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님이 꽉 잡으라고 하더니 갑자기 밟기 시작했어요!
방학 동안 부모님 등골 쪽쪽 빨아 비행기 타고 휴가 다녀온 어린이 여러분 안녕?
오늘은 정말 중요한 것을 알아볼 거예요. 우리 어린이 여러분들 학교에 지각할 것 같으면 갑자기 엄마 아빠가 이빨 꽉 깨물고 밟거나 신호 한두 개쯤 그냥 건너뛰고 막 달리는 거 보셨죠? 그런데 또 이런 적도 있을 거예요. 분명히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때는 예정시간보다 늦게 출발했는데, 도착해 보니까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거예요.
아무리 하늘에서 길이 안 막혔다고 해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혹시 기장님도 급해서 이빨 꽉 깨물고 밟으신 걸까요?
기장님이 부산 택시 기사 아저씨도 아니고 이렇게 할 리는 없구요, 일단 비행기에는 자동차처럼 액셀이 없어요. 그러니 기장님이 오른발에 힘줘도 밟히는 게 없어요. 그럼 뭘로 속도를 조절할까요?
그럼 뭘로 속도를 조절할까요? 자동차에 액셀이 있다면 비행기에는 추력 레버(Thrust Lever)라는 것이 있어요. 조종석 가운데를 보면 기장님과 부기장님 사이에 앞으로 밀었다 뒤로 당겼다 할 수 있는 레버가 달려 있어요. 이걸 움직여서 엔진이 얼마나 힘을 낼지를 조절한답니다. 쉽게 말하면 레버를 앞으로 밀면 “엔진놈아, 힘 좀 더 써!”, 뒤로 당기면 “워워 그만, 선 넘지 마.” 하는 거예요. 물론 자동차 액셀처럼 레버를 앞으로 민 만큼 비행기 속도가 바로 올라가는 건 아니에요. 비행기 속도에는 추력 말고도 여러 가지가 영향을 주거든요.
그리고 늦게 출발했다고 기장님이 “아 오늘 30분 지연됐네. 좀 달려볼까?"하고 추력 레버를 끝까지 밀어버리는 건 아니에요. 비행기는 자동차처럼 제한속도 100km 도로에서 120km로 밟아서 시간을 메꾸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물론 실제 비행기의 속도 조절은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여기서 고도, 항력, 기수 자세 같은 얘기 하면 우리 어린이들 울면서 도망갈까 봐 여기까지만 얘기할게요.
그럼 하늘에도 과속카메라가 있을까요? 없어요. 아무리 하늘을 날아다녀도 갑자기 구름 뒤에서 번쩍! 하고 사진 찍혀서 며칠 뒤에 기장님 집으로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오는 일은 없답니다.
그렇다고 “오예, 카메라 없다! 밟자!” 하고 마음대로 날아다녀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오히려 비행기는 자동차보다 훨씬 까다롭게 속도를 지켜야 해요. 비행기에는 기종마다 안전하게 날 수 있는 속도의 범위가 있고, 비행하는 고도와 상황에 따라서도 적절한 속도가 달라져요. 특히 공항 근처에서는 다른 비행기들도 잔뜩 몰려 있기 때문에 관제사가 속도 줄이라고 지시하기도 해요.
그러면 기장님은 “싫은데요? 저 오늘 늦었는데요?” 하고 냅다 달릴 수 없어요. 안전상 따를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시키는 대로 줄여야 해요. 앞에 다른 비행기도 있는데 혼자 빨리 가겠다고 냅다 달렸다가는 도착한 곳이 목적지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흔히 타는 여객기는 순항할 때 이미 시속 800~900km 정도로 날아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시간도 안 돼서 날아갈 만한 속도예요. 그럼 이렇게 빠른 비행기가 왜 서울에서 부산까지 실제로는 한 시간 가까이 걸릴까요? 그건 비행기가 김포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하자마자 부산 김해공항 활주로를 향해 자를 대고 쭉 직선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어? 하늘에 도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뚫린 데로 날아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하늘에는 도로도 없고 중앙선도 없고 신호등도 없잖아요? 그래도 기장님이 창밖 한번 쳐다보고 "오늘 이쪽으로 가면 좀 빠르겠는데?"하고 핸들 꺾어서 내립다 달릴 수는 없어요.
사실 하늘에도 길이 있어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랍니다. 비행기는 출발하기 전부터 어느 길로 날아갈지 비행계획을 세우고, 정해진 지점들을 따라 목적지까지 이동해요. 하늘에는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비행기 도로들과 지점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어요.
물론 상황에 따라 관제사가 중간 지점 건너뛰고 좀 더 곧장 가도 된다고 허락해 줄 때도 있어요. 그럼 기장님은 "오예 지름길 개이득!"하고 조금 거리를 줄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목적지가 눈앞에 보여도 허락도 없이 "김해 붸이붸! 내가 간다!"하고 냅다 직선으로 마구 갈 수는 없어요. 왜냐면 그 넓어 보이는 하늘에는 지금 우리 눈에 안 보이는 비행기들이 사방팔방에서 날아다니는 중이거든요. 게다가 북쪽으로 갈 때는 더 조심해야 해요. 뻥 뚫렸다고 정으니네 상공으로 날라가면 큰일이니까요.
그런데 똑같이 방콕을 가도 어떤 날은 일찍 도착하고 어떤 날은 늦게 도착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바로 바람 때문이에요.
...아 그거 아니에요. 그 바람 말고요.
비행기는 공기 속을 날아가는 물건이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아요. 우리가 자전거를 탈 때 뒤에서 바람이 불면 신나게 쌩쌩 나가고, 앞에서 바람이 세게 불면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욕밖에 안 나오는 것과 비슷해요. 비행기도 목적지 방향으로 강한 뒷바람이 불면 지상에서 봤을 때 훨씬 빠르게 이동하고, 반대로 강한 맞바람을 만나면 같은 힘으로 날고 있어도 목적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비행기를 탔는데 기장님이 “오늘은 강한 뒷바람의 영향으로 예정보다 일찍 도착할 예정입니다.”라고 방송하는 일이 있는 거예요. 그건 기장님이 신나서 밟은 게 아니라 바람이 밀어준 거랍니다. 그리고 그건 기장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바람한테 "저 오늘 좀 늦어서 그러는데요, 뒤에서 좀 밀어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자, 오늘은 뒷바람도 빵빵하게 불어줬고 비행기도 아무 문제 없이 날아왔어요. 창밖을 보니 벌써 목적지 도시가 보여요.
“오예! 다 왔다!”
그런데 비행기가 안 내려가요. 공항 근처까지 왔는데 갑자기 한 바퀴 돌아요. 한번 더 돌아요. 그리고 또 돌아요. 우웁 어지럽게 왜 자꾸 도는 거죠? 너도 돌고 나도 돌아요. 슬슬 불안해져요. 왜 안 내려가는 걸까요? 기장님이 내려가기 싫어서 간 보는 걸까요?
아니에요. 기장님도 내려가고 싶어요. 승무원 언니오빠들도 내려가고 싶어요. 여러분보다 더 내려가고 싶어요. 퇴근해야 하니까요. 문제는 공항이 우리 비행기 한 대만 쓰는 곳이 아니라는 거예요.
비행기가 공항 근처에 도착하면 관제사(ATC: Air Traffic Control)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해요. 앞에 착륙할 비행기가 줄줄이 있거나, 활주로가 혼잡하거나, 날씨가 나쁘거나, 공항 사정 때문에 바로 착륙할 수 없다면 기다려야 해요. 근데 공중에 멈춰서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Holding, 즉 공중에서 정해진 경로를 돌면서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창밖을 보면서
“엄마, 우리 아까 여기 지나가지 않았어?”
“어... 그런 것 같은데?”
“근데 왜 또 여기야?”
하고 있다면 10분 전 과거로 무한루프 걸린 게 아니라 상공을 돌면서 착륙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답니다.
사실 비행기가 20분 늦게 출발했는데 10분 일찍 도착했다고 해서 기장님이 하늘에서 30분을 만회한 건 아닐 수도 있어요. 원래 시간표 자체에 어느 정도 여유가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공항이 안 막히고, 지름길도 받고, 뒷바람까지 잘 불어주면 그 여유시간을 안 쓰고 도착할 수 있는 거죠.
결론적으로 비행기가 빨리 도착하는 데에는 기장님의 운항, 비행경로, 관제, 바람, 공항 혼잡도 등 여러 가지가 영향을 줘요. 그러니 늦게 출발한 비행기가 일찍 도착했다고 해서 “와! 우리 기장님 운전 개잘해!”하면서 물개박수 칠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하면 좋겠죠?
그럼 어린이 여러분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