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친구 아버님은 10년도 더 전에 돌아가셨잖아?”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했다. 스마트폰에 뜬 부고를 다시 읽었다.
지난주 크게 상심한 일이 있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내가 하지 않은 일로 뜻밖의 원망을 들었다. 가족 사이의 일이라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날 밤, 창밖은 유난히 캄캄했다. 속이 얹힌 듯 답답했다.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간의 강의를 마친 피로까지 겹쳐 토요일에는 일찍 곯아떨어졌다.
일요일 늦은 아침, 스마트폰에 찍힌 절친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토요일 밤 11시 12분. 자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 야심한 밤에 전화하는 친구가 아니라 의아했다. 나도 스마트폰을 잘못 건드려 의도치 않게 전화를 건 적이 있어, 친구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버님께서 별세하셔서 삼가 부고를 전합니다.”
카톡 알림이 왔다. 친구의 부고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구나 싶어, 다른 친구들에게는 내가 연락할 테니 힘내라는 말로 답장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친구 아버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는데. 메시지를 찬찬히 다시 읽었다. 부고에 적힌 이름은 친구의 이름이었다.
급히 친구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친구의 아내가 울면서 전화를 받았다. 최근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은 몰랐다. 불과 며칠 전에도 통화했는데,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는데.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평소 나는 눈물이 적은 편이다. 슬픈 드라마를 봐도 애절한 노래를 들어도 좀처럼 울지 않았다. 그런 나도 친구의 부고 앞에서는 목이 메어 말을 잇기 힘들었다.
사춘기를 갓 지난 10대 말, 내 마음은 지독히도 추웠다. 가난과 만성중이염으로 상처받은 나는 말이 없었고, 혼자 상념에 잠기기 일쑤였다. 그런 내게 가까이 다가온 친구였다. 안으로 움츠러든 나를 밖으로 이끌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게 해 주었다.
그해 가을은 고독했다. 친구는 나를 이끌고 자기 집으로 갔다. 혼자 쓰는 방이 있다는 사실이 참 부러웠다. 늦가을 햇살이 친구의 방을 비스듬히 가로질렀다. 그 방에 누워 음악을 들었다. 휘파람 소리로 시작하는 멜로디는 경쾌하면서도 애잔했다. 이윽고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가 내 영혼을 뒤흔들었다.
그 음악의 제목을 알 수 없었다. 카세트테이프에는 몇몇 곡명만 손글씨로 적혀 있었고, 그 곡은 이름조차 없었다. 그 후 곡명을 알아내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마침내 프랑스 영화 〈어느 개인 날 아침 갑자기〉의 주제가라는 사실을 알아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다.
그 무렵부터 친구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같이 음악을 듣고 밥을 먹으며 친구의 가족과도 가까워졌다. 지금도 아버님과 형님, 누님들의 성함을 기억한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누님이 막내인 친구를 무척 예뻐했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빈소에서 친구의 아내를 만났을 때 울음이 올라왔다. 내 울음이 짐이 될까 싶어 애써 삼켰다. 그러나 친구의 사진 앞에 큰절을 하는 순간, 참았던 슬픔이 복받쳤다. 이렇게 친구를 떠나보낸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장성한 친구의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저 두 손을 맞잡고 조용히 다독였다.
그 시절 가까이 지냈던 둘째 형님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참 오랜만에 마주한 자리였다. 이야기가 끊긴 자리에 향냄새만 낮게 감돌았다.
그때 친구 아내가 나를 찾았다. 돌아보니 두 분 누님과 함께였다. 수십 년 만에 뵙는데도, 누님들은 내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가 있었더라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옛이야기를 나누는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더라면. 두 분을 마주한 채 자꾸만 친구를 떠올렸다.
친구는 다음에 만나자는 약속도 남기지 못한 채 먼 길을 떠났다. 그를 배웅해야 할 날, 나는 다른 도시로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감당해야 할 가족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은 빈소에 남아 있는데 몸은 자꾸 멀어졌다.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그가 내게로 다가와 준 날 나의 세상은 밖을 향해 열렸다. 그가 내 친구여서 기쁘고 행복했다. 친구에게 전화하면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함께 웃고 이야기했던 날들,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친구야. 편히 쉬어라. 많이 보고 싶을 거다.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