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공포는 인간의 마음
옵세션은 미국에서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어째선지 한국에선 뒤늦게 개봉한 호러 영화로, 젊은 신예 감독이 큰 돈 들이지 않고 엄청난 수익을 거둔 것으로 이미 유명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원래 영화 정보를 별로 알아보지 않는 것을 영화 감상의 일부로 여기고 있어서 ‘소원’과 ‘집착’이 소재라는 것 외에 무슨 내용인지도 거의 모르고 영화를 보게 되었죠.
(이하 스포)
아무튼 영화를 보니, 실제로 내용은 ‘소원’과 ‘집착’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주인공 베어는 회사 동료이자 친구인 니키를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니키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전화 통화를 그냥 친구라고 보기에는 자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어는 전화중 그녀가 원석 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말에 근처의 오컬트 잡화점에 목걸이를 사러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띈 ‘원 위시 윌로우’ 장난감을 사게 됩니다. 안에서 작은 지팡이 같은 것을 꺼내어 소원을 빌고 부러뜨리면 이루어준다는 애들 장난감 같은 것이었죠.
베어의 동료이자 친구인 이언은 그의 사랑을 코치해주는 듯하는데, 그러면서도 자꾸 고백하지 말고 다음 기회를 노리라는 식으로 일을 미루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술자리가 끝난 뒤 베어는 니키를 차로 집에 데려다주고, 니키는 묘하게 호감이 있는 듯 없는 듯 헷갈리게 굽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를 좋아하냐고 묻고, 베어는 소심한 남자답게 좋은 친구라고 둘러댑니다. 그 뒤 니키를 그녀가 싫어하는 별명으로 부르는 실수까지 저지르고, 후회속에서 자포자기로 ‘원 위시 윌로우’에 니키가 세상 무엇보다 자길 사랑하길 빕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루어집니다.
여기부터 공포는 본격적으로 시동을 겁니다. 니키는 당장 정신적인 이상이 있는 사람처럼 느닷없이 강한 호감을 표현했다가 정신 차린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집에 들렀다 가라는 둥, 영화 시작 때 죽은 베어의 고양이를 애도하자는 둥, 아버지가 암으로 위독하다는 둥 떠들어대고, 결국 베어의 집으로 가서 한 침대에서 자자고 떼를 쓰고 결국 그렇게 합니다.
그 뒤로는 이 불안해보이는 관계가 급가속합니다. 니키는 느닷없이 오밤중에 찾아와 사랑한다고 하고 밤을 보냅니다. 데이트도 하고, 같이 살다시피 하고, 소원대로 니키는 사랑 100퍼센트의 상태가 유지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니키는 제정신이 아닌 듯 밤에 일어나 베어를 지켜보기도 하고, 기괴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떨어지려면 왜 자길 사랑하지 않냐고 호통치기도 하고, 죽은 고양이를 꺼내와서 주방에서 추모하기도 하고, 출근하지 못하게 문을 테이프로 고정하기도 하고, 베어가 돌아올 때까지 제자리에 서서 기다리며 배설하기도 하고, 샌드위치에 고양이 시체를 넣기도 합니다.
당연히 베어는 뭐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원 도구 제조사에 항의 전화도 합니다. 그러나 제조사 역시 반쯤 지옥에 걸쳐있는 회사라도 되는 듯, 소원은 죽어야만 풀린다며, 고통에 찬 니키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한편 이언도 니키의 아버지가 병에 걸렸다는 게 거짓말인 것도 알아내고 그녀가 베어를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는 거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어는 니키가 자신의 연인이라는 상태를 포기하지 못하고 관계가 정상임을 주장합니다. 이언은 그럼 남자 모임에 혼자 와보라고 하나, 니키는 그 소식을 듣더니 역시나 발악을 하고 따라 나섭니다. 그리고 그 술자리에서 ‘왕게임’ 같은 젠가 게임에 끼어 질투와 분노와 광기로 분위기를 박살내버리죠. 급기야 술병으로 자해까지 하는 지옥을 보여줍니다.
이제 한계에 달했지만 베어는 아직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동료이자 친구고, 그러면서 베어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사라가 베어를 밤중에 불러냅니다. 베어는 니키가 잠든 사이 나가는데, 이때 니키가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은 베어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죽여달라고 부탁합니다.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합니다. 그러나 베어는 그대로 집을 나서서 사라를 만나고, 사라는 니키가 전에 이안과 호감없이 만나는 관계였다며 경고합니다. 니키가 베어를 사랑하는 건 이상하다는 말이죠. 그런 뒤 농담을 주고받으며 사라가 응시한 예술학교 통지서를 보려하는데, 어느새 따라온 니키가 사라를 잔혹하게 돌로 쳐죽입니다.
베어는 이제야 모든 걸 포기하기로 하고 오컬트 상점에 가서 따지고, 상점 주인은 소원을 빌어 이전 소원을 취소해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원 위시 윌로우’의 사용법으로 금지되어 막대가 부러지지 않습니다. 베어는 이안을 찾아가 소원을 대신 빌어달라고 하지만, 이안은 질투 때문에 자길 놀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많은 돈을 빌어버립니다. 소원은 말그대로 이루어져 돈다발이 쏟아지고, 베어는 공포 속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니키는 사라의 시체를 전시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놀란 이안이 소원 얘기를 하러 집에 찾아오자마자 총으로 쏘아 죽여버립니다. 결국 베어는 화장실로 도망쳐 권총으로 자살하려 하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보다 덜 무서운 마약성 진통제를 한통 다 먹어 죽음을 청합니다. 그러나 역시 두려워 이마저 토해내려는 도중, 문 밖에 놔둔 원 위시 윌로우를 니키가 부러뜨리며 소원을 빌고 맙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니키와 베어는 진정한 사랑을 이루게 되는데…… 베어는 약기운이 퍼져 사망하고, 니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하기 직전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맙니다.
(예로부터 소원빌기는 늘 삶을 망쳤다)
돌이켜보면 옵세션은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소원을 비는 도구에 소원을 빌지만 이상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삶이 망가진다는 ‘원숭이 손’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고, 사랑과 집착이 관계를 망친다는 이야기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옵세션은 압도적으로 무서웠습니다. 가히 평생 봐온 공포 영화중에 가장 무서웠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단 니키 역의 인디 나바레티가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덕입니다. 사랑스러운 동시에 제정신이 맞나 싶은 광기를 보여주다 기행을 폭발시키고, 죽일듯이 분노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보는 사람을 도망치고 싶게 만듭니다. ‘이러면 니키가 대폭발할 텐데’ 싶은 공포의 예견이 속을 바짝바짝 타들어가게 만드는데, 그러면서 ‘어떤 식으로 미친 짓을 할지’는 종잡을 수가 없어 매번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이런 수준으로 사람 마음을 쥐어짜는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특히 대파란이 뻔히 보이는 파티장 장면에서는 잠깐만이라도 감상을 멈추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습니다. 공포 장르를 오래 즐겨왔는데도 마음이 꺾일 지경이었죠.
사실 멀쩡하던 사람이 기행을 일삼는다는 공포도 각종 악마 빙의물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니키가 그 어떤 악마보다 무서웠던 것은, 니키가 보이는 기행의 양상이 ‘있을 수도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거꾸로 걷거나 라틴어로 떠드는 건 무섭지만 영화를 떠나면 아무 현실성도 없는 ‘엔터테인먼트’죠. 그에 반해 분명 멀쩡했던 사람이 횡설수설하거나 똥오줌을 못가리거나 한눈 팔면 죽여버리겠다고 괴성을 지르는 건 현실 세계에 흔히 일어나는 일인 누구나 동시에 한 번쯤 겪을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한 방에 다 해결해줄 워렌 부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죠.
곱씹어보면 주인공 베어의 모습도 서서히 공포를 자아냅니다. 겁많고 우유부단한 베어는 그냥 욕하기 좋은 너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진심을 말해야 할때 도망친 적은 없었나, 바카라임지고 결단을 내려야 할때 그러지 못한 적이 없었나 생각해보면 과연 내가 돌을 던질 자격이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게다가 그런 그가 강압적인 수단으로 껍데기만 갖게 된 거짓 사랑을 도저히 놓지 못하고 타인을 계속 악몽 속에 방치하는 모습을 보자면 자존감도 없는 인간이 ‘나를 더 낫게 만들어준다고 믿는’ 것에 집착하는 일만으로 타인을 얼마나 괴롭힐 수 있는가 싶어 오싹하기도 합니다. 나는 과연 올바른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튼 이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로 공포의 극한을 쥐어짠 옵세션은 개인적으로 최고의 공포영화라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욕망과 관계라는 도망칠 수 없는 요소로 이루어져있고 두 가지가 붕괴한다는 건 삶이 붕괴한다는 뜻이니까요. 저로서는 이보다 더 무서운 공포영화를 다시 만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추신
제10회 온라인카지노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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