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의 외로움

by손서영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 와서 아직까지 친구 하나 만들지 못했다. 진료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을 4년 넘게 해오면서 외롭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떤 날은 너무 외로워서 울면서 잠들기도 했다.

병원에 오시는 보호자분들 중에 친해진 분들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관계를 넓히지는 않았다. 간호사들이나 선생님과도 원장과 직원 이상의 관계는 만들지 않았다. 그건 전부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너무 많은 부탁과 요구에 시달려보면서 만들어진 나만의 작은 규칙이다.

그래서인지, 이미 관계가 있던 서울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인간관계가 넓어지지 않았다.

나는 항상 장애가 있거나 입양이 힘든 아이들을 입양해왔다. 동백이는 처음으로 내가 욕심이 나서 데려온 아이이다.

수의사 모임도 있고 대학 동문회도 있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그 모임에서 혼자 여자였고 대부분 나이가 있는 분들이다. 그래서 거의 의무적으로만 참석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는 혼자 노는 데 익숙해졌고, 어느새 아이들이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신기하게 아이들이 동백이한테 다들 우호적이다. 하울이가 특히 예뻐해서 동백이 데리고 잘 잔다.


사람들은 외롭지 않냐고, 집 밖으로 나오라고 말하지만 집 밖은 나에게 그다지 즐겁지 않다. 오히려 밖에 있다 돌아와 아이들을 만나면 그제야 숨이 트이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함께 기쁨의 춤을 추며 살아 있다는 걸 만끽한다.

나는 완전한 집순이고, 아이들 바라기다. 그럼에도 가끔은 외롭다.

동백이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반토막만했다. 아직 추웠던 2월에 더이상 그냥두면 잘못될거 같아서 라는 이유를 만들어서 보쌈해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결혼한 사람들은 외롭지 않을까? 친구들이 많은 사람들은 외롭지 않을까?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이 정도의 외로움을 안고 사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특별히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정도로 외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랑 같이 침대에 있는 동백이 모습이다. 이런 아이랑 같이 자는데 어떻게 안행복할 수가 있겠는가. 볼때마다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외로움이 사라져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관계를 좁혔고, 그 선택 안에는 분명 외로움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의 이 외로움은 내가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아이들 때문에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왔고, 어쩌면 누군가를 만나기 어려워졌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외롭다. 하지만 사람이 채울 수 없는 많은 부분에서 나는 터질만큼 충만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꺼이 외로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간다.


우리 집에 있는 벗꽃나무다. 아이들을 볼때 내 마음의 색이 꼭 이럴거 같다. 핑크빛 꽃망울이 매일 가슴속에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