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냉동고에서 찾은 쥐포, 60대 해외살이 밥상

몇 해 전 한국에서 가져온 쥐포 한 봉지... 매콤한 무침의 든든한 밥상

by김종섭

한국에 살 때를 돌이켜보면 냉동고는 말 그대로 남은 음식을 잠시 얼려두거나 얼음을 굳히는 가전제품 본연의 역할이 전부였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살아가는 우리 집 냉동고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오랫동안 보관하며 아껴 먹어야 할 한국 식재료들이 칸칸이 들어차 있는, 말 그대로 '고국의 향수를 꽁꽁 얼려둔 보물창고'에 가깝다.

해외 살이를 하다 보면 한국에서는 흔하던 건어물이나 식재료도 이곳에서는 쉽게 구하기 어렵거나, 한인 마트에 가더라도 가격이 제법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다녀올 때 가져온 귀한 먹거리들을 냉동고 깊숙이 넣어두고 오랜 시간 아껴가며 먹게 된다. 자연스레 냉동고는 고국의 맛과 시간을 묶어두는 고마운 공간이 된다.

오늘은 아내도 없는 날이라 혼자 밥을 챙겨 먹어야 했다. 매일 열어보는 냉장고 칸칸의 반찬들 대신, 문득 냉동고 깊숙한 곳엔 어떤 식재료가 들어 있을까 궁금해 모처럼 냉동고 문을 열었다. 구석구석을 뒤적이다가, 몇 해 전 한국에서 가져온 뒤 까맣게 잊고 있던 쥐포 한 봉지를 발견했다. 무려 20포가량 들어있는 쥐포를 몇 해 만에 찾아내니, 뜻밖의 보물을 얻은 듯 반가운 마음이 밀려왔다.

일단 몇 장을 꺼내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워서 먹었다. 달콤 짭조름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자 문득 헛웃음이 났다. 첫 쥐포를 맛보았던 기억은 참으로 엉뚱했다. 중3 수학여행 때 포항 항구 좌판에서 친구들과 쥐포를 사 먹다가 "이거 쥐포래!"라는 말에, 진짜 들쥐를 말린 건 줄 알고 경악하며 입안의 것을 뱉어버렸던 기억이다. 쥐치가 생선인 줄도 모르던 그때의 중학생은, 세월이 흘러 어느덧 흰머리 희끗희끗해진 60대가 되어 한국이 아닌 캐나다 식탁에서 그 쥐포를 구우면서 그때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옛 추억을 뒤로하고, 그 귀한 쥐포로 예전에도 한번 반찬으로 먹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오랜만에 식탁에 올릴 밑반찬을 만들기로 했다. 찬장에서 양념들을 꺼냈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물엿, 설탕, 참깨, 다진 마늘에 송송 썰어 넣은 알싸한 청양고추와 고소한 아몬드까지 더해 매콤한 양념장을 만들었다. 거기에 먹기 좋게 찢어 둔 쥐포를 넣고 버무려냈다.

매콤한 양념 옷을 입고 밥상에 오를 먹기 좋은 쥐포무침이 만들어졌다. 윤기가 흐르는 붉은 쥐포무침을 유리 반찬 그릇 두 개에 나누어 담아놓으니 보기만 해도 마음까지 풍족해진다. 학창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흔히 먹던 멸치볶음이나 오징어채와 달리 쥐포는 늘 구워 먹는 간식거리였지만, 해외에서 이렇게 직접 양념을 버무려 반찬으로 내어놓으니 참으로 특별한 음식으로 변신한 느낌이다.

저녁에는 돌아온 아내와 함께 갓 지은 밥에 매콤 달콤한 쥐포무침 한 점을 얹어 식탁에 앉았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도는 반찬 하나에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비워진다.

진짜 쥐를 말린 포인 줄 알고 뱉어내며 놀랐던 수십 년 전 포항 항구에서 수학여행 중이던 중학생. 그 소년이 60대가 되어 캐나다 식탁에서 몇 해 전 한국에서 가져와 잊고 있던 쥐포를 버무려 밥상을 차려냈다. 냉동고 구석에서 찾아낸 쥐포 한 봉지 덕분에 며칠간 우리 집 식탁을 바카라임질 든든한 '밥도둑'도 얻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해외 살이의 행복과 삶의 감회를 다시금 고소하게 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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