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사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사할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노동을 필요로 하는가. 감사하게도 물리적인 이사를 한지는 6년이 넘은 것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정신적인 이사는 수없이 하고 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다른 세계로 이사해야 겠다는 의욕이란 것이 생겨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현재에 대한 애착과 습관과 익숙함은 다른 어떤 세상보다도 달콤했으며 찬란한 벚꽃이 흐드러지는 봄날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 찬란한 것들이 환상이었음이 드러나고, 이제 방을 빼고 이사를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정신적인 고통의 총량이 다하고 더이상 방법이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서기까지 수만번의 고민과 방황과 괴로움에 휩싸였으며 그것은 유의미했고 절망이었다.
인생에 절망이란 것이 어디에 있던가...
인생에 절망이란 죽음외에 없다. 하물며 영혼의 구원을 믿는 나로써는 죽음은 절망이 아닌 부활이라는 완전한 이사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간의 한계를 맛보고 이제 아무런 미련이 없다. 할 수 있는 짓이란 짓은 모두 해보았기 때문에 완벽히 패배하였으며 완벽히 해소되었다.
인간의 고통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어떤 특정한 것을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주어지는 데로 살아간다면 고통이란 거의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정신적인 유대감과 생각의 깊이를 가진 이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모두와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세상, 다른 차원에 있는 것만 같은 이방인의 느낌은 한없는 외로움과 극도의 고립감으로 교감할 누군가를 찾아 헤매일 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어리석은 짓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무도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누군가에게 자신의 빈곳을 채움을 받기를 원한다. 자신 스스로 서있는 채우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이른 사람을 흔히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면서 그런 사람을 찾으려 한 자신의 모순을 보는 것 또한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 가식적이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자신의 삶을 만들지 못하고 세상이 말하는 성공하는 삶으로 나아가다가 자신이 소외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노후에 인생의 허무함이 찾아온다.
나로서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단계이지만 자신다운 삶, 내가 나에게 맞는 삶은 찾아내었고 그로서 만족하는 부분이 있다.
신은 내게 어떤 것은 만족을 주시고, 어떤 것은 억울함을 주셨다.
그리고 인생은 다 가질 수 없다고 말하시는 것도 같고, 아직 네가 부족하서 줄 수 없다고 말하시는 것도 같다.
그릇이 부족하면 축복이 오더라도 담아내지 못하고 흘려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세상으로 이사가는 것은 부족한 그릇을 채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너무나 다행인 것은 죽음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으로 이사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인생에 죽음은 흔하디 흔한 도피처이지 않은가. 이 고단한 세상을 벗어나고 싶을때 우리는 자신을 죽이고 싶어진다.
참말로 다행인 것은 꾸역꾸역 수많은 파편으로 상처입은 영혼을 걸치고 아주 천천히 짐을 싸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또한 아련한 추억의 챕터로 남겨질 것이다.
조용하게 단단해진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