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크레센트 비치에서 아내와 함께 즐긴 석양 마실
"우리 오늘 오랜만에 노을 보러 바다로 갈까요?"
오후 4시경, 아내가 문득 노을을 보러 가자고 했다. 시간 안배도, 아무런 계획도 없는 무작정의 제안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곧장 바닷가로 향했다.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은 피하고 싶은 복병 같아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붉게 타오르는 노을은 이상하게 사람 마음을 부풀게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차로 30분 남짓 달리면 닿는 '크레센트 비치(Crescent Beach)'는 밴쿠버 일대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답기로 첫 손에 꼽히는 해변이다. 사실 예전에도 노을을 보러 왔다가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멍하니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릴 엄두가 안 나 그냥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다.
오늘도 해가 기울기엔 한참 이른 시간에 도착해 버렸다. 바닷가 산바카라로를 한 바퀴 돌고 해변공원에 들어서는데, 한 피크닉 공간에서 행사 진행요원들이 악기를 정돈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소리로 마음의 스트레스를 씻어낸다는 '사운드 바스(Sound Bath)' 소리 명상 프로그램이었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단정하게 흰 옷을 차려입은 세 명의 여성 강사가 명상을 이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이미 예약이 완료된 유료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집에서 챙겨 온 이불까지 푹 덮고 편안하게 누워 명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 부부도 차 트렁크에서 야외용 의자를 꺼내 왔다. 유료 예약 회원이 아니었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명상단을 뒤로하고,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았다. 강사들이 크리스털 사발(싱잉볼)을 문지르자 '웅-' 하고 맑고 진한 진동음이 공원 전체로 웅장하게 퍼져나갔다.
비록 정식 참가자로 등록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퍼져나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파도 소리와 어우러진 싱잉볼의 진동음은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일상의 복잡한 생각들을 깨끗이 씻어내 주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치고 살았던 '잠시 멈춤'의 순간, 지루할 뻔했던 기다림은 순식간에 평온한 치유의 시간으로 변해갔다.
소리로 마음을 비워낸 자리에, 어느덧 수평선 너머로 붉고 장엄한 노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란히 놓은 야외용 의자에 아내와 어깨를 맞대고 앉아 천천히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바다, 살랑이는 저녁 바람, 그리고 해변에서 카약을 정돈하는 사람들의 실루엣까지 노을 앞에 선 모든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오늘 안 나왔으면 집에서 답답했을 뻔했네. 오길 진짜 잘했다, 그렇지요?"
옆에 앉은 아내가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슬그머니 한마디를 보탰다. 소리로 마음을 비우고 가슴을 물들이는 노을로 채웠던 시간. 무작정 문밖을 나와 바다를 만났던 오후 4시의 결단은, 우리 부부에게 더없이 완벽하고 흡족한 일상의 선물이 되어주었다.
https://maps.app.goo.gl/7Fo9V2XcimHJJTnz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