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좀 잡아볼까나.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 나는 한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어떤 회사에서 채용 공고를 냈는데 지원자가 생각보다 너무 많이 몰렸대. 담당자는 산처럼 쌓여 있는 지원서를 보며 '저걸 언제 다 확인하나.' 하고 한숨을 쉬었어.
그런데 그의 매니저가 와서 지원서 뭉치 절반을 집어 들더니, 보지도 않고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거야. 놀란 담당자에게 그 매니저가 한 말,
"난 운 나쁜 사람들이랑 일 안 해."
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음 날 매니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의감 넘치는 그녀는 분개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커리어가 달린 일을 그딴 식으로 처리할 수가 있어?"
"그, 러게 말이에요. 하하..."
머쓱해진 나는 그녀에게 동조하는 척했다. 순간 그런 농담을 재밌다고 전한 나 자신이 너무 생각 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그렇지. 한 사람의 인생이 달렸을지도 모를 일을 어떻게. 정말 질 나쁜 농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 농담을 꽤 좋아한다.
어이없는 내용 자체가 재미있어서라기 보단, 어쩌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그 씁쓸한 블랙유머가
'현실'과 너무 닮아 있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는 사실 매우 인간적인 발상이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고, 소가 뒷걸음을 쳤는데 쥐가 밟혀 죽는다.
누군가가 길 한가운데에 던져놓은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고, 그것도 재수 없게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진다.
우주의 관점에서 우리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억울함을 토로해도 꿈쩍도 않는다.
하지만 너무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우리에게 관심 없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한테만 관심이 있다.
나의 돈, 명예, 커리어적 성공, 건강, 가족, 말년운. 내가 갖고 태어난 거. 내가 앞으로 얻을 거.
내 거. 내 거. 나. 나. 나.
타인의 행복과 안녕? 이상적 슬롯? 세계 평화? 지구 생태계 보전? 우주의 뭐시기?
그런 것도 다 자기 자신과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관심을 가지는 거 아닌가?
우리는 흔히 묻는다.
"난 어떤 운을 타고났나요? 내 운은 언제 좋아져요?"
여기서 문제가 불거진다.
우주의 지극한 무관심과 나의 지대하게 편중된 관심 사이에 부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간과하곤 한다.
나에게 '운'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에게도, 이 세상에도 '운'이 있다는 것을.
몇 년 전 재미로 나의 인생 점수를 점쳐본 적이 있었다. 10년 단위로 점수가 매겨지는데, 50대로 접어들기 전까지 일관되게 100점 만점에 40-45점이었다. 시험 점수로 치면 '수우미양가' 중 '가'인 셈이다. ㅋㅋ
무려 절반 이상이 '가'인 인생. 놀랍지는 않았다. 재미로 본 건데 잘 맞아서 오히려 깜짝 놀랐다.
돌이켜 보면 진짜 그랬다. 20대는 특히나 암울했다. 깜깜한 망망대해에서 방향도 모르고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늘 뭔가 하긴 했는데, 언제나 불만족스러웠고 불안했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20대 후반, 나는 도저히 가망이 보이지 않는 커리어를 버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리고 매우 늦은 나이에 다시 삐약삐약 병아리로 되돌아가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마침 그때 임신에 대한 압박도 더해져서, 나는 첫 온라인 게임에서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첫째를 출산했다. 그러고 나서 1년 반의 공백기간이 찾아왔다. 고작 1년밖에 안 되는 커리어 위에 그보다 더 긴 1년 반이라는 빈칸이 쌓인 것이다.
물론 그 1년 반동안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계속 일자리를 알아보고 이력서를 내고 인터뷰를 봤다.
그러나 세상은 나 같은 초짜에게, 가뜩이나 영어권 나라에서 영어도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가차 없었다.
낙방. 낙방.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인터뷰를 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요령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떨어진 인터뷰는 정말 아까웠다. '네가 영어만 좀 더 잘했더라도 너를 뽑았을 것'이라는 고마운 리뷰도 받았다. 이 바닥은 좁으니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하지만 거듭되는 실패에 마음이 옹색해진 내 귀에 그 말은 전혀 격려로 들리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영어가 문제라니. 한시라도 빨리 온라인 게임을 구하고 싶었던 나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젠 진짜 뭘 해도 안 될 거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구인광고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Assistant Data Analyst(보조 데이터 분석가)".
슬롯 초년생을 위한 주니어 자리였다.
그때까지 내가 지원했던 자리는 런던 카운슬(London borough councils; 구청 같은 곳. 런던에는 City of London을 제외한 32개의 자치구(borough/local authority)가 있다.)의 공중보건 데이터 분석가(Public Health Data Analyst)였다.
사실 당시의 나한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학사 전공과 거의 접점이 없는 학문을, 고작 1년짜리 석사과정을 마치고 1년 Research Assistant(연구 보조)로 일한 경험만 가지고 덤볐으니까. 그것도 영어도 잘 못하면서.
하지만 카운슬에는 나 같은 주니어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에서 가능한 많은 걸 끄집어내야 하기에 잡일이 많은(=주니어의 일) 리서치 환경과 달리, 이미 고정된 형식의 데이터에서 매년 거의 같은 걸 뽑아내고 있는 카운슬의 생태계에선 주니어가 필요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자리가 나온 거였다.
'이것마저 안 되면 진짜 답이 없는 거지.'라는 생각과 '난 이것조차 안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엄청 우울해했다.
어찌 보면 제일 희망적이었던 시기에 바닥만 치고 있던 내게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안 될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고, 될 일은 가만히 있어도 되더라."
그 한 마디에 나는 모든 걱정과 집착을 내려놓았다. 안 되면 까짓 거, 연구 보조 몇 년 더 하지 뭐.
그렇게 편하게 테스트를 보고, 인터뷰를 보고,
합격했다.
그렇게 데이터 분석가로의 나의 길이 시작되었다.
이건 내가 노력해서만도, 운이 좋아서만도 아니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던 주니어 자리. 턱 하나를 못 넘어서 주저앉아 있는 나를 도와준 디딤대.
그걸 만든 건 한 사람의 통찰력과 실행력, 능력 및 수완이었다.
Public Health Department의 부서장. 그녀는 위치상 바로 옆에 붙어 있고 여러모로 상황이 비슷한 두 자치구의 부서를 하나로 묶으면 반복적인 업무를 줄이고, 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며, 그걸로 팀을 발전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다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녀로 인해 재구성된 부서에 나는 막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2년 반 뒤 출산 휴가 중 '보조' 타이틀을 뗐고, 과거의 나와 같은 주니어들의 매니저가 되었다.
절대 꽃길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 고마운 때였다.
사람은 절대 자기 운만 가지고 살지 못한다.
남의 인생이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나의 인생이 남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설령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고 해도 환경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어딘가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다른 어딘가에서 태풍이 분다. 그 태풍으로 누군가는 집을 잃고, 누군가는 가뭄의 단비를 얻는다.
이런 상황에서 미약한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건 우선 '나'를 아는 것.
그리고 모르던 걸 알아가는 것 정도가 아닐까.
새로운 문은 새로운 길을 열고, 새로운 길은 곧 아는 길이 된다.
그 길 위에서 우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울고, 화내고, 용서하고, 또 용서받으며 서로의 운명을 끼워간다.
화창한 날 눈부신 잔디밭 위를 팔랑팔랑 날아가던 노란 나비.
그저 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그 나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나.
누군가가 내게 그랬듯,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주 작은 것이어도 좋으니.
비로소..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