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가 악해지는 순간
‘아무도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이것저것 많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영화에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그저그럴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사전 평가가 생깁니다. 넷플릭스가 무슨 구멍가게처럼 작은 제작사도 아닌데 이상하게 넷플릭스에서 만든 영화는 다 ‘적당히 볼만 하지만 뭔가 밋밋해서 드라마 한두 편 본 느낌’일 경우가 많아요. 적어도 제가 본 경험으론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건 썩 괜찮다 싶은 분야가 바로 호러입니다. 공포물은 특성상 화려하게 뭘 보여주는 것보다는 잘 감춰두고 나올듯 말듯 살살 불안감을 자극하는 게 주요 연출법이니까 제작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탓이겠죠. 넷플릭스를 떠나서 영화계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얘기입니다. 호러가 신인의 요람으로 작용해온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각설하고 ‘아무도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상당히 만족할 만한 호러 영화입니다. 기대감이 낮았던 것을 차치하고 생각해도 이만한 호러 찾기도 쉽지 않을 만한 작품이었죠. 암만 봐도 제목이 너무 저렴해서 미국 20대 청년들이 놀러가서 술먹고 헛짓하다 연쇄살인마에게 난자당하는 영화 같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습니다.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주인공 암바르는 멕시코 여성으로, 불법이민자입니다.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있고, 그 때문인지 미국에서 고된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다 낡은 하숙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점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밤마다 여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원혼의 모습 같은 게 보이는 식이죠. 집주인 방에는 악마 숭배의 아이템 따위가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이야기입니다. 대충 살인사건이 있었던 자리거나, 아니면 악마가 깃든 집이겠죠. 그러나 이야기는 흔한 방식보다 더 무겁게 흘러갑니다. 꺼림칙해서 나가자니 한 달 월세를 미리 내야 했기 때문에 돈이 없는 것이죠. 게다가 좋은 친구이자 동료는 주인공이 신분세탁을 의뢰하며 준 돈을 갖고 잠적합니다. 다니던 공장에서는 해고됩니다. 소원했던 삼촌에게 당장 살려달라고 부탁하지만 바쁘니 기다리라는 답이 돌아오죠. 결국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고, 환각을 보고, 괜히 경찰의 눈을 피하고,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다 결국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다음 월세 환불을 간청합니다. 집주인은 마지못해 알았다며, 돈은 방에 뒀다고 그녀를 다시 집에 데려갑니다. 그러나 그녀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폭행과 감금, 그리고 인신공양이었습니다…….
(나를 죽이는 건 공포가 아니라 삶의 무게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대강의 줄거리로도 알 수 있듯, 대단히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초자연적 현상이 나를 해치려고 쫓아오는 것보다 훨씬 묵직한 삶의 고통이 이야기 전체에 따라다닙니다. 국가 시스템도 위협이고, 온라인 게임도 친구도 이웃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 어머니에 대한 부채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시달리고 애걸하는 것뿐입니다. 살인마나 귀신이 날 죽이려 드는 공포는 반 걸음만 물러나도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일인데, 이런 식으로 삶이 나를 짓누르는 두려움은 보는 동안은 물론이고 본 뒤에도 고통스럽죠. 뭘 먹을 돈도 마땅치 않고 갈 곳도 없어 지하철과 카페를 전전하는 기분, 어딜 가나 눈치보이고, 그 압박에서 벗어나보려고 제일 싼 커피라도 한 잔 더 시키는 심정은 정말이지 사람을 좀먹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동안만 깜짝깜짝 놀라고, 영화가 끝나면 말끔히 개운해지는 놀이공원형 호러를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방식입니다. 저도 잘 보면서도 배분이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을 지경이었으니까요.
영화 후반에 들어서면 이제 본격적인 초현실적 공포가 밀려오는데, 그 초입에 있는 것도 현실 세계에 있는 꺼림칙한 공포입니다. 돈을 돌려줄 듯하다 안 돌려주면서, 건장한 남자 둘이 여자 하나를 위협하고 강제로 술을 먹인 다음 방에 다른 여자들과 감금하고, 그 뒤에 하나씩 폭행하면서 어디론가 끌고가는 것이죠. 애초에 집 전체가 제물 수확용이었고 원혼들은 피해자였다는 이야기는 흔하지만 이 작품에서 특히 무겁고 무섭게 느껴집니다. 이 집에서 도망친다고 구원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과장하면 이 집은 슬롯적 착취와 폭력과 공포의 메타포였던 겁니다.
이 사건의 전말은 주인공이 제물이 되어 바쳐지며 마침내 확실해집니다. 집주인의 아버지가 불가사의한 상자의 악마 같은 것을 숭배하고 있었고, 집주인은 가정폭력에 시달린 끝에 아버지를 죽이고 상자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폭력에 시달린 탓인지 장애가 있던 형을 위해 상자를 써서 형을 치유해온 겁니다. 상자를 쓰는 방법이란 단순해서, 상자와 제물을 단둘이 놓으면 상자에서 괴물이 나와 제물을 먹고 제물을 바친 이를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식만 두고 보면 그리 폼나는 건 아닙니다. 거창한 의식이나 제의 도구도 없어요. 하지만 괴물과 괴물의 섭취 과정이 기막힙니다. 괴물은 캐스퍼 같은 유령에 인간의 신체 부위를 이리저리 합성해 붙인 모습인데, 보는 것만으로 압도됩니다. 무섭다기보다 저게 대체 뭐지 싶어요. 이야기 흐름과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컬트계의 악마, 사탄, 그런 게 검은 어둠과 함께 나오는 게 정석일 텐데 여기선 그런 괴물이 하얀 모습을 다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괴물의 섭취 직전, 병석에 누운 어머니의 환각을 봅니다. 어머니는 조금만 더 있다 가라는 말을 반복하고 강요하죠. 이야기 도중 어머니가 사실 돌아가셨다는 말이 나온 것으로 봐서 암바르는 ‘자기가 어머니를 더 돌봐드려야 했다’는 부채감, 죄바카라감을 안고 있는 듯합니다. 이때 어머니의 손길과 오버랩되어 괴물의 주둥이에서 나온 손이 암바르의 얼굴을 어루만지는데, 가장 익숙한 것이 최악의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이 순간은 가히 압도적입니다. 괴물 역사 명예의 전당에 올릴 만한 그런 괴물과 공격 장면이에요. 유사한 느낌을 만화 베르세르크나 게임 데드 스페이스에서 볼 수 있으나 이 작품의 상자 괴물은 더 귀신적인 스산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암바르는 환각의 유혹을 물리치고 심상속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풀려납니다. 괴수물의 논리로는 허술한 전개로 보이는데, 아마 이 악마적 괴물은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파고들어야만 섭취가 가능한, 정신계 괴물의 속성이 강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삶을 옭아맸던 죄바카라감의 근원을 자기 손으로 없애버린다는 주인공의 결정은, 그녀가 비참한 방식으로 피해자에서 벗어난다는 메타포 같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는 암바르가 복수의 액션을 선보이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마치 펄프픽션에서 변태 집단에 붙잡혔던 브루스 윌리스가 활약하는 듯한 시퀀스인데, 시원하다기보다는 비참하며 처절합니다. 약자가 하는 일이 보통 그렇듯이 시원스레 잘 되지 않아요.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상처와 비극만 남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복수의 허망함을 얘기하는 단순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암바르가 집주인을 제단에 바쳐버린 후, 집에서 도망치려다 상처받은 몸이 회복되는 걸 느끼는 게 엔딩입니다. 상자 괴물에게 제물을 바친 자는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듯한 장면이죠. 암바르가 이제 어떡할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목숨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날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집의 반려 괴물과 함께 영생을 시도할 수도 있겠죠. 부채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집주인이 제물이 된 것과 반대로 부채감을 끊어버린 주인공이 살아난 흐름을 생각하면 더 지킬 게 없는 그녀가 손을 더럽히는 쪽을 택할 것 같긴 합니다.
‘아무도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앞서 말했듯이 무거운 작품입니다. 공포영화지만 주인공과 무관한 입장에서 팝콘 먹으며 구경할 수 없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구걸을 해봤다면, 불행의 무게에 짓눌려봤다면 남의 것이 아닌 공포를 보게 됩니다. 괴물이 나오지만 괴물의 특성이나 유래를 찾아 반격하는 시원한 면도 없고 복수도 개운치 않은 방식입니다. 주인공을 살려내는 것은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나 용기, 자기 희생의 숭고함이 아니라 죄바카라감과 부채감을 폐기하는 결심입니다. 주인공은 그렇게 잡아먹히는 쪽에서 잡아먹는 쪽이 됩니다. 어쩌면 실제로 약자가 살아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함께 힘을 합치는 게 아니라 남을 등쳐먹고 빨아먹는 것일지도 모르죠. 내가 당한 그대로 남을 착취하는 게 제일인지도 모릅니다. 이 잔인한 원리가 숨쉬는 세계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기나 할까요?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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