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 남자가 자꾸 궁금해졌다
도진의 메시지는 별것 아니었다.
“오늘도 일해요?”
서연은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참 재미없는 질문이었다.
오늘도 일하느냐니.
그녀에게 일을 하느냐고 묻는 건
해가 오늘도 뜨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했다.
서연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네. 오늘도요.”
곧 답장이 왔다.
“도대체 언제 쉬어요?”
서연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언제 쉬더라.
생각해 보니 자신도 잘 몰랐다.
쉬는 날이 생기면 밀린 일을 했고,
시간이 조금 남으면 다른 일을 찾았다.
가만히 있으면 이상하게 불안했다.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고 있으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었다.
서연은 장난스럽게 답했다.
“죽으면 오래 쉬겠죠.”
곧바로 전화가 울렸다.
도진이었다.
서연은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왜요?”
“그런 말 하지 마요.”
평소와 조금 다른 목소리였다.
“뭘요?”
“죽으면 쉰다는 말.”
“농담인데.”
“나는 그런 농담 싫어요.”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쉬어.
그런 말들은 대개 서연이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자신이 듣는 말이 아니었다.
도진이 다시 말했다.
“돈도 중요하지만 몸부터 챙겨요.”
서연은 괜히 웃었다.
“도진 씨가 내 생활비 내줄 것도 아니면서.”
“아, 또 그렇게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아프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너무 맞아서 오히려 듣기 싫은 말.
서연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도진 씨는 오늘 뭐 했어요?”
그날 두 사람은 별것 아닌 이야기를 오래 했다.
무슨 일을 했는지,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날씨가 왜 이렇게 더운지.
그리고 전화를 끊은 뒤
서연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별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가벼웠다.
그녀는 그 이유를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 뒤였다.
일을 마친 서연은 지하철에 앉아 휴대전화를 꺼냈다.
메시지가 없었다.
그녀는 화면을 껐다.
잠시 후 다시 켰다.
없었다.
‘뭐야.’
누가 연락하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허전했다.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메신저를 다시 열었다.
도진의 마지막 접속 흔적을 확인하려다가 손을 멈췄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미쳤나 봐.”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슬쩍 쳐다봤다.
서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지하철 창문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피곤했다.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눈 밑에는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데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서연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웃지 마.’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웃고 있었다.
도진은 이상한 남자였다.
거창한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서연이 무언가를 말하면 중간에 말을 자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뜬금없이 물었다.
“그건 어떻게 됐어요?”
처음에는 서연이 오히려 되물었다.
“뭐가요?”
“며칠 전에 말했던 거 있잖아요.”
그제야 서연은 기억했다.
자신조차 잊고 있던 이야기를
도진이 기억하고 있었다.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별것 아닌 것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좋은 쪽으로.
어느 날 도진이 말했다.
“서연 씨는 웃을 때가 제일 예뻐요.”
서연은 바로 받아쳤다.
“안 웃으면 못생겼다는 얘기네요?”
전화기 너머에서 도진이 웃었다.
“꼭 말을 그렇게 받아요.”
“정확하게 해석한 건데.”
“그냥 예쁘다고요.”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가 지금 몇 살인데.’
그녀는 얼른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그래도 얼굴은 식지 않았다.
더 황당한 건 그다음이었다.
전화를 끊고 화장실에 갔다가
거울 앞에 멈춰 섰다.
자신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다.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그리고 웃어봤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려, 서연아.”
혼자 중얼거리다가 결국 웃음이 터졌다.
누가 봤으면 큰일 날 일이었다.
쉰을 훌쩍 넘긴 여자가
남자에게 예쁘다는 말 한마디 들었다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이라니.
그런데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서연은 조금씩 도진이 궁금해졌다.
오늘은 무엇을 했을까.
밥은 먹었을까.
왜 연락이 없을까.
지금쯤 퇴근했을까.
그 생각이 시작되면 서연은 스스로를 말렸다.
‘아니야.’
괜한 의미를 만들지 말자.
남녀 사이가 아니어도 다정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잘해주는 데 반드시 이유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은 이런 감정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이
머리가 정한 규칙을 잘 지켜주는 물건은 아니었다.
도진에게서 전화가 오면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메시지가 오면 바로 확인하고 싶었다.
일하다가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어느 날은 정말 별것 아닌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길가에 핀 꽃이었다.
보내려다가 지웠다.
다시 사진을 열었다.
또 닫았다.
‘이걸 왜 보내.’
30초 뒤.
서연은 결국 보냈다.
“예쁘죠?”
도진의 답은 금방 왔다.
“꽃이요?”
서연은 피식 웃었다.
“그럼 뭐가 예뻐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꽃 찍은 사람.”
서연은 휴대전화를 탁 엎어버렸다.
“미쳤어.”
그런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잠시 뒤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가 또 지웠다.
결국 보낸 건 고작 두 글자였다.
“참나.”
도진에게서 웃는 이모티콘이 왔다.
그날 서연은 이상하게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밤이었다.
도진과 영상통화를 하게 됐다.
서연은 처음에는 화면을 켜지 않겠다고 했다.
“싫어요. 나 지금 엉망이야.”
“누가 잡아먹어요?”
“도진 씨가.”
“내가 왜요?”
“못생겼다고 놀릴 것 같으니까.”
“일단 켜봐요.”
한참 실랑이를 하다 서연이 화면을 켰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얼굴이었다.
화장기도 거의 없었다.
머리는 대충 묶여 있었다.
서연은 괜히 머리카락을 만졌다.
“봐요. 엉망이지?”
도진은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예쁜데.”
서연이 웃었다.
“거짓말.”
“진짜.”
“눈이 나쁜가?”
“아니.”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내 눈에는 예뻐요.”
그 순간이었다.
서연의 가슴 어디선가
아주 오래 잊고 있던 감각 하나가 움직였다.
쿵.
별것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내 눈에는 예뻐요.
모든 사람에게 예쁠 필요는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누군가 한 사람의 눈에만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도 괜찮다는 말처럼 들렸다.
서연은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다가
화면을 껐다.
다시 켰다.
도진과 나눈 대화를 위로 올려봤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곧 웃음을 거뒀다.
조금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설마.’
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보고 싶어 하고,
한마디에 웃고,
연락 하나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
적어도 지금까지의 서연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있었다.
휴대전화를 찾는 것.
그리고 도진에게서 온 메시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
메시지가 하나와 있었다.
“잘 잤어요?”
서연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그 순간 문득 알았다.
큰일 났다.
자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진을.
아니,
도진에게서 오는 마음을.
그날 서연은 거울 앞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서연아.”
그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
“너 설마…”
차마 다음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거울 속 여자는 이미 웃고 있었다.
2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