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거절한 일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보다 설명이 길어졌고, 내가 받아들여도 괜찮은 이유가 하나씩 더해졌다. 나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지난번에 내 뜻을 말하지 않았나.
최근 비슷한 일이 두 번 있었다. 알고 지내던 선배는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을 써보라고 권했다. 일을 함께하는 동료는 자신이 맡은 일 일부를 내게 넘기는 이야기를 꺼냈다. 서로 다른 제안이었지만, 나는 둘 다 내키지 않았다.
제품은 굳이 구매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일도 더 맡고 싶지 않았다. 공부하고 바카라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을 남겨두려고 일의 비중을 줄인 터였다. 수입이 늘어나는 장점은 알았지만, 그 때문에 다시 일을 늘릴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내 결론을 분명하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웃으며 이야기를 듣고, 내 사정을 조금 설명하다가 흐지부지 넘겼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도 얼굴을 볼 사람들인데, 굳이 대화를 딱 잘라 끝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나는 그 정도면 뜻이 전달됐으리라고 생각했다.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하지 않았고, 내키지 않는 이유도 이야기했으니까. 상대가 알아서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시 돌아왔다.
선배에게는 써볼 만한 제품이었을 것이다. 동료에게도 내가 그 일을 맡으면 괜찮겠다는 나름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본인 입장에서는 이미 좋은 제안이라고 결론이 나 있으니, 내가 망설이는 이유를 풀어주면 된다고 여겼을 수 있다.
나는 더 설명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제품이 좋다는 것을 몰라서, 일을 더 하면 돈을 더 번다는 것을 몰라서 주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권유가 이어지자 처음에는 없었던 짜증이 생겼다. 왜 같은 말을 또 해야 하지. 내 사정은 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내가 싫다는 뜻을 내비쳤는데도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내 생각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일까.
다음 상황까지 떠올랐다. 이번에도 부드럽게 넘기면 또 권하지 않을까. 그러면 다음에는 말을 더 짧게 해야 하나. 그래도 이어지면 결국 얼굴을 굳히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 아닐까.
아직 하지도 않은 대화를 미리 준비하는 일이 피곤했다. 다시 만나면 그 이야기가 나올까 봐 신경이 쓰였다. 처음부터 화를 내고 싶은 것은 아닌데, 끝내 화를 내야만 이야기가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정말 말이 날카로워지면 어떻게 될까. 상대는 좋은 뜻으로 권했을 뿐인데 내가 과하게 반응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여러 번 같은 뜻을 전했다고 여기지만, 상대에게는 갑자기 정색하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 장면을 상상하면 벌써 억울했다.
차라리 알겠다고 해버릴까 싶은 순간도 있었다. 제품을 사고, 일을 넘겨받으면 더는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상대는 고마워하고 대화는 편하게 끝날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다른 화가 날 것 같았다. 필요하지 않은 곳에 돈을 쓰고, 늘어난 일을 하면서 왜 그때 받아들였을까 후회할 것이다. 읽으려던 바카라을 미루고 피곤한 몸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부탁한 사람까지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하겠다고 해놓고, 왜 나에게 부탁했느냐고 혼자 화를 내는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처음 나눴던 대화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정말 거절했을까. 상대가 내 말을 무시했다고 생각하기 전에, 내가 어떤 답을 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마음속 결론은 분명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온 말도 그랬는지는 자신이 없었다. 웃으며 사정을 이야기하고 대답을 흐린 뒤, 상대가 내 속마음까지 알아들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거절을 마쳤다고 여겼지만, 상대는 아직 이야기 중이라고 받아들였을 수 있었다.
내게는 하지 않겠다는 이유였던 말이, 상대에게는 해결해주면 되는 걱정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설명을 더했고, 나는 이미 끝낸 이야기가 왜 계속되느냐며 지쳤던 것이다.
물론 상대가 얼마나 눈치를 챘는지는 알 수 없다.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한 번 더 밀어붙였을 수도 있다. 다만 내 답변에 여지가 있었던 것까지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당장의 어색함을 피하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분명하게 거절하는 대신 웃으며 넘기면 서로 편할 줄 알았다. 실제로 그 순간은 편했다. 그러나 끝내지 않은 대화는 사라지지 않고 다음 만남까지 따라왔다.
부드럽게 말하는 것과 결론을 흐리는 것을 같은 일로 여겼던 것 같다. 안 하겠다는 뜻을 전하려면 차가워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차가워지고 싶지 않아서 대답을 미뤘다. 그러면서 상대는 내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주기를 바랐다.
다음에는 필요한 제품이 아니면 구매하지 않겠다고 말하려 한다. 일을 더 맡을 생각이 없으면 지금 맡은 일까지만 하겠다고 전하려 한다. 내 생활 전체를 설명하거나 상대가 동의할 때까지 이유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명히 말한다고 어색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가 아쉬워할 수도 있고, 나도 잠깐 미안할 수 있다. 그래도 서로 다른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한 채 같은 대화를 되풀이하는 일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미 거절했는데 왜 자꾸 설득하느냐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내 마음속에서만 끝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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