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공평은 투명 드래곤이나 다름없다. 땅 위에 정착시켜 보려는 시도는 있어 왔으나, 정확히 그게 무얼 뜻하는지에서부터 삑사리가 난다.
그러나 세상은 완벽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뭔가를 시도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의미가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하지만, 하지만 말이죠...
1. 차별
노예무역. 그중 제일 잘 알려지고 악명 높은 '대서양 노예무역'. 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노예선에 태워 아메리카 대륙으로 데려간 일인데, 그 과정이 악랄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가 그리 멀지 않은 근대까지도 성행했다는 측면에서 여러모로 인류애를 잃게 만든다.
당시 백인들의 눈에 흑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노예는 원래 그렇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그처럼 대한단 말인가.
인간이 인간을 같은 인간 취급하지 않은 이유에는 피부색 말고도 많이 있다.
성별, 종교, 성적 지향(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선천적 특징이나 기질, 후천적으로 얻은 무언가.
'너희'와 '우리'를 갈라놓을 만큼, 다양하게.
2. 반항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인간이기에, 차별당하는 자는 언젠가 대항하기 마련이다.
'BLM(Black Lives Matter)'을 기억하시는지. (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아니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BLM 얘기를 꺼냈는지는 차차 보시면 아실 겁니다) 직역해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주로 아프리카계 흑인에 대한 차별 반대 운동이다. 2013년에 시작되었지만 지금처럼 널리 알려진 것은 2020년부터이다.
그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미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나면서 BLM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무려 8분 46초 동안 경찰의 무릎에 목이 압박되어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기 위해 미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의 정치인들이 무릎을 꿇고 묵념하는 모습(ㅎ)을 뉴스에서 보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요새 페미니즘 얘길 하면 아마 욕하면서 떠나실 분들도 있으실 거 같은데, 가지 말고 조금만 더 들어보시길.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아마 당신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닐 테니까.
여성 참정권의 역사는 이제 겨우 백 년 남짓이다. 그전에 여자는 투표할 수 없었다. 왜냐면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가정을 지키면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 참정권이란 것도 그냥 주어진 게 아니었다. 격렬한 시위로 싸워서 얻어낸 결과였다.
말이 좋아서 저항이지, 모든 차별에 대한 반항은 실제로는 진흙탕 싸움이다. 바꾸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얻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사이의 서로에 대한 몰이해의 간극만큼 치열한 생존 싸움이 벌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같은 편(?) 사이에서도 대립은 종종 일어난다.
3. 고성(高聲; 높고 큰 목소리)
차별과의 싸움은 매우 힘들다. 이미 고착된 체계를 바꾸는 일이므로.
바꾸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요란하게 깨부수거나, 시간을 들여서 인식을 바꾸거나.
대부분은 전자다. 후자로 시작해도 전자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관성은 무섭다. 차별하는 쪽은 물론 차별당하는 쪽도 웬만해서는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변화는 대체로 요란하다.
요란한 곳에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있기 마련. 입이 무거운 민중을 대신하여 기꺼이 혀를 놀리는 역할로, 외부에 드러나는 그 집단의 얼굴이자 전차의 기수이다.
여기서 문제는, 그 기수가 방향을 제대로 아는가인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럼 그 집단의 이미지는 변질되고 정당성을 잃으며, 안 그래도 사기 쉬운 빈축을 사게 된다.
대규모 슬롯 운동에는 사람이 모인다. 예나 지금이나 숫자는 힘이다. 요즘 같은 민주주의 슬롯에서는 더더욱.
꿀이 있는 곳에 벌레가 꼬이듯, 힘이 모이는 곳에는 그걸 이용하려는 인간들이 꼬인다. 최악의 조합은 리더가 그런 인간이고 포퓰리즘 정치인과 결탁하는 것이다. 꼭 리더가 아니어도 밖에서 보기에 제일 목소리가 큰 인간들이 그러면 결과는 똑같다. 내부에서 빨리 자정작용을 하지 않는 한 어차피 다 똑같은 취급을 받을 것이므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는 것같이.
그들의 목적은 문제의 개선이 아니다. '부당함을 바꾸려고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여러분'을 가능한 오래 보여주는 것이며, 그걸 위해서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고, 절대 근본적인 해결바카라이 될 수 없는 길을 정답이라 외치며 자신들이 꼭 그걸 쟁취해 주겠다고 사람들을 붙잡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편, 즉 상황을 바꾸고 싶지 않은 쪽에게도 매우 좋은 기회가 된다. 비판의 구실이 생기는 거니까.
원래의 의도, 양측 주장의 정당성 따위는 이제 잊힌다.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혐오의 장'이 펼쳐진다. 아직 없는 길을 모색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게 쉬우므로.
'우리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야',
이건 분열과 혐오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데.
둘이 싸우면서 서로 이득을 보는 동안, 등도 터지고 속도 터지는 건 진짜 피해자들이다.
4. 결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근데 이걸 꼭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게, 실제로 가장 큰 적은 언제나 내부에 있다.
성별이 무엇이든, 어떤 인종이고 국적을 가졌든, 성적 지향, 세대, 종교, 정치적 성향 등에 상관없이
당신과 나의 가장 큰 적은
관성에 순응하고, 쉽게 선동당하며, 새로운 혐오를 낳는
우리들 자신이다.
부족한 제가 민감한 사안에 대해 감히 주절주절 떠들었습니다.
길게 얘기하면 딴 데로 샐 거 같아서 간략하게 다뤘는데, 절대 간단한 문제가 아닌 관계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리라 생각합니다.
비판 환영입니다. 부디 많이 가르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