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 해보면서 되어가는 사람
첫 강의를 앞두고 나는 가방을 몇 번이나 열어봤다. 노트북이 들어 있는지, 충전기는 챙겼는지, 준비한 자료는 제대로 저장되어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이미 확인한 것을 또 확인하면서도 마음은 좀처럼 놓이지 않았다.
강의 자료는 여러 번 수정한 뒤였다. 글자가 너무 작은 건 아닌지, 설명이 어렵지는 않은지, 순서가 자연스러운지 계속 들여다봤다. 한 장을 고치고 나면 다음 장이 마음에 걸렸고, 마지막까지 손을 놓기가 어려웠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그 마음 안에는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많이 들어 있었다. 첫 강의를 앞두고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내가 정말 누군가를 가르쳐도 되는 사람일까.
누군가 앞에 서서 무언가를 설명한다는 일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충분한지, 질문을 받았을 때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배우는 쪽에 더 익숙했다. 회사에서도 새로운 일을 맡으면 먼저 익히고, 필요한 내용을 찾아보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배웠다. 누군가에게 내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자리는 아직 낯설었다.
그래서 ‘강사’라는 말도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내가 그 이름을 사용해도 될까 싶었다. 강사라면 말을 잘해야 할 것 같았고,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할 것 같았고, 사람들의 질문에도 바로 답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아주 능숙한 사람을 하나 만들어놓고 그 사람과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긴장하지 않고, 설명도 매끄럽고,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그 사람과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강의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준비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집에서 혼자 설명해보기도 하고, 화면을 넘겨보며 어떤 말을 할지 정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준비만 충분히 하면 긴장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준비를 많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잘 보였다. 하나를 확인하면 또 다른 것이 궁금해졌고, 혹시 이런 질문이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늘어났다. 준비는 불안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했다.
강의 당일에도 평소보다 일찍 움직였다.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간을 몇 번이나 확인했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 첫 인사를 되뇌었다. 첫 문장부터 막히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강의 장소에 도착하니 아직 사람들이 오기 전이었다. 빈 의자와 바카라상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긴장이 더 커졌다. 조금 뒤면 저 자리에 누군가 앉아서 나를 바라볼 거라고 생각하니 손끝까지 괜히 바빠졌다.
노트북을 연결하고 화면이 잘 나오는지 확인했다. 준비한 파일을 열고 첫 장을 띄웠다. 익숙할 만큼 많이 봤던 화면인데도 그날은 낯설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안내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정말 내가 해도 괜찮을까.
정해진 시간이 되었고, 나는 앞에 섰다. 준비했던 인사를 하고 첫 화면을 넘겼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조금 떨리는 것 같았고, 처음 몇 분 동안은 준비했던 말을 놓치지 않는 데 집중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듣고 있는지 살필 여유도 많지 않았다. 내가 만든 자료와 기억해둔 순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게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내가 설명한 내용을 직접 따라 해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질문을 했고, 나는 내가 아는 만큼 천천히 대답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나오면 순간 머릿속이 잠깐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서 다시 알려드리겠다고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 조금 안심했다.
강사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구나. 내가 먼저 경험한 것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해주는 사람이어도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강의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앞에서 지식을 보여주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조금 더 쉽게 풀어주는 것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나는 복잡한 내용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았다. 당시에는 그것이 강의와 연결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에 서보니 그때 쌓인 경험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를 돕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익힌 방식들을 조금 다른 자리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설명하고, 정리하고, 상대가 이해했는지 살피는 일은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강의 중간에는 작은 웃음도 나왔다.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서 분위기가 조금 편안해졌고, 나도 준비했던 문장만 읽지 않고 내 경험을 섞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강의가 조금 더 내 것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예상했던 완벽한 모습과는 달랐다. 말이 잠시 꼬이기도 했고, 설명을 다시 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준비한 시간과 실제 진행 시간이 달라서 속도를 조절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순간을 지나면서 하나씩 배웠다. 이 부분은 다음에 더 쉽게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는 예시를 하나 추가하면 좋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강의는 준비한 만큼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직접 해보면서 계속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실제로 사람들 앞에 서고 나서야 보였다.
시간이 지나 마지막 화면이 나왔다. 강의를 마무리하고 인사를 했는데, 그제야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끝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조용히 벅찼다.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끝까지 했다. 그 사실이 생각보다 크게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의를 다시 떠올려봤다. 아쉬운 부분도 많았고, 다음에는 고치고 싶은 것도 여러 개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작하기 전처럼 나를 의심하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잘할 수 있겠다. 그 문장이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말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번 경험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음이 생겼다. 무엇을 고치면 되는지 알게 되었고, 한 번 해봤다는 경험도 생겼다. 시작하기 전에는 없었던 작은 자신감도 남았다.
첫 강의를 앞두고 나는 계속 자격을 생각했다. 내가 충분히 알고 있는지, 강사라고 불릴 만큼 준비된 사람인지, 누군가 앞에 설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의를 마치고 나니 질문이 달라졌다. ‘내가 해도 될까’보다 ‘다음에는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조금 앞으로 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너무 자주 허락을 기다린다. 누군가가 이제 충분하다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완벽하게 준비되었다는 확신이 생기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생각보다 잘 오지 않는다.
나 역시 완벽하게 준비된 뒤 강사가 된 것이 아니었다. 한 번 앞에 서보고, 한 번 설명해보고, 아쉬운 점을 고치면서 조금씩 강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격은 시작 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새로운 기회 앞에서도 가끔 첫 강의를 떠올린다.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많이 걱정했는지, 그리고 막상 시작하고 나서는 어떻게든 해냈는지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새로운 일을 앞둔 나에게 작은 증거가 되어준다.
여전히 긴장하고 여전히 잘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두려움이 사라져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첫 강의를 앞두고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내가 정말 해도 될까’였다. 그리고 첫 강의를 마친 뒤 가장 오래 남았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해도 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해보면서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날 나는 완벽한 강사가 되지 못했다. 대신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선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가끔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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