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세뱃돈을 수거하러 다니던 아이들.

한복 입은 아이들이 마을을 돌았다

by마엘

추석을 맞아 집에 다녀오며 어릴 적 명절이 떠올랐다. 설날, 친구들을 데리고 마을을 돌며 세배하러 다녔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지만, 그때 우리를 맞아주셨던 어른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어 한번 써본다. 오래된 기억이라 오갔던 말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한다. 대화의 일부는 그날의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그려보았다.

“애들아! 우리 같이 어른들한테 세배하러 가면 어때?”
어린 머리로 생각해낸 일이었다.
명절이면 어른들께 세배를 했다. 세배를 하고 나면 세뱃돈을 받았다. 그렇다면 세배를 더 많이 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아는 어른은 우리 집에만 계신 게 아니었다. 마을에는 아는 어른들이 많았다. 우리 집에서도 하고, 다른 집에서도 하고, 또 다른 집에서도 하면. 생각할수록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돈 생각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건 이제 와서 조금 덜 부끄러워 보이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때도 마을에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다들 크면 밖으로 나갔다. 나간 사람들은 마을로 돌아와 살 생각을 잘 하지 않았다. 어린 내 눈에도 어른들은 가끔 적적해 보였다.

한복 입은 우리가 함께 찾아가면 반가우시지 않을까.
세배도 받으시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

우리는 세뱃돈을 받고, 어른들은 세배를 받고. 다 같이 좋은 하루를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괜찮은 일이었다. 적어도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그랬다.
“같이 가자.”
아이들은 좋다고 했다.

누구 하나를 오래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가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미 한복까지 입고 있었다. 세배하러 다니기에 이보다 더 잘 갖춰 입을 수는 없었다.
다섯 명이었는지, 일곱 명이었는지.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한두 명은 아니었다. 한복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어디부터 갈까?”
“여기부터 가면 되지.”

우리 마을은 집성촌이었다. 모르는 동네에서 모르는 집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알고 지내던 어른들 댁이었다. 어린 나에게는 그 익숙함이 제법 든든한 이유였을 것이다.
아는 어른들께 명절 인사를 드리러 가는 건데. 게다가 한복도 입었는데.

집에 도착해서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당에 계신 어른도 있었던 것 같고, 별다른 말 없이 들어간 집도 있었을 것이다. 누가 먼저 우리를 봤는지, 내가 앞에서 어른들을 불렀는지도 흐릿하다. 그때의 빈자리에 지금의 내가 그려 넣을 수 있는 말은 이런 정도다.

“저희 세배하러 왔어요.”
“그래, 들어와라.”
우리가 하러 온 일은 분명했다.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는 것.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럿이 하는 인사는 목소리가 꼭 맞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먼저 시작하고, 누군가는 뒤늦게 따라 했을지도 모른다. 한복을 입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얌전하고 의젓한 아이들이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우리는 세배를 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우리에게 세뱃돈을 주셨다.
“감사합니다.”
이 말은 아마 아주 잘했을 것이다.
돈을 많이 받을 방법을 생각해낸 아이였으니, 받을 때 인사하는 것쯤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른들은 세뱃돈만 주신 게 아니었다. 과일을 내주셨다.
“이것도 먹고 가.”
우리가 가는 곳마다 먹을 것을 챙겨주셨다. 세배를 하고 금방 나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떤 집에서는 밥까지 주셨다.
“밥 먹고 가라.”
지금은 이 말 앞에서 자꾸 멈추게 된다. 한 명도 아니고, 한복 입은 아이들이 다섯에서 일곱 명 가까이 찾아온 것이다. 과일을 내주어도 여럿이 먹을 만큼 내주어야 하고, 밥을 주려면 그만큼의 밥과 그릇이 있어야 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쪽으로는 머리를 굴려보지 않았다. 먹으라고 하시면 먹었다. 주시면 받았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다른 집으로 갔다.
“또 갈까?”
“가자.”
우리의 명절 인사는 다음 집에서도 계속됐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웃기다. 처음 아이들을 모을 때부터 세뱃돈을 많이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면서, 어른들께 인사도 드리고 좋은 일도 하는 기분이었으니까. 그 마음이 거짓은 아니었다. 어른들이 우리를 보고 좋아하시면 좋겠었다. 아이들이 별로 없는 마을에 우리가 여럿 모여 다니는 일이 나름대로 쓸모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다 같이 찾아가 세배를 하면 혼자 가는 것보다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른들께 직접 물어본 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저희가 다 같이 가도 괜찮아요?”
그런 질문은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가면 좋으시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찾아갔다.

어른들이 맞아주시고, 먹을 것도 주시고, 세뱃돈까지 주시니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을 것이다. 어느 집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누가 얼마를 주셨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확실히 기억난다. 진짜 많이 받았다.
어린 내가 생각한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세배할 집이 늘어날수록 세뱃돈도 늘어났다. 아이들도 좋다고 함께 다녔고, 어른들도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날의 일을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아주 잘 보낸 명절이었다.

돌아와서 할머니께 혼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다니면 민폐야.”
할머니 말씀은 그런 뜻이었다.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세배하고 돈을 받는 일이 어른들께 민폐가 된다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듣고 나니 알 것 같았다. 나는 우리가 받을 것을 생각했다. 어른들은 세배를 받으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 어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내주셔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한테는 한 집에 한 번씩 가는 일이었다. 그 집 어른들께는 아이 여러 명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일이었다.

내가 세뱃돈 한 번을 받는 동안, 어른들은 우리 모두에게 돈을 챙겨주셔야 했다. 과일을 내오고, 밥을 차리는 일도 우리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없던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 집으로 가면 됐지만, 어른들께는 우리가 먹고 간 그릇도 남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그날 바로 이렇게 정리해서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때 나는 어렸다. 할머니 말씀을 듣고 그저 알았다.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하면 민폐가 될 수도 있구나.'
'우리는 그냥 세배하러 간 건데.'

어린 마음을 지금 말로 옮기면 그랬을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는 정말 세배를 하러 갔다. 돈을 받을 기대도 있었고, 어른들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마음이 있다고 해서 어른들께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쪽을 알려주셨다.

추석에 집에 다녀오며 그날이 떠오른 건,

이제는 자꾸 우리를 맞아주던 어른들 쪽을 생각하게 되어서다.

한복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찾아왔다.

“세배하러 왔어요.”

그중에는 나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같이 가자고 먼저 말한 아이. 세뱃돈을 많이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른들도 좋아하시리라 믿었던 아이.

어른들은 그런 우리에게 과일을 내주셨다. 밥을 주신 집도 있었다. 세배를 받으시고는 세뱃돈도 챙겨주셨다.

그날 어른들이 정말 적적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를 보고 얼마나 반가우셨는지도 내가 대신 말할 수는 없다. 마침 쉬고 싶으셨을 수도 있고, 이미 명절 손님을 치르느라 바쁘셨을 수도 있다.

나는 어른들의 사정을 잘 모른 채 찾아갔다.

그리고 많이 받았다.

돈도, 먹을 것도, 우리를 들여보내 주신 자리도.

할머니께 혼났던 기억 때문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조금 부끄럽다. 제목을 붙이고 보니 더 그렇다. 세뱃돈을 수거하러 다니던 아이라니. 내가 한 일을 아주 틀리게 부른 것도 아니라서 웃다가 조금 민망해진다.

그래도 같이 가자는 말에 좋다고 따라나선 아이들이 있었고, 우리를 맞아주신 어른들이 있었다.

이제야 그날의 인사를 한 번 더 드리고 싶다.

그때 저희가 여럿이 찾아가서 번거로우셨지요.
과일도 주시고, 밥도 주시고, 세뱃돈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정말, 어른들도 좋으실 줄 알았어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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