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한인마트 '모둠 빵 봉지'로 차린 알뜰하고 풍성한 아침 식탁
예전 한국에 살 때는 빵집에 가면 몇 개를 집어 들어도 주머니 사정에 큰 무리가 없었고,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 만나는 약속장소가 동네 작은 빵집이 유일했다. 고소한 빵 냄새가 가득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단팥빵 하나를 나누어 먹으며 수다를 떨던 그 시절의 빵집은 그저 빵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학창 시절 따뜻한 추억이 보관된 장소였다.
2년 전 잠시 한국에 나갔을 때 카페나 빵집에서 파는 빵값이 예전 같지 않고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캐나다 한인마트 역시 빵값이 비싸기는 마찬가지였다. 캐나다에서도 제일 저렴한 작은 빵 하나를 골라 담으려 해도 보통 3달러 정도는 줘야 한다. 한국에서 빵 하나가 아무리 비싸도 천 원을 넘지 않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어느새 빵값도 몸값을 올려 제법 비싸졌다. 그렇다고 물가가 빵값만 오른 게 아니었다. 국민의 대표 간식이라 하는 라면에 김밥 한 줄을 먹어도 만 원은 줘야 한다는 며칠 전 한국 기사 내용을 전해 들었다. 장바구니 물가가 무섭게 치솟다 보니 이젠 간식 가격이나 주식 가격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앙금이 들어간 빵, 그중에서도 단팥빵이 해외에 살다 보면 유독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한국에서 먹던 빵을 사려면 그나마 한인마트나 중국마트에 가면 살 수 있어 다행이다. 캐나다 로컬 마트나 빵집에서 파는 빵과 과자 종류는 너무 달아 못 먹을 정도다. 단것을 좋아하는 현지인들이라 팥이 들어간 달달한 빵도 선호할 법한데, 서양인들 식감에는 콩 종류인 팥을 달게 삶아 앙금으로 먹는 문화가 생소해서인지 현지 빵집에서는 판매하는 것도, 사 먹어 본 적도 없다. 팥을 달콤한 앙금으로 즐겨 먹는 것은 역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만의 독특하고 공통된 입맛이다.
사실 요즘 물가 오름세 동향을 보면 다른 물가에 비해 빵값 상승폭이 유독 큰 것은 아니지만, '빵은 싸다'는 예전 인식 때문인지 한인마트 빵 코너에 가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하나둘 담다 보면 십 달러 미만일 것이라 생각했던 장바구니가 금세 몇십 달러를 넘겨버리는 물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빵 코너 앞을 서성이다 그냥 돌아서기 일쑤였다.
두 주 전, 마트 마감 시간 직전에 급하게 장을 보러 갔다가 커다란 봉지에 빵 여러 개를 모아 담아 파는 '모둠 빵 봉지' 마감 세일이 있어 한 봉지를 샀다. 예전 한국에서도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은 마감 시간 전에 파격 세일을 하는 품목들을 가끔 샀지만, 요즘은 식품 보존과 저장 기술이 좋아져서인지 마감 세일을 하는 품목이 지극히 한정적인 편이다. 그런데 뜻밖에 투명한 큰 봉지 가득 다양한 빵이 정성스레 담긴 '모둠 빵 봉지'를 발견했으니, 빵 가격이 옛날의 저렴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절로 손이 갔다.
한동안 아침 메뉴로 빵과 햄버거 패티 같은 속재료를 사다가 커피와 함께 먹었고, 그 뒤엔 아침 식사 메뉴를 바꾸어 소시지와 야채를 곁들인 빵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 두 주 전 마감 세일로 사 온 빵을 냉동 보관해 두고 아침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요즘은 단팥빵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우리 부부 두 식구 기준, 약 10개 정도의 다양한 빵이 들어간 '모둠 빵 봉지'를 50% 할인된 15~17달러 선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어, 요즘은 마감 세일 덕분에 아침마다 고향의 맛이 가득한 빵을 즐긴다.
어제도 아내와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감 시간과 맞물려 마트에 들렀더니, 빵이 푸짐하게 담긴 모둠 빵 봉지가 두 개나 진열대에 남아 있어 아내가 망설임 없이 모두 사 가지고 나와 든든했다.
신혼 초 한국에 살 때는 백화점 지하 식품관이나 마트 마감 세일을 돌며 실속 장보기를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캐나다에서 한국식 빵을 이렇게 착한 가격에 종류별로 사 오면서 오래전 한국에서의 장보기 추억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아침이 되면 냉동실에서 꺼낸 단팥빵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워 결대로 반을 가르고 먹기 좋게 4 등분한다. 마트에서 사다 놓은 빵과 함께 아내가 깎아놓은 사과, 토마토, 그리고 진하게 내린 모닝커피 한 잔을 창가 식탁에 올려놓는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아침 시간이 요즘은 더없이 기다려지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