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는 중국산 반도체에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줄까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발전을 늦추고 싶었다.
가장 좋은 AI 반도체를 팔지 않고, 가장 좋은 반도체를 만드는 장비도 팔지 않는다.
그러면 중국은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도, 충분히 확보할 수도 없게 된다.
AI 시대가 시작될수록 그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논리는 간단했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실제 효과도 있었다.
중국은 아직 최첨단 노광장비와 AI 가속기, HBM, 반도체 제조장비의 여러 영역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에 뒤처져 있다. 미국과 동맹국의 수출통제가 중국 기업의 선단 기술 접근을 어렵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반도체는 조금 이상한 산업이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했다고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시장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도체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때때로 이것이다.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에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가격을 만드는 것은 결국 물량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공장을 짓기 전에 이미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노광장비와 식각·증착·세정·검사장비를 사고, 클린룸을 만들고, 공정을 개발하고, 엔지니어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공장을 완성했다고 사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공장을 계속 돌려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라면 웨이퍼 한 장에서 얼마나 많은 정상 제품을 뽑아내느냐가 원가를 결정한다.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장비 감가상각비와 연구개발비는 더 많은 칩에 나뉘어 들어간다.
생산경험이 쌓이면 불량의 원인을 찾아낸다.
수율이 올라간다.
원가는 다시 내려간다.
그래서 기존 시장을 장악한 업체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술 그 자체만이 아니다.
이미 확보한 물량이다.
후발업체는 반대의 순환에 빠진다.
생산량이 적다.
그러니 비싸다.
비싸니 고객이 기존 업체 제품을 산다.
고객이 없으니 생산량을 늘리지 못한다.
생산량이 적으니 생산 데이터를 충분히 쌓지 못한다.
수율 개선도 느려진다.
그래서 다시 비싸다.
최첨단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지 않는 나라가 많은 것도 단순히 기술을 개발할 능력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수십조 원을 투자해 공장을 지은 다음에도 남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장을 계속 돌릴 만큼 누가 사줄 것인가?
미국의 대중 반도체 통제는 한 정부에서 갑자기 만들어진 정바카라이 아니다.
트럼프 1기에는 화웨이와 SMIC 등에 대한 통제가 본격화됐고,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이후 첨단 AI 칩과 반도체 제조장비에 대한 통제를 크게 확대했다. 이후 HBM과 추가 제조장비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현재도 미중 AI 경쟁에서 반도체 접근권은 핵심 협상·안보 쟁점이다. (Reuters)
그런데 여기서 시장의 질문이 바뀐다.
엔비디아 제품을 살 수 있다면 중국 기업 역시 엔비디아를 선택할 이유가 많다.
성능이 좋다.
CUDA가 있다.
이미 검증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있다.
그런데 제품을 살 수 없다면 구매자의 질문은 더 이상
“화웨이가 엔비디아보다 좋은가?”
가 아니다.
“엔비디아를 살 수 없다면 무엇을 사야 하는가?”
가 된다.
바로 그 순간 후발업체가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 생긴다.
고객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미국의 대중 AI칩 통제를 반복적으로 비판한 것도 이 지점이다. 그는 2025년 미국의 수출통제를 ‘실패’라고 표현하면서 엔비디아의 중국 AI칩 시장점유율이 자신이 제시한 기준으로 약 95%에서 50%까지 떨어졌다고 주장했고, 중국 개발자와 기업들이 자국 기술로 이동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중국시장에 제품을 팔아야 하는 엔비디아 CEO의 사업적 이해관계를 감안할 필요는 있다. (Tiger Brokers)
하지만 산업경제의 문제는 별개다.
제재는 공급을 막는다.
동시에,
제재는 수요의 방향도 바꾼다.
9월 20일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 CXMT가 5세대 DRAM 플랫폼의 양산 진입을 발표했다.
새 공정은 SAQP, 즉 쿼드러플 패터닝을 사용해 메모리 셀의 액티브 영역 하프피치를 11.95나노미터까지 줄였다.
24Gb LPDDR5X 제품도 함께 공개됐다. (Reuters)
그리고 CXMT는 이전 세대보다 웨이퍼 한 장에서 얻을 수 있는 다이 수가 최소 50% 늘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50%는 수율 향상이 아니다.
불량을 걸러내기 전 웨이퍼당 잠재 다이 수, 즉 gross die per wafer가 늘었다는 뜻이다. 실제 테스트를 통과하는 비율인 수율과 월 생산량은 공개되지 않았다. (Seoul Economic Daily)
이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변화인 것은 맞다.
반도체 제조에서 동일한 웨이퍼에서 더 많은 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CXMT의 기술축적 과정에는 불법적인 기술유출 사건도 있었다.
2026년 4월 한국 법원은 삼성전자의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 DRAM 공정기술을 CXMT에 유출한 혐의로 전직 삼성전자 연구원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중국 산업 전체를 기술탈취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CXMT의 성장 과정에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법원 판단으로 확인됐다. (Reuters)
중국은 기술을 얻기 위해 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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