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으면 못 살아

by단미

“이게 뭐지?”


퇴근하고 손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무심히 둘러보던 내 눈에 희미하지만, 점점이 박힌 듯한 검은 점들이 들어왔다. ‘아니, 이것은 곰팡이?’


그랬다. 욕실 벽 한쪽에 검은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곰팡이라기보다는 검은 때가 타일 벽에 피어난 것 같았다. 아침에는 분명 못 보던 것인데, 하루 사이 때가 자란 건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현실이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이번에는 싱크대 틈새에 까만 때가 붙어있었다. ‘분명 아침에는 깨끗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욕실 벽도 그렇고 싱크대 틈새도 그렇고.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욕실만 그렇다면 내가 못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싱크대에서도 전에 보이지 않던 틈새의 때가 뚜렷하게 보였다.


평소에 집안일을 대충 하기는 한다. 청소도 그렇다. 사는 데 거슬리지 않을 만큼만 하고 사는 편이다. 그러니, 온 집안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은 아니다.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곰팡이나 찌든 때를 보고도 그냥 두지는 않았을 텐데, 사실 조금 충격이었다.


'그동안 나 이렇게 살고 있었나?'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먹고 씻고 살고 있었다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분명 눈에 보이는 모습은 깨끗했다. 빛이 날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깔끔하지’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평소 시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피할 수 없는 노안이 찾아왔다. 일하는 데 불편함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돋보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집안일할 때는 대부분 돋보기를 쓰지 않는다. 흐릿해진 눈으로 집안을 쓸고 닦으니, 모든 것이 깔끔하고 깨끗해 보였다.


그날은, 돋보기를 사용할 일이 있어 안경을 쓰고 있다가 그대로 욕실에 들어갔고, 그제야 검은 때가 보였다. 보고도 볼 수 없다니, 충격이었다. 이건, 눈뜬 봉사가 따로 없다. 어떻게 이런 게 안 보일 수가 있지? 나 시력 좋은데.


그동안 ‘대충하는 살림이어도 이 정도면 됐지’ 했던 마음은 어쩌면 눈뜬 봉사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시댁에 갔을 때 일이다. 워낙 깔끔하시던 시어머니의 욕실에서 세면대에 까만 때가 낀 것을 발견했다.

‘웬일이지? 시어머니 성격에 이런 걸 그냥 두고 보실 분이 아닌데.’

그 후로도 몇 번 그런 경험이 있었다. 아마도 그때 시어머니에게도 노안이 찾아왔던 모양이다.

그때는 왜 시어머니가 이런 걸 못 보셨을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다. 사람은 보이는 것을 일부러 외면하는 게 아니라, 정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이지 않던 때까지 볼 수 있게 해준 돋보기안경을 원망해야 할까, 고마워해야 할까. 이제는 돋보기안경 없이는 집 안 구석구석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러니 어쩌면 정말, 너 없으면 못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