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답지 않게 선선했던 초여름이 지나고, 7월이 되자 장마와 더위가 한꺼번에 들이닥쳤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공기는 눅눅하고, 셔츠는 금방 등에 달라붙고, 지하철역까지 걷는 짧은 길도 괜히 길게 느껴집니다. 이 녹진한 더위가 오면 어떤 옷을 입어도 시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회사에 도착해서 얼른 에어컨 바람 아래 앉고 싶다는 생각뿐이죠.
그렇다고 매번 반팔 티셔츠만 입고 출근하기에는 마음이 조금 허전합니다. 물론 편합니다. 세탁도 쉽고, 아무 생각 없이 입기에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입고 나간 날은 이상하게 하루 전체가 대충 흘러가는 기분이 듭니다. 어차피 일하러 가는 날이고, 어차피 똑같은 회의와 메일과 보고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내 옷차림마저 완전히 포기해버리면 하루가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온라인 게임인의 하루에는 때로 작은 멋 하나가 필요합니다. 거창한 꾸밈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그래도 오늘은 조금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킥(Kick) 같은 것 말입니다.
저는 그럴 때 찰랑거리는 소재의 셔츠를 입습니다. 안에는 얇거나 몸에 살짝 달라붙는 슬리브리스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얇고 흐르는 셔츠를 걸칩니다. 셔츠 단추는 전부 잠그지 않고 2~3개 정도만 잠가 목선이 조금 여유롭게 보이게 합니다. 거기에 목걸이나 팔찌를 더하면, 출근복과 휴양지 복장 사이 어딘가에 있는 느슨한 여름 스타일이 만들어집니다.
봄과 가을, 겨울에는 재킷에 타이까지 매던 사람의 복장이라고 생각하면 꽤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에는 조금 달라져도 괜찮습니다. 매일 시간에 쫓겨 출근하고, 사무실에 앉아 버티고, 퇴근길에는 다시 습한 공기 속으로 걸어 나와야 하는 계절이라면, 옷차림만큼은 조금 느슨해져도 됩니다. 이런 스타일이야말로 여름에만 가능한 무드입니다.
이런 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찰랑거리는 셔츠’를 찾아야 합니다. 실크면 물론 좋겠지만, 온라인 게임인이 여름 셔츠 한 장에 큰돈을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장마철에는 비도 맞고, 한철 입다 보면 세탁 횟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실크의 대체 소재로 포플린 면, 린넨, 비스코스, 레이온, 큐프라 같은 소재를 찾습니다. 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있고, 얇은 티셔츠 위에 걸쳤을 때 여름 특유의 느슨한 분위기를 내기 좋습니다.
무엇보다 가격대가 너무 부담스럽지 않아야 합니다. 좋은 브랜드의 셔츠도 물론 멋지지만, 여름 옷은 실전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땀을 흘리고, 점심시간에 밖에 나갔다 오고, 퇴근 후 약속까지 이어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마다 조심조심 아껴 입어야 하는 셔츠라면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10만 원 아래의 제품을 고르는 편입니다. 컬러별로 몇 장 쟁여두고 입을 수 있을 정도의 가격대라면 여름 내내 부담 없이 손이 갑니다.
컬러는 가능한 솔리드가 좋습니다. 밝은 옐로우나 크림, 잉크 네이비처럼 채도가 있는 네이비, 레드 브라운처럼 조금 톡톡 튀는 컬러도 괜찮습니다. 저는 특히 크림 컬러를 좋아합니다. 노란 기가 살짝 도는 밝은 컬러는 눅눅하고 불쾌한 장마철에도 옷차림을 조금 경쾌하게 만들어줍니다. 아침에는 피곤한 얼굴로 출근하더라도, 밝은 셔츠 하나가 전체 인상을 조금은 살려줍니다.
잉크 네이비처럼 짙으면서도 채도 높은 컬러는 밝은 팬츠와 함께 입으면 좋습니다. 오프 화이트나 라이트 베이지 컬러의 팬츠와 맞추면 네이비의 깊은 색감이 더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회사에서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퇴근 후 약속 자리에서도 밋밋해 보이지 않는 조합입니다. 온라인 게임인에게 중요한 건 과하게 멋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여러 상황을 무리 없이 통과하는 옷차림이니까요.
소재를 조금 더 넓게 보자면 린넨, 비스코스, 얇은 면 포플린 정도가 여름 셔츠로 좋습니다. 린넨은 구김이 멋이 되는 소재입니다. 아침에 다림질을 해도 점심쯤이면 자연스럽게 구겨지지만, 그 구김이 꼭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여름에는 너무 반듯한 옷보다 조금 느슨하게 구겨진 셔츠가 더 자연스러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비스코스나 레이온은 찰랑거리는 무드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있어서 셔츠 하나만으로도 여유로운 분위기가 납니다. 다만 너무 얇아 비침이 심한 제품보다는 적당히 무게감이 있는 것을 고르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야 온라인 게임인의 옷차림으로도 무리가 없고, 단정함과 느슨함 사이의 균형이 생깁니다.
얇은 면 포플린 셔츠는 조금 더 깨끗하고 산뜻한 인상을 줍니다. 린넨처럼 거칠지 않고, 비스코스처럼 흐르지는 않지만 관리가 편하고 출근복으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화이트, 스카이 블루, 라이트 그레이 같은 컬러의 포플린 셔츠는 사무실에서도 자연스럽고, 주말에는 쇼츠나 와이드 팬츠와 함께 입어도 괜찮습니다. 여름 셔츠를 처음 시도한다면 가장 부담 없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결국 여름의 옷차림은 더위를 완전히 이기는 일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계절은 뭘 입어도 덥습니다. 중요한 건 더위 속에서도 기분을 완전히 잃지 않는 일입니다. 출근길에 땀을 흘리고,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버티고, 퇴근길에 다시 눅눅한 공기를 마주하더라도, 셔츠 자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면 그날의 복장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한 셈입니다.
더울 땐 어쩔 수 없이 여름을 견뎌야 합니다. 그래도 잘 고른 셔츠 한 장이면 여름을 조금은 즐기게 만들어줍니다. 녹진한 장마와 뜨거운 햇빛 사이에서, 반팔 티셔츠 대신 얇고 느슨한 셔츠를 꺼내 입어보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온라인 게임인에게 가장 쉬운 여름의 멋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