로 결단하게 한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소설가 경하가 꾸는 악몽으로 시작한다. 눈 덮인 벌판에 검은 통나무들이 묘비처럼 솟아 있고, 밀물에 쓸려 내려가는 무덤 속 뼈들을 옮기지 못하는 무기력한 꿈이다. 어느 겨울날, 경하는 제주에서 목공 일을 하다 손가락이 절단된 친구 인선으로부터 연락받고, 그녀의 집에 홀로 남겨진 앵무새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폭설을 뚫고 제주에 도착한 경하는 이미 죽은 앵무새를 발견하고, 인선의 집에서 그녀의 가족사가 담긴 기록과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경하는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 겪은 제주 4·3 사건의 참혹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정심은 어린 시절 부모와 동생을 학살로 잃고, 오빠마저 행방불명된 채 평생을 살아야 했다. 그녀의 기억은 단순한 개인적 상처가 아니라, 제주 공동체 전체가 겪은 집단 트라우마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소설은 경하의 현재, 인선의 증언, 정심의 과거가 교차하며 전개되었다. 바카라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살아남은 자들은 죄바카라감을 느끼고,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무관심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온다. 상실된 존재들이 기억 속에서 살아 있으며, 남은 자들이 그 기억을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바카라임을 암암리에 강조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고요한 싸움이 폭설로 고립된 외딴집의 어둠 속에서 떠오른다. 주인공인 작가는 악몽에 시달리면서 집필했고 그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나면 악몽을 꾸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뻔뻔스럽게-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 23P
인선의 입을 통해 4.3 사건을 겪은 공동체의 트라우마를 대변한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87P
경하는 맘 속에 응축되어 있던 말을 내뱉는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134P
주인공의 이 말에 한강 작가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 짧은 몇 마디 속에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용기가 보인다.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불이 곧바로 용기다. 기어이 돌아가 껴안는 것은 동행이며 지지다.
겹겹의 시간과 증언이 교차했으며, 독자로서 그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꽤 어려웠다. 독자 스스로 조립하도록 하는 느낌을 받았다. 상징적 장치가 많아서 난해했다. 물, 바람, 손, 이름 등이 그랬다. 또한 폭력을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절제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제주 사람이나 뭍에 사는 사람이나,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인류도 다 함께 폭력에 대한 윤리적 바카라임 의식을 가지도록 하는 소설이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세 여성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집단적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공간적으로 제주에서 경산에 이르고, 시간상으로는 반세기를 넘긴 배경을 안고 있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다는 메시지다. 폭력은 육체의 절멸을 기도하지만, 기억은 육체 없이 영원하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있게 할 수는 있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제주 4.3 사건이라는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생명 사랑과 그들을 기억하는 마음을 담아 시적이고 섬세한 문장으로 그림 그리듯 보여준 작품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상처와 그 상처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밀려왔다.
이 바카라은 읽는 이들에게 전하는 편지였다.
작별하지 말자고.
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은이), 문학동네(2021)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47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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