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화를 낼 것인가

by민토리

당신은 터널 속을 걷고 있었다. 이대로 포기하지 않고 걷고 또 걷다 보면 언젠가는 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당신은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타날 때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당신은 머뭇거리거나 주저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또 한 번의 선택을 하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당신이 선택한 길이 당신이 꿈꾸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를 바라면서.

어느 날에는 그 갈림길에서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갔어야 했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고, 다시 돌아가 볼까 고민하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이 터널이 끝나긴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당신은 막다른 길을 마주한다.

당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위로 올라가거나, 아니면 돌아가서 다른 길을 찾거나.

위를 쳐다보자 빛이 쏟아져 내려온다. 위의 세상이 어떤지는 올라가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그곳이 이 어두운 터널 속보다는 나을 거란 기대가 생긴다.

당신은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일단 올라가 보자,라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올라가는 게 쉽지가 않다.

발을 디딜 건 하나도 없고, 벽에 난 뭔가를 잡고 올라가려고 해도 번번이 미끄러 넘어진다.


당신은 위에서 지나쳐 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도와달라고 소리쳐본다. 도와달라고, 아니면 잡고 끌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을 테니, 뭔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수단이라도 알려달라고.

그 와중에도 당신은 혹시 다른 길이 있을까 싶어 벽을 파보기도 하고, 동아줄도 만들어 보고, 하여튼 별짓을 다해 본다.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서 말한다.

나도 당신과 같았다고. 그래도 나 때는 누가 사다리를 내려줘서 그걸 타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당신은 그 사람의 말에 희망을 얻고 말한다. 그 사다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거냐고. 내가 고쳐서라도 쓸 테니 사다리가 어디 있는지 알려 달라고. 아니면 당신에게 주어졌던 사다리와 비슷한 거라도 줄 수 있겠냐고.


그 사람은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은 감사한 마음으로 그 사람의 지시대로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다리는커녕 나무 작대기 하나 안 보인다.


나중에야 당신은 깨닫는다.

그때의 사다리를 없애버린 건 그 사람이었단 걸.

자신은 그걸 타고 올라갔으면서, 뒤에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그 사다리를 걷어차 없애 버리고, 이제는 자신이 감시자가 되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노력을 해라.'

'그 정도 노력으로는 올라올 자격이 없다.'

'내가 지금 네 상황이었을 때는 그보다 더 열심히 뛰었다.'

'너는 여기 보다 거기에 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뿐이랴. 자력으로 아득바득 벽을 잡고 올라오는 사람을 내려다보며 그런 소리도 한다.

'널 여기서 떨어뜨리는 건 내게 아주 쉬운 일이야.'


또 누군가에게는 줄을 내밀어 살랑살랑 유혹하기도 한다.

'내 말 잘 들어. 그럼 내가 이 줄을 네게 내려 줄지도 모르니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당신은 어쩌면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 그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행태가 아니꼬워도 일단 올라가기만 하면 당신도 그 사람과 같은 위치에 있게 될 테니. 그러니 치사해도 일단은 그 장단에 맞춰주자,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누가 사다리를 내려 줬다고 해도, 그건 말 그대로 기회를 줬을 뿐이지 실제로 그걸 잡고 험한 길을 올라간 데는 그 사람의 능력과 노력도 큰 몫을 했으니까. 그 사람은 유능했고, 또 영악했다.

그 사람은 인재를 선별한다는 이유를 대며, 감시자 역할을 자처했다. 위로 올라오는 길이 어려울수록, 그 기준을 통과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그 길을 올라온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 사람이 눈앞에서 흔들어 대는 줄을 잡기 위해 야근도 불사하며 일하던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 지치기 시작한다. 이런다고 진짜 갈 수 있긴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고, 줄을 잡고 있는 손을 그대로 물어뜯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한다.

나중에는 그 사람의 그런 행태를 묵인해주고 있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전체에게 화가 날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올라가야 하는 시스템 자체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종국에는 그냥 다 때려치우고 다른 길이나 알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다.

다른 길로 간다고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이 사람보다 더한 인간들이 존재해서 방해공작만 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돌도 던져 댄다면?

아니면 올라가는 길이 좁아서 사람들끼리 피 터지게 서로를 밟고 밟아야 하는 곳이라면?

다른 길을 갔는데 여기보다 더 깊은 구덩이에서 시작해야 하면 어떻게 하지?

아니면 아예 밖으로 나갈 방법조차 없는 길이라면?


거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꼭 올라가야 하나?

그냥 여기 있어도 괜찮지 않나?


물론 머무른다고 안전하단 소린 아니다. 어느 날 지진이나 산사태가 일어나서 땅이 꺼질지도 모르고, 아니면 위에서 더 이상 내가 있는 터널은 필요 없다며 입구를 막아버릴지도 모르니까.


...........


일은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쉬운 길과 어려운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