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왕사남, 후기.

우리는 정말 기억하고 있는 걸까? - 영월에서..

by마엘

최근, 장안의 화제인 <왕과 사는 남자>.

단종의 생애를 그려낸 영화, 언제쯤 볼까 싶었던 것도, 이유가 있다.

나는 늘 이런 이야기를 쉽게 보지 못했다.

독립운동, 충절, 나라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너무 쉽게 감동으로 소비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이상하게 영화 자체보다 제사가 먼저 떠올랐다.

어릴 적 우리 집안의 슬픈 이야기들은,
왜 그렇게 조용히 묻혀 있어야 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외워야 하는 국사바카라 속 한국 근현대사처럼 느껴졌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 독립운동. 충절. 나라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
그런 것들은 늘 너무 멀었고, 어려웠다.
이야기는 대략 이런 식이다.
우리 집안에는 오래전부터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을 다시 왕으로 세우려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곁에 섰던 금성대군.
끝내 실패로 돌아간 그 선택 이후, 순흥은 무너졌고,
많은 사람들은 이름과 삶을 숨긴 채 흩어져 살아야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들은 늘 제사상 주변에 남아 있었다.
매번 제사를 지내러 가야 했던 그 길도, 한식마다 반복되던 시간도,
어린 나에게는 그저 귀찮은 일이었다.

백암 선영으로 향하던 차 안의 공기.
말이 적던 어른들.
갓을 쓰고 앉아 계시던 큰 어른.
제사가 끝난 뒤 조용히 태워지던 지방.

나는 그 순간들이 왜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종종 우리 집안을 두고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그 말은, 그저 허우대처럼 느껴졌다.
정작 누구를 기억해야 하는지, 왜 우리가 그곳으로 가고 있었는지,

나는 최근에서야, 그 이야기들이 단순한 제사나 집안 자랑이 아니라,

순흥 안 씨 안수공파 취우정공파라는 시간 안에 남아 있던 기억들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 기억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잠깐 슬퍼하고, 잠깐 감동하고,
다시 잊어버리는 걸 기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걸까.

영화를 보고 돌아온 그날 새벽,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충동처럼 대종회 족보 사이트에 들어갔다. 어릴 적 파편처럼 남아있는 '단종복위운동'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검색창 앞에 앉아 있는 순간,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잊고 지냈던 누군가의 이름을, 이제야 겨우 다시 불러보려는 사람처럼,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을 입력했다.


안종 O.
安宗O.


그 순간 처음으로, 이름도, 역사도, 기억도, 생각보다 오래 들여다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걸 알았다.


안동O.
안종O.
안용O.


오랫동안 그냥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세대와 시간을 이어오던 흔적이었다는 것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름들을 하나씩 들여다볼수록 나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제사는 남았지만 이유는 사라졌고, 이름은 남았지만 얼굴은 흐려졌고, 묘는 남아 있었지만 결국 납골당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영월로 향했다.

왜 그곳으로 가야 했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다만, 아무 상관없는 줄 알았던 역사가 처음으로 내 삶 가까이 걸어 들어오고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했다.


영월의 선돌(立石)은 단종의 유배길 중 가장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꼽히는 곳

그렇게 단종이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영월 청령포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생각보다 조용한 곳이었다. 관광객들의 발소리와 안내 방송이 들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은 오래된 시간 하나가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500년 전, 어린 왕이 처음 영월에 들어와 섰던 그 돌 앞에 섰다.

500년 전, 누군가는 끝내 지키려 했던 어린 왕은
이 서늘한 절벽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안 어른들이 제사상 머리에서
읊조리던 '정축지변'의 조각들이,
이곳의 푸른 강물 속에
여전히 가라앉아 있는 것만 같다.


나는 한동안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역사바카라 속에서만 존재하던 단종과, 집안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정축지변이, 청령포에 서 있는 순간 처음으로 같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선택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살아야 했을까. 어떤 이름들은 살아남기 위해 잊혀야 했고, 어떤 기억들은 200년이 지난 뒤에야 다시 불릴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날 청령포에서 떠오른 건, 위대한 충신들의 이름보다, 백암 선영으로 향하던 어린 시절의 짙은 향수와 기억이었다.

말없이 운전하시던 아버지.
차창 밖으로 지나가던 겨울 산.
제사가 끝난 뒤 타들어가던 지방의 냄새.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내가 남겨진 조각들을 붙잡고,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려 했던 이유. 누군가의 고통과 부당함을 끝내 외면하지 못했던 이유. 나는 오랫동안 그것이 그저 내 성격이고, 내 감수성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것들은 모두, 우리 집안 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던 어떤 시간의 흐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축지변 이후 흩어졌다는 이야기.
나라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
끝까지 말을 삼켜야 했던 시간들.
제사상 머리에서만 조용히 남겨지던 이름들.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오래 사람 안에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들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늘 그런 이야기들 곁으로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기록하고, 사라질 것들을 붙잡고, 끝내 잊지 않으려 했던 마음들.

어쩌면 역사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이름이 아니라 사람의 방향으로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시대다. 예전에는 사람의 이름이 제사상과 입말 속에서 이어졌다면, 지금은 검색창과 데이터 안에서 겨우 흔적처럼 남아 있다. 우리는 누구보다 많은 기록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잊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건, 이름을 크게 외치는 일이 아니라,
사라진 사람들의 시간을 끝내 모른 척하지 않는 일이니까.

어릴 적에는 그저 귀찮기만 했던 제삿날의 공기와, 백암으로 향하던 길, 말없이 잔을 올리던 어른들의 침묵이 이제 와서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끝까지 기억하려 했고, 누군가는 끝내 말하지 못한 채 살아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후손인 우리는 역사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기 가족의 이름조차 흐릿하게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도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던 건,

거창한 장면보다 제사가 끝난 뒤 조용히 타들어가던 지방의 연기였다.

어쩌면 기억이라는 건, 거창한 애국심보다, 끝까지 잊지 않으려는 태도에 더 가까운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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