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낭만은 여전히

byMickey


오랜만에 극장에 방문했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를 보고 왔는데요, 개봉한 지 꽤 시간이 흘러 다소 뒷북을 치는 감이 없지 않지만, 현업에서 매일같이 옷과 씨름하는 패션 상품 MD의 시선으로 본 느낌들을 그냥 넘기기엔 아쉬워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1편이 처음 세상에 나왔던 20년 전을 떠올려 봅니다. 당시 영화는 패션계 안팎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죠. 미란다라는 절대 권력의 편집장과 이리저리 치이는 풋내기 인턴 앤디의 이야기는, 비단 패션계뿐만 아니라 슬롯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오피스물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스크린 속 런웨이 카지노 게임의 모습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화려하게 채색되고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의 디테일과 취향으로 내 능력까지 증명해 내야 하는" 이 업계 특유의 서늘한 공기만큼은 소름 돋을 정도로 현실적이었죠.

그렇다면 20년이 흐른 지금, 모든 것이 더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재의 패션계를 배경으로 한 2편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을까요? 흥미로웠던 관전 포인트부터 뼛속까지 시렸던 업계의 현실까지, 기획자의 눈으로 찬찬히 뜯어보았습니다.


- 숱한 패션 영화들의 실패, 그리고 이 시리즈가 살아남은 이유

보통 '패션'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나 드라마는 양극단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디자이너의 철학이나 의복의 구조적인 예술성에 너무 깊이 파고들면 일반 대중에게는 다큐멘터리처럼 지루해지고 맙니다. 반대로 대중성만 고려해 시각적인 화려함에만 치중하다 보면, 알맹이 없는 영화로 전락해 버리곤 하죠.

하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이 위험한 줄타기를 기가 막히게 해냅니다. 이 시리즈의 매력은 '패션'이라는 화려한 포장지 안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관계를 담아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번 2편 역시 단순히 트렌디한 옷을 나열하는 쇼윈도로 소비되지 않습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과거의 우아함을 지키려는 자와 새로운 생존 방식을 좇는 자들의 비즈니스적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다룹니다.

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해본 기획자 입장에서 보자면, 화려한 컬렉션 피스들 뒤에서 매출과 트렌드 사이를 줄타기하며 치열하게 싸우는 우리의 일상이 너무나 잘 녹아있어 보는 내내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습니다. 패션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인물들의 갈등에 몰입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이패션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진 독보적인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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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하는 저널리즘, 그리고 씁쓸한 콘텐츠 소비의 현주소

이번 영화를 보며 가장 마음이 무거웠고, 또 깊이 공감했던 부분은 바로 '패션 카지노 게임과 저널리즘의 쇠퇴'를 보여준 대목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묵직한 아트지 위에 인쇄된 화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영감을 얻기보다는, 스마트폰 스크롤을 내리며 15초짜리 숏폼 영상으로 트렌드를 소비합니다. 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에 대해 대중의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수십 년간 패션계의 바이블 역할을 했던 종이 잡지들은 서서히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재정적 위기를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과거에는 미란다 같은 거물급 에디터의 안목과 날카로운 비평 한 줄이 다음 시즌의 트렌드를 결정짓고 매장의 발주량을 좌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의 틱톡 영상 하나가 기획자들이 수개월을 고민한 상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솔드아웃' 파워를 발휘하곤 합니다. 이건 놀라울 정도로 저도 느끼고 있는 현실입니다.

권위 있는 패션 저널리즘의 품위를 끝까지 쥐고 있으려는 전통 매체와, 클릭 수와 바이럴이 곧 절대 권력이 되어버린 디지털 매체 간의 신경전. 이는 단지 영화 속 갈등이 아니라 현재 패션 산업 전체가 마주하고 있는 딜레마이자, 기획자로서 매 시즌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는 아쉬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 아는 만큼 보이는 짜릿한 디테일들

물론 영화에 모든 것이 무겁기만 한 건 아닙니다. 시각적인 즐거움이 꽤 많은데요, 영화 곳곳에 숨겨진 패션 코드를 발견하는 것은 이 영화가 주는 또 다른 재밌는 묘미입니다.

우선 카메오와 음악의 재미입니다. 1편 못지않게 현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디자이너들이 깜짝 등장하여 반가움을 더합니다. 마크 제이콥스와 도나텔라 베르사체, 브루넬리 쿠치넬리가 등장합니다. 짧지만 영화에서 반가운 얼굴(저에게는)이 등장하니 꽤 재밌는 요소입니다. 또한 카메오 중 레이디 가가의 등장은 꽤 재밌었는데요, 그녀의 음악은 물론 잠깐의 연기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많은 옷이 디자이너 브랜드 옷입니다. 특히 톰 포드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등장하는 톰 포드 옷과 액세서리가 눈에 띕니다. 밀라노에서 몰래 협상을 하러 가는 앤디는 톰 포드의 타이를 스타일링 했습니다. 그리고 톰 포드의 스트라이프 슈트도 입었죠. 이런 다양한 재미를 한번 찾아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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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참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편에는 내일의 트렌드를 팔기 위해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피와 땀이 섞여 있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그 지난한 과정을 화려하고 세련된 문법으로 위로해 주는 영화 같았습니다.

패션에 몸담고 계신 분들은 물론이고, 일에 대한 열정과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분들께 한 번쯤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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