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항공권의 소중함을 알아?

라떼는 말이야 쓰레기통 뒤지는 게 아주 일상다반사였어

by마봉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 항공권이 종이로 되어 있었어...

2008년 IATA가 전자항공권(E-ticket)으로 전면 전환하면서 종이항공권은 사실상 사라졌다. 요즘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에는 종이항공권을 실제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많다(그래서 종이티켓 봐도 읽을 줄도 모른다 아이구 잼민이들).


온라인카지노에는 으르신들이 많으니 아마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김포공항에서 국제선 좀 타보신 분들이라면 더더욱 기억나실 것이다. 지금은 전자항공권이 워낙 보편화되어있다 보니 여행사나 항공사에서 보내준 전자항공권을 A4용지에 출력한 걸 종이항공권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자항공권은 말 그대로 시스템 안에 항공권이 있는 거라 종이로 뽑았다고 그게 항공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옛날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공항에서 체크인하던 직원들에게는 이 항공권이 하늘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었다.


종이 항공권의 종류

1. ATB(Automated Ticket and Boarding Pass) 방식 종이항공권

티켓 스톡에 전산으로 여정·운임·승객정보 등이 인쇄되고, 오른쪽에 passenger coupon/boarding 관련 영역까지 정형화된 형태. 더 밑에 나오는 카본식 종이항공권에 비해 비교적 후기형 종이항공권이다.

A flight coupon issued by Thai Airways International(출처 Wikimedia Commons) - 세상에 안 쓴 티켓이네 와우


2. TAT(Transitional Automated Ticket) 방식 종이항공권

여러 장의 flight coupon으로 구성되어 발권 내용이 카본으로 전사되던 구형 종이항공권. 위의 ATB 방식 종이항공권은 두꺼운 티켓 스톡에 한 장 한 장씩 인쇄한 쿠폰을 발권카운터 언니가 스테이플러로 찝어주는 반면, 카본식 종이항공권은 뒷면에 카본처리된 스톡을 발권기계에 집어넣고 한꺼번에 찍어낸다. 그래서 뒷장으로 갈수록 글자가 점점 옅어지는 단점이 있다. 쿠폰 4번 비행기 체크인하는 사람은 진짜 열심히 쳐다봐야 보인다. 그리고 얘는 종이가 얇아서 티켓 뜯을 때 잘못 찢으면 막 찢어진다. 그러면 울면서 뒷면에 테이프로 정성스럽게 붙여야 한다(찢어진 채로 가져가면 슈퍼바이저한테 혼남).

공개된 샘플을 찾지 못해 챗순이한테 그리게 한 카본 인쇄 방식의 종이 항공권


3. MPT(Manual Passenger Ticket) - 수기 티켓

발권기계가 없는 시골구석 여행사에서는 스톡에 저렇게 손으로 써줬다. 라떼는 아프리카에서 발권한 티켓은 죄다 저따위로 생겨먹었고 글씨가 날림이라 진짜 눈알이 빠지도록 자세히 봐야 했다. 아래 샘플은 쿠폰 다 뜯고 남은 마지막 장이다(그래서 배경이 흰색임 - 그래도 일본애들 글씨라 알아보게 또박또박 잘 썼다). 티켓에는 어느 발권처에서 발행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우측 상단에 저렇게 Validation Stamp도 찍었다.

Flight coupon from a handwritten air ticket issued by BG in 1995(출처 Wikimedia Commons) 이건 다 쓰고 남은 뒷장


체크인할 때 티켓 뜯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당시 종이항공권은 지금처럼 예약 기록만 확인하고 탑승시키는 방식이 아니었다. 항공권에는 각 구간마다 Flight Coupon이 붙어 있었고, 승객이 그 구간을 이용하면 체크인 직원이 해당 쿠폰을 떼어 회수했다.

예를 들어 서울-도쿄-서울 왕복 항공권이라면 서울-도쿄 쿠폰과 도쿄-서울 쿠폰이 따로 있었다. 서울에서 체크인할 때는 서울-도쿄 쿠폰을 뜯어야 했다. 그걸 회수하는 것까지가 체크인의 일부였다.


그런데 직원이 깜빡하고 쿠폰을 뜯지 않은 채 승객을 보내버리면 문제가 생겼다. 승객은 이미 비행기를 탔는데, 항공사 손에는 그 구간을 사용했다는 증빙이 될 쿠폰이 없는 것이다. 전산에서 버튼 하나 눌러 끝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 쿠폰이 있어야 해당 구간의 운임을 정산할 수 있었다. 직원이 쿠폰을 뜯지 않고 승객을 보내버리면 승객은 이미 탔는데 정산에 필요한 증빙이 사라지는 셈이었다.


“어차피 이미 탄 비행기 표인데 승객이 그거 다시 쓸 수도 없잖아요?”라고도 물을 수 있겠지만, 종이항공권은 달랐다. 직원이 실수로 뜯지 않으면 이미 비행기를 탄 승객의 손에 미회수 쿠폰이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그 쿠폰을 다른 발권처에 가져가 날짜를 변경해 다시 사용할 수도 있는 위험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 체크인을 하고 승객을 태워 보냈는데 티켓을 안 뜯으면 승객을 공짜로 비행기에 태워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티켓 뜯는 걸 깜빡하면 벌어지는 일들

"티켓 주세요~"

얼추 카운터가 마감될 때면 티켓 수거 담당 직원이 각 카운터를 돌아다니면서 티켓을 걷는다. 체크인 직원들은 시스템에서 자기 코드로 수속된 승객 수를 보고 자기가 회수한 티켓이 몇 장인지를 확인한다. 그때쯤 되면 다들 손가락이 빨개져 있다(카본 뒷면에 칠해진 빨간 칠 때문에). 잘못 세었을까 봐 세고 세고 또 센다. 그리고 만약 티켓이 한 장 모자라면...

"시발! 나 티켓 모자라!"

1번 행동: 쓰레기통을 뒤진다

체크인 카운터는 2개가 붙어있는 구조다. 그리고 그 사이에 큰 쓰레기통이 있다. 그 안에는 찢어 내버린 보딩패스, 잘못 나와서 버린 백택 등이 들어차 있다. 물론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상관없다. 일단 쓰레기통부터 뒤진다. 혹시라도 내가 다른 거 버리다가 티켓도 같이 버렸을까 봐.


쓰레기통을 뒤져서 티켓이 나오면 휴우... 하고 한숨을 쉬며 소중한 티켓을 다시 자기 티켓 더미 안에 끼워 넣는다. 신에게 감사해야 할 정도로 다행한 일이다. 유니폼 입은 멀쩡한 사람들이 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을까만은 공항 직원들이 쓰레기통 뒤지는 장면은 그 시절 공항에서 흔해 빠진 광경이었다.

유니폼을 입은 공항 직원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


2번 행동: 뛴다

쓰레기통을 뒤져도 나오지 않으면 승객 수속할 때 내가 안 뜯은 것일 확률이 높다. 일단 게이트에 승객 아직 탑승 안 했는지 워키로 물어보고 아직 안 탔으면 보딩 할 때 컨택해 달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게이트로 뛰어간다. 100미터 25초에 뛰던 허약한 인간들도 이때만큼은 국가대표 육상선수가 된 마음으로 뛴다. 게이트 직원이 대신 뜯어줄 수도 있을 텐데 왜 내가 직접 뛰는가? 승객이 아까 직원이 분명히 뜯었다고 잡아뗄 수도 있고 게이트 직원이 바쁘다 보니 그거에 신경 못 쓸 수도 있어서이기도 하다. 일단 내가 직접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게이트가 가까우면 그나마 다행인데 탑승동 102번이나 130번 막 이러면 정말 숨이 넘어가고 뒤질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유니폼 입고 전력질주하는 직원들은 90% 티켓 안 뜯은 직원이었다. 전자티켓으로 바뀐 다음부터는 그런 광경 볼 일이 진짜 거의 없어졌다.


승객이 탑승을 이미 했으면 기내까지 쫓아 들어간다. 승객 좌석에 가서 숨을 몰아쉬며 익스큐즈미 메이아이체크욜티켓? 하면 승객이 어리둥절하다가 막 부시럭부시럭 하고 티켓을 꺼내 보여준다. 그때 안 뜯은 티켓이 뙇 보이면 그나마 겁나 럭키하다고 볼 수 있겠다.


3번 행동: 쓰레기 집하장으로 간다

진짜 타이밍 오지게 청소 이모님들이 카운터 쓰레기통을 다 비워버렸는데 그 후에 내 티켓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러면 뛰어나가서 청소 이모님을 찾는다. 내 쓰레기통 비운 이모님이 누군지 몰라도 그냥 아무나 붙들고 호소한다. 쓰레기통 비운 거 지금 어디 갔어요? 그러면 이모님이 지금 저쪽 돌고 있을 텐데~ 하고 가리킨다. 쫓아가면 겁나 큰 비닐봉지(쓰레기 수거용)를 가져가는 이모님이 있다. 그러면 이모님 붙들고 공항 카운터 사이 넓은 공간 한복판에서 수거용 대봉투를 뒤진다. 드러운 쓰레기가 나와도 개의치 않는다. 찾는 게 더 중요하다.


이 큰 수거봉투들이 이미 집하장까지 갔으면 이모님들이랑 같이 램프 버스를 타고 집하장으로 가서 찾아내고 마는 독한 애들도 있었다. 이런 애들은 인생에서 포기라는 것을 모르는 애들이라 나중에 뭘 해도 될 애들이다.


4번 행동: 도착지에 전문을 보낸다

이미 비행기가 문 닫고 떠나버린 뒤에 티켓이 없는 게 발견되면 슈퍼바이저가 빡친 표정으로 도착지에 전문을 친다. 도착 게이트에서 승객을 컨택해서 티켓을 뜯어달라는 것인데, 그러면 뭐 해결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도착지 직원들이 다른 승객들 챙기다 보니 제대로 못 봐줄 수도 있고, 자기 이름 써붙인 팻말을 들고 있는 직원을 승객이 못 보고, 혹은 보고도 씹고 그냥 지나가 버릴 수도 있다. 도착지에서 승객 찾아 티켓 뜯는 것은 이미 성공 확률이 많이 줄어든 방법이다. 이때쯤 되면 기도만이 나를 붙잡아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온갖 짓을 다 해봤는데도 티켓이 발견되지 않으면 발권언니가 분실된 쿠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처리하고 새 쿠폰으로 리이슈 하는 최최후의 수단이 있기는 하다(권장할 방법은 아님). 하지만 항상 문제는 전산화가 잘 되어있지 않은 어딘가의 오지 여행사 같은 데서 그 티켓 갖고 또 예약을 잡아준다거나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티켓 안 뜯었다는 것은 그 승객 여권 유효기간이나 비자 제대로 안 보고 승객 보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괴로운 일이다. 슈퍼바이저한테 개같이 혼나기도 하고.


그러면 다음번에는 체크인 직원이 승객 여권이나 비자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을 때 생기는 일들을 알아보겠다. 이것은 라떼 안 마셔도 지금도 발생하는 일들이다. 두 주먹 꽉 쥐고 기다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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