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과 화투를 들고 떠난 하루 소풍

캐나다 사는 이야기, 길을 헤매도 좋았던 하루와 숲 속 삼겹살의 여운

by김종섭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퇴직 후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지극히 익숙해지는 풍경이다. 그런 반복되는 일상과 익숙한 집 안의 분위기가 가끔은, 혹은 문득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거창한 목적지가 있어서가 아니다. 지난 주말, 매일 걷던 루틴을 뒤로하고 익숙한 동선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하지만 막상 집 밖으로 떠나는 일은 왠지 부담으로 작용하곤 한다. 그래서 집 밖으로 발걸음을 밀어낼 때,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것을 '아웃도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여행이든 외출이든 문밖을 나서는 모든 행위에 굳이 거창한 정의를 내릴 필요는 없다. 그저 일상의 궤도를 잠시 벗어나는 것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 길을 나서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소풍을 떠나기 전날 저녁,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유난히 삼겹살이 눈에 들어왔다. 야외로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은연중에 들었던 모양이다. 야외에서 노릇하게 구워 먹을 생각을 하며 삼겹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집에 돌아와 먹기 좋고 보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잘게 썰어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러고는 야외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히고 아내에게 동행을 청했다. 아내 역시 흔쾌히 응해주었고, 다음 날 나설 짧은 외출을 위해 수저와 코펠, 버너처럼 없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장비들을 챙겼다. 거기에 라면과 김치까지 더하니 당장 길을 떠나도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차림이 되었다.

문득 며칠 전 수납장에서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화투장을 발견했던 일이 떠올랐다. 화투장을 무심코 꺼내 들어 식탁 한구석에 올려두었더니, 어느 날 아내가 그걸 보고 화투나 한 판 쳐보자고 했다. 그 후 흥미가 붙어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와 심심풀이로 화투판을 펼치곤 했다.

둘이서 패를 맞추다 보니 제법 재미가 붙어 쏠쏠한 오락거리가 되던 참이었다. 타국에서 떠나는 소풍길에 이 작은 화투장 한 묶음이 색다른 즐거움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 슬그머니 챙겨 넣었다.

목적지는 강이 있는 공원으로 정했다. 물론 취사가 가능한 곳이다. 출발 당일 아침, 집을 나서 목적지까지 70km 정도의 거리를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하지만 목적지에 다다르자 공원이 아닌 캠핑장 안내 사무소가 나타났다. 알고 보니 일반 강변 공원이 아니라 아내가 주변 캠핑장을 클릭했던 것이었다. 지도 앱과 행선지 사이에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온 김에 캠핑장이 어떤 시설을 갖추고 있는지 궁금해 잠시 둘러보고 싶었지만, 잠깐 들어가는 것조차 주차료를 내야 한다고 해서 미련 없이 빠져나왔다. 핸들을 돌려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니 근처 강변 공원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무료 주차를 해두고 강줄기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방금 전 들렀던 캠핑장과 산바카라로가 연결되어 있어, 생각지도 못하게 캠핑장을 둘러보게 되었다. 순간, 다음에는 이곳에 짐을 풀고 1박 캠핑을 즐겨도 참 좋겠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곳 역시 불 사용이 가능하지 않아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시설은 없었다. 다시 취사가 가능한 공원을 검색해 멀지 않은 곳에 강과 어우러진 공원을 찾아냈다. 취사도 가능하고 피크닉 테이블도 있었지만, 버너 불을 켜고 고기를 굽기에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집중될 것 같아 그곳도 다시 빠져나왔다.

취사 금지 표지판을 만나고 핸들을 몇 번이나 다시 바꿔 잡으며 문득 생각에 잠겼다.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 길 위의 하루가, 어쩌면 치열했던 지난날의 울타리를 벗어나 낯선 타국에 정착해 살아가며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의 삶과 참 닮아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헤매는 과정 역시 이미 시작된 하루의 여정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결국 또 다른 공원을 찾아갔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요금을 내야 하는 유료 공간이었다. 기본 1시간에 5달러가 넘는 주차비에 환경부담금 성격의 쓰레기 처리비 2달러까지 더해져 초반에만 7달러가 훌쩍 넘는 금액이 들고, 이후로도 시간당 5달러 이상이 추가되는 요금 구조였다. 생각지도 못한 주차비가 제법 비싸게 느껴졌지만, 차를 세우고 짐을 챙겨 공원으로 들어선 순간 바로 앞에 탁 트인 강이 펼쳐졌다. '이래서 입장료 대신 주차료를 받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선뜻 들었다.

공원이 주는 온유함과 평온해 보이는 강, 그곳에 펼쳐진 경관은 참 아름다웠다. 맑은 호수 건너편 언덕에는 숲과 어우러진 집들이 그림처럼 늘어서 있었고, 잔잔한 물 위로는 보트들이 한가롭게 떠 있었다.

울창한 숲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준비해 간 버너를 켜 삼겹살을 노릇하게 구워 먹었다. 삼겹살로 낭만의 배를 채운 뒤, 가방에서 챙겨 온 화투를 꺼냈다. 이국적인 호수 풍경을 병풍 삼아 숲 속 벤치 위에서 아내와 짝짝 소리 나게 화투를 쳐보니 집에서와는 또 다른 유쾌한 재미가 있었다.

두 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늘 익숙했던 집안 풍경이 오늘따라 낯선 온기로 다가왔다. 차에서 내려놓은 옷가지와 코펠에서는 여전히 숲 속에서 구웠던 삼겹살 냄새가 옅게 감돌고 있었고, 손끝에는 벤치 위에서 딱딱 소리를 내며 내리치던 화투장의 감각이 아련하게 남아있었다.

길 위에서 흘린 몇 시간과 몇 번의 헤맴은 결코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 돌아올 집이 있기에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잠시 일상을 벗어났었기에 매일의 집 안 공기가 다시금 감사하고 아늑하게 다가오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하루, 길을 나섰던 소박한 여정에 남겨진 가장 깊은 여운이었다.


https://omn.kr/2jnq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