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3년 8개월차 기록: 끝나지 않은 정리

의식주일상실험

by문성 Moon song Kim

일상실험연구실

일상의 선택과 반복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생활을 하나의 실험처럼 다루어본다. 주거, 소비, 돌봄, 상실 이후의 삶을 살아가며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각자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시도.



1. 의식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짓는 일상의 선택

오랜만에 '일상실험'을 기록한다. 가장 최근에 쓴 글을 확인해 보니 6개월 전. 그래서인지 글쓰기창을 여는 게 마치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실험실의 문을 여는 기분이 들었다.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서류철 위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듯 '일상실험연구실' 카테고리를 열고 하나하나 누적된 글을 더듬어보았다.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보니 의식주의 기록들 속에 과거의 내가 생활을 꾸려나가는 필수적인 요소들, 요컨대 살림을 어떻게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인지 탐색해 왔음이 보인다.

그것이 내게는 늘 중요한 주제였구나, 새삼 깨닫는다. 슬롯의 구성원으로 역할해 나가는 직업이나 그 대가로 받는 돈으로는 결코 메꿀 수 없는 일상의 영역. 가사노동이라는 말로 명명되기 이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지금도 시급으로 추정될 뿐 지금도 대부분 노동으로 주목하지 않는 영역. 그 영역을 엄마에게 떠맡기고 있음을 자각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누어 부담하려 하기도 했고, 나 자신이 서툴다는 것을 깨닫고 바카라을 찾아보기도 하고 검색을 해보기도 하며 조금 더 나아지고자 애를 쓰기도 했다. 더불어 종종 궁금했다. 일상에서 가장 필수적인 영역이자 토대가 되는 영역이 어째서 이렇게 슬롯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각 개인이 혹은 살림을 담당하는 이가 감내해야 하는 영역처럼 여겨지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몇 번의 사계절을 반복하며 자주 찾는 살림에 관련한 바카라이나 유튜브 채널 목록을 갖게 되고 계절마다 필요한 의식주 루틴에 익숙해졌을 무렵 더욱 분명히 자각하게 된 것 같다. 어쨌거나 슬롯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하지만 누구나 일상을 꾸려나가려면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일상의 일부이지만 사실은 각자의 가치관과 취향, 이해나 경험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이는 영역이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는 매번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특히나 유튜브를 통해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 보편화된 이후부터는, 의식주라는 일상의 영역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이들부터 정반대로 아예 의식주를 단순화해 버리고 수행자처럼 생활하는 이들까지 수많은 이들을 엿보게 되면서 더더욱 실감했다. 아주 내밀한 각 가정의 사정이었던 의식주를 수많은 사례들 속에서 비교검토해 보며 나의 의식주에서 필요하거나 개선한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엄마에게 미처 배울 수 없었던 옷감별 세탁방법이나 밑반찬 만드는 법, 계절별 침구정리와 같은 의식주의 관리와 살림운영을 차근차근 그것도 뛰어난 전문가의 노하우로 배울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들과의 끊임없는 비교 속에 그들을 따라갈 것인지, 따라간다면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선별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했다. 옷정리라는 검색어만으로도 수천 개의 영상이 쏟아지고 백만을 훌쩍 넘는 팔로어를 가진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들은 종종 브랜드와의 협업이라며 공동구매나 제품광고를 하며 그 제품을 사면 그들처럼 될 수 있을 듯 소비욕구를 자극했다. 그 과정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의 지향이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미니멀라이프라 명명해 온 지 3년 하고도 6개월.

다시금 온라인카지노 기록을 돌아보며 미니멀이라는 명명을 하기 전부터 나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처음 온라인카지노에 기록을 시작하던 2019년도 글에도 '최소를 쓰고 최대를 누리겠다'라고 적던 한결같은 나 자신에 웃음이 난다. 더불어 이어온 온라인카지노의 기록들이 그런 나의 성향을 더욱 분명히 자각하게 하고 가치관으로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그리고 취향으로 가다듬으며 나에게 맞는 루틴을 쌓아온 것이 대견해진다. 그러니 다시금 기운을 내어 기록을 이어나갈 수밖에.


2. 미니멀 3년 차, 1년 6개월을 보내며 마주한 새로운 고민

어쨌거나 2026년 9월 현재, 미니멀을 지향하겠다고 선언한 지 3년 하고도 6개월째가 되었다. 2025년 초 적었듯 3년 차는 엄마아빠의 유품 정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때는 이미 폐기와 기부 그리고 나눔으로 이어진 몇 달을 보내며 90퍼센트 정도는 정리했으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남은 것들과 나의 것들을 더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해 나가는 순간이었다.

엄마 아빠가 남긴 구옥을 리모델링하며 나는 아예 다른 차원의 선택지와 대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줄일 것이나 어떻게 줄일 것이냐에서 나아가 문제가 있다 해도 기존의 것을 그대로 둘 것이냐 아니면 고칠 것이냐, 고친다면 어디를 얼마큼 고칠 것이냐,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더해야 한다면 얼마큼 어떻게 더할 것이냐. 최대한 그대로 두고 싶었지만 낡거나 망가진 가구들을 들어내고 나니 누수로 일부가 썩은 걸 간신히 가려둔 천장이나 곰팡이가 뒤덮은 벽지, 이미 기울어져 내려앉은 싱크대와 그로 인해 뒤틀리며 벌어지고 고장 난 경첩과 상하부장의 문짝들, 누수가 걱정되는 깨진 변기틈새와 같은 것들을 못 본 척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해도 철거시점이 몇 년 뒤일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대로 두고 생활한다면 생활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건 둘째치고 문제가 커질 테고 그때 수습을 하려면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리라는 건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래도 최소만 더하려 애를 썼지만 방과 욕실, 부엌, 거실에서 교체하거나 더해야 할 것들을 검토해 나가며 새로이 추가할 것들의 가짓수는 늘어났다. 여러 업체와 통화하고 수차례 방문견적과 견적서를 받고 다시 조정하며 줄여나가는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분명한 건 언젠가 철거될 걸 알면서도 새로운 것을 더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오랜 망설임과 고민 속으로 몰아넣었다. 일상을 제대로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임에는 이견이 없었다. 최소한으로 들이고 최대로 활용하고 떠나게 되는 순간에도 쓸 수 있는 것들은 가지고 가는데 최선을 다해보자고 몇 번이고 되뇌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새로운 것들을 소비하고 그것들이 결국 쓰레기가 되리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마도 몇 년간 의식적으로 줄인 소비와 쓰레기를 가뿐히 뛰어넘는 분량이 이 집과 함께 부서져 누구도 다시는 쓸 수 없는 건축폐기물이 된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기에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무거움 때문에 일 년 반이 넘도록 미니멀 기록을 멈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업체와의 인테리어 공정은 비용절감을 위해 한 달 안에 마무리되었지만, 이후로도 나는 남은 자재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고쳐나갔고 욕실이나 부엌, 거실과 같이 매 공간에 손을 댈 때마다 역시나 새로운 자재와 물건들이 추가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매번 렉 걸린 컴퓨터처럼 버벅거리며 멈추고 고심하다 몇 달의 불편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끝에야 남은 자재에 새로운 부속품을 더하거나 당근으로 중고품을 구하느라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더딘 과정 속에서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풀었다 정리하기를 반복하며 받아들이게 된 것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을 할 수는 있어도 쓰레기를 아예 만들지 않고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먹고 마시고 입고 두르며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슬롯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비하고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인간으로서 태어난 이상 죽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거대한 순환 속의 일부였다. 소비자로서 물건을 사거나 거주자로서 집을 고치고 전기나 가스, 수도와 같은 에너지를 쓰기를 거부하고 수공예적으로 수선하거나 대체하며 시스템을 벗어나 극단적인 고립을 자처한다 해도 살아가며 남긴 부산물들이 다시 환원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에, 결국은 나로 인한 쓰레기가 나오는 셈이었다.


3.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정리해 나가는 일

그렇게 고민 끝에 잠정적으로 다다른 결론은, 강박적으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데 집착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쓰레기를 만드는 걸 인정하고 최소화해서 배출하고 최대한 순환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3년 차에 접어들어서도 나의 집수리는 끝난 듯 끝나지 않은 듯 이어졌고 더불어 엄마아빠의 물건 정리도 계속되었다.

봄을 지나 여름이 되어서야 당근에서 구매한 소파로 내부의 인테리어가 얼추 마무리되었을 무렵 폭우가 잦아지며 반복되는 누수에 옥상과 지붕 방수공사를 했다. 그 김에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으며 건들 엄두를 내지 못했던 화분과 정원손질에 관련된 물건들도 폐기와 나눔으로 양을 줄였다. 아빠처럼 옥상에서 농사를 지으러 부지런히 오르락내리락하며 매일같이 농작물에 애정을 쏟을 자신도 여력도 없었거니와, 방수공사 견적을 내러 온 모든 전문가들이 방수를 하고 나면 우레탄도장이 벗겨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미 일 년 전 유품정리를 할 때부터 비워야 하는 물건들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비우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옥상의 농작물들을 가꾸고 이따금 나에게 슬며시 올라가 보았느냐며 서투른 대화를 시도하고 은근한 칭찬을 바라며 자랑하던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정리하는 게 아빠가 만든 이 집에서 아빠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마는 것 같아서 유품을 정리하면서도 미루고 미루어왔던 일이었다. 방수를 위한 밑작업으로 철거와 세척이 이뤄지려면 모든 물건을 치워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말에 미루던 일을 해야 할 시간이 닥쳤음을 직감했다. 나는 아직 엄마아빠를 미처 다 보내지 못했음을.

옥상의 화분들을 모두 내리고 부서진 것들은 폐기하고 멀쩡한 것들은 남겨 대문 앞 담벼락을 따라 정렬해 두었다. 부서진 화분의 흙은 모두 화단에 비스듬히 둔덕을 쌓듯이 올려 화단을 정리했다. 방수를 마치고 겨울이 지나고 나면 다시 잎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내가 생각한 최대의 순환 그리고 최소의 쓰레기 배출이었다.



다시 봄과 여름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엄마아빠의 물품들을 구석구석에서 마주했다. 차마 누군가에게 주는 것도 버리는 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엄마의 자개장세트 화장대와 수납장 일부. 큰 언니가 가족모임에 또 쓰지 않겠느냐고 만류해 다 정리하지 않고 남겨두었던 식기와 조리도구. 침구와 쿠션들, 공구와 청소도구, 세제와 욕실용품, 아빠가 매년 친구들과 나들이 겸 소래포구로 가서 사 오곤 했던 굵은소금과 새우젓 같은 식재료에 아빠가 챙겨 먹던 약들과 영양제까지. 이미 기한이 지났을 거라 짐작하면서도 그것들을 확인하거나 비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쓰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을 치우거나 정리해서 넣어둘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청소나 빨래, 설거지에 쓰는 소모품들조차 손 한 번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모셔두고 있었다. 언제라도 엄마 아빠가 돌아와서 그것들을 쓸지도 모른다는 듯.

그런 나 자신을 자각하게 된 건 모든 게 녹아내리는 것 같았던 여름의 지독한 열기 끝에 선선한 아침이 찾아온 9월 어느 날이었다. 밤새도록 틀어둔 에어컨 바람 아래 악몽을 꾸며 뒤척이다 일어나고 이미 달궈진 아스팔트로 서둘러 나섰다가 채 가시지 않은 한증막 같은 집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또다시 서둘러 에어컨을 켜던 날들이 무색하게 서늘한 아침공기였다. 기다렸다는 듯 감기몸살로 일어나질 못하고 끙끙 앓다가 남아있던 약들을 기억해 내고 간신히 일어나 부엌장 앞에 섰는데, 꼭 처음 마주한 것처럼 늘어선 약상자와 약봉투들이 낯설었다.

하나씩 꺼내 들고 약의 이름과 효능, 효과에 대해 읽어 내려가며 내 것들은 몇 개뿐 대부분 끝내 건드리지 않았던 아빠의 약들임을 기억해 냈다. 종합감기약, 한방소화제, 해열제, 소염진통제, 오메가쓰리와 엄마를 위해 샀을 테지만 정확한 성분도 약효도 모르셨을 게 분명한 갱년기여성 건강보조 의약품들까지. 유효기한도 거의 일 년 넘게 지난 지 오래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2년, 엄마가 돌아가신 지 5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아빠도 그 누구도 이 약들을 먹을 순 없었다. 그렇게 발견하고는 다시 약들이 놓인 장 앞에 선 건 감기가 낫고도 며칠이 지난 뒤였다.

아빠의 약들, 엄마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약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한동안 불면에 시달리고 다시 불면이 도질까 봐 두려워 정리하지 못하고 깊숙이 넣어두었던 수면유도제들까지 봉투에 차곡차곡 담았다. 이것들을 붙들고 있는 것은 이곳에 없는 엄마아빠는 물론이고 나에게도 무의미한 짓이라고, 내 안에서 말하고 있었다. 의약품을 폐기해 주는 약국에 봉투를 건네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앞으로도 몇 번이나 이런 순간들을 반복하며 나는 엄마아빠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엄마아빠와의 시간들을 정리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이 남긴 물건들을 열어보고 닳고 낡을 때까지 쓰며 결국엔 버리고 정리해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이들과의 이별다운 이별인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