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 요법, 제대로 먹혔어요

[드라마 리뷰]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byCha향기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14년 동안 중증 환자 아들을 돌보고 있다. 입원 생활 6년이 넘으니 재활 치료 부분에 건강 보험 급여 혜택이 제한되어 아들을 집으로 옮겼다. 여러 가지 운동기구와 의료용품을 세팅하여 집을 병원처럼 만들었다. 다행히 장애인 활동 보호 제도가 있어서 큰 힘이 된다. 집에서 아들을 보살핀 지도 어언 8년이 지나가는 중이다.


지난 4월 초순에 활동지원사 한 분이 건강 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며 갑자기 일을 그만두었다. 6년간 우리 아들을 돌봤던 그분의 빈자리를 메꿔야 했다. 후임을 구할 때까지 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 와중에 아들이 감기에 걸렸다. 점점 열이 오르더니 가래가 심해졌다.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갔는데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들은 감염병 환자로 분리되어 격리실에 입원했다. 보호자 한 사람만 상주해야 하므로 불가불 내가 지옥 같은 간병을 했다. 다행히 치료가 잘되어 일주일 만에 퇴원했고 서서히 일상을 회복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8년간 일해왔던 또 다른 활동지원사도 불가피한 일이 생겨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닥쳤다.


두 분이 비운 자리를 대신할 활동지원사를 백방으로 구했다. 한 분을 구하긴 했는데 일을 그만두었던 그 두 사람의 몫을 다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분은 이런 일을 처음 해보는 터라 모든 게 서툴렀다. 새로 온 활동지원사를 한 달째 가르치는 중이다. 회사에서 3개월 정도 수습 기간을 가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새로 온 활동지원사가 일이 익숙하지 않으니 간병 체계가 흔들렸다. 이미 알려준 일을 반복하여 실수하는 그분 때문에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드라마 시청 몰입

그러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는 맘으로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그 드라마는 몰입하여 정주행 하게 됐다. 출연진의 딕션이 또렷하게 내 고막에 와닿았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드라마는, 친구들 속에서 뒤처진 것에 괴로워하던 황동만이 열등감을 극복하고, 한 여자의 위로와 응원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삶의 안식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인간 냄새 폴폴 나는 힐링 드라마였다. 내 인생 드라마로 손꼽는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썼던 박해영 작가의 극본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게 바카라을 읽는 기분이었다.


황동만은 자신의 무가치함에 스스로 질려 좌절하며, 잘난 동료들을 향한 시기와 질투, 독설로 눈총을 산다. 만약 황동만이 우리 동네에 산다면 나는 그를 피할 것이다. 한 구석도 맘에 드는 데가 없었다. 같은 집에 산다면 단 한 시간도 함께 있을 수 없겠다. 산만하고 추접스럽고 말 많은 남자였다. 그런데 드라마를 시청해 가면서 점점 그 캐릭터가 이해됐다. 얄미운 감정이 사라졌다.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그를 알아봐 주고 이해하는 인물이 나타난다. 그의 고통에 공감하는 변은아가 그를 지지한다. 자신도 상처가 깊은 처지라 사람을 감정 덩어리로 보는 여자였다. 그러나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조금씩 각자의 외로움을 덜어낸다. 사람이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인간관계 빛깔이 달라졌다.


변은아의 지지와 이해, 그리고 따뜻한 위로 속에서 황동만은 방어기제를 풀어헤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회복해 가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누군가의 응원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볼 수 있었다. 이 드라마를 통하여 구교환, 고윤정이란 탤런트를 비로소 알게 됐다.

이 드라마에서 황동만과 변은아가 감정워치를 착용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착용자의 뇌파를 분석하여 내면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장치였다. 불안, 분노, 절망, 질투, '알 수 없음'이나 ‘도와주세요’ 등 내면의 심리 상태가 감정워치를 통해 초록이나 붉은빛으로 알림이 온다. 때로는 그 감정워치 변화를 토대로 감정을 분석하여 적절한 코칭도 받는다. 감정의 뿌리를 보면 핵심 감정이 객관화되고 감정 폭발을 막을 수 있다.


황동만에게는 든든한 형이 있다. 취직도 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용접 기술이라도 배우라고 타박한다. 20년째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핀잔을 주지만, 실상은 동생을 아낀다. 결혼생활에 실패한 후 행방불명 상태로 처리됐을 때 이혼한 전처가 딸을 입양 보내 버린 일로 동만의 형, 황진만은 무너졌다. 국어국문학 박사에, 신춘문예까지 당선된 촉망받는 시인이었던 형은 술로 버틴다. 걸핏하면 자살을 꿈꾸고 실제로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했다가 황동만이 구해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인생의 사유와 철학이 드라마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사는 목적이 뭐냐? 시를 쓰려는 목적이 뭐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생을 치열하게 살지 말라고 동생에게 말한다. 황동만이 자기 삶의 목적이 웃기게 살려고 그런다고 하자 형은 그러면 됐다고 한다. 또한 모든 스토리는 내가 존재한다는 아우성이랬다. 영어로 인간이 Human doing이 아닌 Human being이라며 존재의 무게에 가치를 둔다. 사라지는 것은 진정 존재했던 것인가?라는 철학적 화두도 던진다. 드라마 곳곳에 황진만이 쓴 시가 낭송되어 감상에 젖게 했다.


영화사를 배경으로 하여 대표, PD, 작가 그리고 다른 스텝들과 살아가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인간 군상이 다양하게 드러났다. 드라마 속에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해하려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었다.


지극히 찌질했던 황동만이 마침내 신임 감독상을 받는 유쾌한 결말이다.


‘평안’이라고 감정워치 알림을 받은 기분

마구 나대는 황동만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변은아는, “평생 당신을 보면서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한다. 드라마를 시청했을 뿐인데 교회에서 설교를 들은 것처럼 은혜받았다. 인간 이해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새로 온 활동지원사가 업무를 더디게 익혀 가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그분을 이해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결국은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정워치로 ‘평안’이라는 알림을 받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활동지원사도 6~8년 후에는 간병의 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공감은 상대방을 위해서 좋은 것이고, 사람에 대한 이해는 결국 나 자신한테 좋다. 이해를 바탕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는 따사로운 것이라는 걸 알게 해 준 드라마였다.


드라마 한 편으로 삶의 솔루션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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