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가족 여행
평안했는가, 우리의 여행은
이번 여행은 괜찮았는가?
아니, 이 말보다는 평안했는가?
아니, 마음이 좋았는가?
이번 여행을 다녀오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곳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고 낯선 길을 함께 걷는 매 순간 마음 가득히 가족 생각이 숨결로 흘렀다.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별것 아닌 일로 웃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에게 이런 여행이 몇 번이나 더 남아 있을까.’
요즈음 몸도 마음도 좀 지쳐가고 있음을 안다. 후후. 절대 누구에게도 불안, 염려, 걱정을 주고 싶지 않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 심히 몸을 아프게 했다. 물을 넘기기도 고통스러울 만큼 아팠다. 다시 말하면 조금씩 낡아가고 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에도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는다. 어디 삶이, 생이 마음대로 되던가.
살아오면서 가까운 사람들을 많이 떠나보냈다. 주검이 늘 생의 한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근래에 여러 지인을 보냈고, 큰언니가 떠날 때는 유난히 가슴이 저리고 미어졌다. 한 가문의 중심이었던 사람의 떠남은 말로 형언키 어려운 큰 빈자리를 남겼다.
사람의 마지막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단종처럼 사약을 받아 죽을 수도 있고, 엄마처럼 가슴을 쥐어뜯으며 관을 부여잡고 차마 보내지 못한 채 몸부림치는 막내를 두고 갈 수도 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 교통사고처럼 순식간에 떠날 수도 있다.
죽음은 여러 모습으로 찾아온다.
오래전부터 죽음에 대해 나름의 수용 준비를 하며 살아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는 없지만 어떤 경우라도 죽음이 찾아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해 왔다. 어쩌면 막내로 살아온 내 삶이 늘 주검을 목격해야 해서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58세에 가신 아버지, 68세에 허공으로 날아오르듯 떠나신 엄마, 58세에 꼭 아버지의 나이만큼 살고 간 오빠. 부모를 대신해 지켜주었던 작은 형부와 큰 형부 그리고 큰언니마저 한마디 말도 없이 망연하게 떠났다.
분신인 그들을 하나둘 보내면서 알게 되었다.
삶은 영원하지 않으며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함께했던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나누었던 마음이라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깊고 고맙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왜 하필 지금 마음의 이야기를 쓰는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제1장 ‘경제(Economy)’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를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아마 나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In most books, the I, or first person, is omitted; in this it will be retained…”
대부분의 바카라에서는 ‘나’, 즉 1인칭이 생략되어 있지만, 이 바카라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남겨두겠다.
그리고 이어 말한다.
“We commonly do not remember that it is, after all, always the first person that is speaking.”
우리는 결국 언제나 1인칭의 ‘나’가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흔히 잊는다.”
그리고 특히 너무 정확히 마음을 파고들어 오래 마음에 담아둔 문장이 등장한다.
“I should not talk so much about myself if there were anybody else whom I knew as well.”
나만큼 나를 잘 아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덧붙이며 소로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Unfortunately, I am confined to this theme by the narrowness of my experience.”
불행히도 나는 내 경험의 한계 때문에 이 주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소로는 다시 이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Moreover, I, on my side, require of every writer, first or last, a simple and sincere account of his own life, and not merely what he has heard of other men's lives; some such account as he would send to his kindred from a distant land…”
나는 더욱이 모든 작가에게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소박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요구한다. 다른 사람의 삶에 관해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먼 나라에 가 있는 사람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깊이, 너무 깊이 공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특별해서가 아니다. 직접 살아보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삶이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아무리 많이 들여다본다 해도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만 그 삶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나에 대해 쓰는 것은 자기 자랑도 자기중심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먼 나라에 가 있는 사람이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듯 내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하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한 사람의 삶은 결국 다른 사람의 삶에도 가닿는다.
그래, 오늘은 조금 더 솔직하게 글을 쓰고자 한다.
가족들이 무엇보다 고맙다.
곁에서 함께 살아주고, 기쁠 때 함께 웃어주고, 힘들 때 말없이 손을 잡아주어서 정말 고맙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족들에게 준 사랑보다 가족들에게 받은 사랑이 훨씬 많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말을 함부로 했던 순간도 있었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날도 많았다. 서로 마음이 상하기도 했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순간조차도 가족이기에 용인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살아오면서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더 최선을 다해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도 많았다.
미안하다.
엄마는 언제나 가족을 사랑했다. 다만 표현하는 데 서툴렀고 어눌했다.
아무 준비 없이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없는 상태여서 엄마의 조언을 구할 수도 없었다. 세상 잘 몰랐다. 지금도 세상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할 당시의 나는 더욱 미숙했다.
그저 세상을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품으며 살아왔다. 나의 엄마가 늘 그러했듯. 나도 세상을 마음으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안았다. 그것이 그때에도 지금도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참 많은 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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