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매일 시끄럽다.
누군가는 바꾸겠다고 외치고, 누군가는 지금의 세상을 지키려 한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부딪히고, 무언가 금방이라도 달라질 것 같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우리는 어제와 비슷한 세상에서 눈을 뜬다.
<디거>, <돈 룩 업>, <어쩔수가없다>.
세 영화는 웃기지만, 웃고 나면 조금 불편해진다.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거대한 권력이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변화를 원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가진 것은 그대로 둔 채, 세상만 달라지기를 바라는 걸까.
2026년 10월 세번째
-<디거>, <돈룩업>, <어쩘수가없다>
세상은 이렇게 시끄러운데 왜 달라지지 않을까 - <디거>
아침에 뉴스를 켜면 세상이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다.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사과하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정치인들은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무언가를 요구한다. 인터넷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시끄러운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세상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 많은 사람이 애썼고,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싸웠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은 매일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걸까. 아니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디거>에는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거대한 인물이 등장한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디거 록웰은 석유로 부를 쌓은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이 벌인 일이 환경 재앙으로 이어지자 이제는 인류를 구할 사람처럼 행동한다. 참 묘한 상황이다. 문제를 만들어낸 사람이 해결사로 등장하고, 그를 중심으로 다시 사람들이 모여든다. 영화는 그 모습을 꽤 우스꽝스럽게 그린다.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진지함이 오히려 웃음을 만든다. 무언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뒤로 밀려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이 일을 막으려면 무엇부터 달라져야 하는가. 세상을 구하겠다는 말은 넘쳐나는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디거>가 웃긴 건 인물들이 바보 같아서만은 아니다.
그 모습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변화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새로운 정부, 새로운 제도, 새로운 기술. 무언가에 '새로운'이라는 말이 붙으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생활을 바꾸는 일에는 인색해진다. 환경을 걱정하면서도 편리함을 포기하기 어렵고, 불평등에 분노하면서도 내가 누리는 작은 특권은 놓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이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오늘의 불편함 앞에서는 망설인다. 내가 하나 바꾼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금세 만들어진다. 한 사람에게는 사소한 핑계일 뿐인데, 수많은 사람이 같은 핑계를 갖게 되면 그것은 슬롯의 움직이지 않는 무게가 된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한 명의 생각을 바꾸는 것과 수많은 사람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누군가는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하고, 누군가는 지금의 질서가 무너지면 잃을 것이 많다. 또 누군가는 변화를 원하면서도 그 비용은 다른 사람이 부담하기를 바란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거대한 변화는 언제나 다음으로 미뤄진다. 정치와 슬롯는 치열하게 돌아가는데 변화는 느린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게을러서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욕망과 두려움이 너무 촘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밀면 다른 쪽에서 버티고, 겨우 조금 움직였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라는 군집은 생각보다 무겁다. 방향을 바꾸려면 모두가 조금씩 몸을 틀어야 하는데, 그 사이 누군가는 이미 반대쪽으로 걷고 있다.
블랙코미디가 재미있는 건 이런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진지하게 설명하면 화가 날 일도 우스꽝스럽게 보여주면 잠시 웃게 된다. <디거>의 록웰도 그렇다.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거대한 인물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지는 건, 그가 가진 권력과 그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 사이에 이상한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음이 끝나면 조금 불편해진다. 저 사람 하나만 사라지면 문제가 해결될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면 세상은 정말 달라질까.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비난하는 동안 더 커다란 구조를 잊어버리는지도 모른다. 물론 바카라임져야 할 사람의 바카라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을 몰아낸 뒤에도 그 사람을 만들어낸 욕망과 규칙이 그대로라면, 언젠가 비슷한 사람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얼굴만 바뀐 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될 수도 있다.
<디거>를 보고 나니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도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가 기대하는 속도와 세상이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분노하고 내일 바뀌기를 바라지만, 수많은 사람의 습관과 이해관계는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느린 변화를 기다리기만 해도 되는 걸까. 언젠가는 달라질 거라는 믿음이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핑계가 되기도 하니까.
영화 속에서는 인류를 구하겠다는 말이 우스꽝스럽게 들렸다. 그런데 극장을 나와 생각해보니 조금 씁쓸했다. 우리도 매일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바꾸고 싶다고 말하는데, 왜 세상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을까. 어쩌면 가장 어려운 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찾는 일이 아니라, 그 변화를 바라는 우리 자신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보지 않는 사람들 - <돈 룩 업>
가끔 뉴스를 보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같은 사건을 두고 사람들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별일 아니라고 웃어넘긴다. 어떤 사람은 분노하고, 어떤 사람은 그 분노 자체를 비웃는다. 분명 모두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데 바라보는 풍경은 이렇게 다르다. 처음에는 정보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을 더 많이 알면 생각도 비슷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더 오래 붙잡기도 한다. 때로는 눈앞에 분명한 증거가 있어도 그것을 인정하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돈 룩 업>에서는 지구를 향해 거대한 혜성이 날아온다. 과학자들은 충돌을 막지 못하면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 묘하다. 대통령은 정치적인 유불리를 계산하고, 방송 진행자들은 심각한 이야기를 가벼운 농담처럼 다룬다. 기업가는 혜성에 담긴 자원의 가치를 먼저 생각한다. 세상이 끝날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웃다가도 어느 순간 웃음이 멈춘다. 영화가 보여주는 사람들이 특별히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중요한 문제는 종종 누가 먼저 이야기했는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하늘을 올려다보라는 말조차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다는 점이다. 혜성은 정치적인 의견이 아니다. 누군가 믿는다고 존재하고, 믿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혜성을 바라보는 일마저 서로 다른 진영의 주장처럼 받아들인다. 하늘을 보자는 사람과 보지 말자는 사람이 갈라진다. 진실을 확인하는 일보다 자신이 속한 편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믿어온 사람들과 멀어지는 일을 더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 자신의 삶까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하늘을 보지 않는 선택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계를 지키려는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디거>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떠올랐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말은 넘쳐나는데 정작 변화는 너무 느리다는 것. 그런데 <돈 룩 업>에서는 시간이 없다. 천천히 생각을 바꾸고, 서로를 설득하고, 조금씩 합의할 여유가 없다. 혜성은 사람들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기서 인간이라는 군집의 이상한 모습이 드러난다. 한 사람은 사실을 이해할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고 함께 행동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각자 가진 믿음과 욕망, 두려움이 서로 부딪힌다. 누군가는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자기편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 사이, 시간은 흘러간다. 그렇게 보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변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블랙코미디는 그런 모습을 아주 잔인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인류의 멸망을 앞두고도 방송 시청률을 걱정하고, 지지율을 계산하고, 돈을 벌 기회를 찾는다. 너무 과장된 것 같다가도 어딘가 익숙하다. 사실 우리도 거대한 문제 앞에서 자주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환경이 걱정되지만 편리한 생활은 포기하기 어렵고, 슬롯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내게 불리한 변화는 망설인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뉴스를 보며 답답해하다가도 화면을 끄면 당장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멀리 있는 위기보다 가까이 있는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웃었던 장면들이 조금 불편해졌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도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돈 룩 업>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이 피하려 했던 현실과 마주한다. 그 순간에는 정치적인 구호도, 돈도, 방송 속 웃음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남는 건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영화 내내 사람들은 하늘을 보느냐 마느냐를 두고 싸웠지만, 정작 중요한 건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같은 진실을 바라볼 수 있을까. 아니면 끝까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될까. <디거>에서는 변화가 너무 느려 답답했다. <돈 룩 업>에서는 그 느림을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세상이 끝나기 직전까지도 우리는 서로를 설득하느라 시간을 보내게 될까. 아니면 그때쯤에는 적어도 함께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누구를 위한 변명일까 - <어쩔수가없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그렇고, 누군가에게 미안한 선택을 했을 때도 그렇다. 회사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고,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고, 가족을 생각하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 말에는 묘한 힘이 있다. 복잡한 사정을 짧게 설명해주고, 때로는 마음의 짐까지 조금 덜어준다. 나 역시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가끔은 궁금해진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 때 잃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차라리 어쩔 수 없었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 <어쩔수가없다>를 보면서 그 두 마음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걸 느꼈다.
영화 속 만수는 오랫동안 일해온 회사에서 해고된다. 성실하게 살아왔고, 자신이 맡은 일을 잘해왔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시간이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잃을 위기에 놓인 것은 단순히 월급만이 아니다. 익숙한 집과 가족의 생활,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믿어왔던 마음까지 흔들린다. 만수는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과 같은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을 경쟁자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을 제거하면 자신에게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섬뜩한 건 그 발상이 끔찍한데도 만수가 그곳까지 밀려가는 과정이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누구나 자신의 자리가 사라지는 순간에는 생각보다 절박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만수가 정말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족이 굶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누려온 생활을 잃지 않는 일이었을까. 두 가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같지는 않다. 사람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만큼이나 자신이 익숙하게 여겨온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살던 집, 가족에게 보여주던 모습,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들이 흔들릴 때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만수에게 다른 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그 길을 선택하면 지금까지의 자신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바꾸는 대신 경쟁자를 없애려 한다. 자신이 속한 경쟁의 규칙은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다시 이기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가도 조금 서글퍼졌다.
여기서 <디거>와 <돈 룩 업>이 떠올랐다. <디거>에서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이 만들어온 질서를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돈 룩 업>에서는 인류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사람들은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욕망을 먼저 계산한다. <어쩔수가없다>의 만수는 그들처럼 거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구조 안에서 밀려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가 선택한 방법은 자신을 밀어낸 구조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자신보다 먼저 다른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다. 이 점이 참 불편했다. 슬롯가 잔인한 경쟁을 강요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내 차례가 오면 그 경쟁에서 빠져나오기보다 어떻게든 이기려고 한다.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아 살아남은 사람도 언젠가는 같은 방식으로 밀려날 수 있는데 말이다.
블랙코미디는 이런 모순을 웃기게 보여준다. 만수는 자신이 하려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면서도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우왕좌왕한다. 계획은 자꾸 어긋나고, 평범한 가장의 모습과 살인을 준비하는 사람의 모습이 한 사람 안에서 부딪힌다. 웃음이 나오는 순간에도 마음 한쪽은 불편하다. 그가 특별히 잔인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우리는 종종 그런 말을 앞세워 누군가에게 생길 피해를 뒤로 미룬다. 물론 만수의 절박함을 이해하는 것과 그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에게 제거해야 할 경쟁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저마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고,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다. 모두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말 때문에 사라진 사람들의 삶은 누가 바카라임져야 할까.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나니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슬롯를 원한다고 말한다. 불공정한 경쟁이 사라지고, 누구나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하지만 그 변화가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 일과 연결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대한 제도와 권력만이 변화를 가로막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익숙한 삶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디거>에서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이 넘쳐났고, <돈 룩 업>에서는 모두가 위기를 알면서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쩔수가없다>에서는 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지우려 한다. 세 영화의 인물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 어쩌면 그 이유들이 모여 세상을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수가 입버릇처럼 되뇌었을 법한 말이 마음에 남는다.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사실은 어떤 선택을 이미 끝내놓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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