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복 짓기

예쁘게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말하는가

by김예림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있고, 말을 어렵게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알아달라고 애쓰는 말, 상대의 마음을 자기 방식대로 짐작하는 말, 자신의 신념을 보편적인 기준처럼 말하는 것. 아무리 친절한 말투를 사용해도 그 안에 분리심이 짙으면 대화는 피곤해진다.


“나는 몰라서 그랬고, 너는 (배웠으니까, 이해심이 깊으니까,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나를 이해해 줘.”


이 말은 잘못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해야 할 몫을 상대에게 넘긴다. 말은 부드러워도 나와 너를 가르는 선은 선명하다.


반대로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배우 최강희가 자신을 “제로베이스로 만드는 게 취미인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고 그랬다. 자신을 특정한 이미지로 알아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자신에 대한 규정마저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물론, 최강희의 제로베이스론은 재산과 골수기증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자기를 설명하면서도 상대를 설득하려는 힘이 들어 있지 않은 말. 듣는 사람에게도 가볍게 다시 시작할 여백을 내어주는 말. 분리보다 연결이 있는 말.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알아달라기보다, 너와 내가 얼마나 다른지를 설명하는 말보다 본질적으로 “우리”로 나아가는 말.


친절은 단지 상냥한 말투가 아니다. 상대에게도 내가 다 알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내 의도만큼 상대가 실제로 받은 느낌도 소중히 여기는 태도다-넘겨짚기보다 질문을 잘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분리심은 친절한 말도 벽으로 만들고,

원니스는 평범한 말도 연결의 다리로 만든다.


나도 더 예쁘게 말해야지.

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말보다 상대를 이해할 자리를 남기는 말, 옳음을 증명하는 말보다 서로를 연결하는 말을 해야지.


그렇게 한마디씩 말로 복을 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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