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이 만든 중문
아파트가 30년이 넘다 보니 여기저기
낡아지고 내려앉고 틈이 벌어진다.
언젠가부터, 나무 프레임의 현관 유리 중문이 내려앉아 뻑뻑하고 무거워졌다.
하루에도 여남은 차례 여닫는데 그때마다 팔이 아프다.
그래서 그런지 급기야 어깨 통증이 생겨 병원을 다니게 되었다.
오래된 아파트, 이번 베란다 새시를 전면 교체하는 김에 현관 중문도 고칠까.
요즘은 두 짝 중문 대신, 가벼운 슬림한 3 연동 슬라이딩 중문이 대세란다.
한동안 네이버에 올라온 다양한 후기들을 보며 사전 정보들을 얻었다.
다양한 무늬의 유리들 중, 아쿠아 무늬가 불투명하고 깔끔하더라, 문틀이 거실 바닥보다 높으니 불편하더라, 인터넷에서 주문하면 싸기는 하나 설치기사를 번거롭게 따로 불러야 한다 등등..
베란다 새시 교체 값에 얹어 같이, 조금 할인하여 중문 주문을 했다.
번잡한 베란다 공사가 깔끔하게 끝나고 다음날 중문 설치 아저씨가 오셨다.
베란다 설치 업자랑 관계없는 이것만 하청 받은 분이셨다.
또 다른 팀인 철거팀들이 미리 기존 나무 중문은 제거했다.
현관과 거실 사이는 뻥 뚫린 상태.
계약하던 날, 사장님은 걱정하셨다.
"기존 중문틀 사이즈가 어중간하네요.
새 문을 장착하면 사이드에 벽지가 없는 시멘트 부분이 드러나는데 어쩔 수 없네요."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키가 큰 '중문 아저씨'가 커다란 유리 등의 재료를 한가득 가지고 도착했다.
밑에 금속 레일을 깔고 문설주와 인방에 프레임을 설치했다.
그가 말했다.
"저기 벽 사이즈가 어중간해서 공사 끝나면 옆 시멘트가 드러나겠네요"
"예, 알고 있어요,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설치한 레일이 거실 바닥보다 좀 높은 것 같다.
인터넷에서, 저러면 불편하다고 했는데...
"바닥과 평평하게 설치할 수 없나요?"
모자 아저씨는 퉁명하게 대답했다.
"제가 알아서 합니다."
괜히 나는 옆에서 도움이 안 되는 잔소리나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경우 없는 젊은이...
잘못하기만 해 봐라...'
속으로 나는 중얼거렸다.
그분은 익숙하게 척척 설치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쨍그렁..."
유리 깨지는 소리가 온 아파트에 울러퍼젔다.
가보니, 문틀 작업하느라 벽에 기대어 둔 아쿠아 문양의 유리판 하나가 미끄러져 산산조각이 났다.
이런 뒤처리는 가정주부가 잘하지.
나는 "손대지 마세요" 하며 실리콘 빗자루로(쓰리잘비) 유리 파편을 모아 봉지에 담았다.
청년은 어쩔 줄 몰라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이 일에 유리값이라니. 오늘 일당은 허탕.
내가 파편을 치우는 사이, 청년은 현관 밖에서 새 유리를 주문하는 모양이다.
에쿠, 언제 새 유리가 올까? 오늘 완성은 불가.
그런데, 한두 시간 후 새 유리가 도착한단다.
어쩌다 나는 마침 가방 안에 있던 지폐 두 장을 그 손에 쥐여주었다.
"유리값이 얼마쯤 되나요?"
"ㅇㅇ에요."
"그냥 받으세요."
언제는 나를 잔소리 할머니로 여기는 듯하던 그가 이제는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었다.
작년에 위수술을 했단다.
날씬해서 총각인 줄 알았는데 마흔 살 가까인데 그 수술로 살이 빠진 거란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새 유리가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시간은 어연 두시가 되었다.
공사를 계속하려는 그에게 말했다.
"일이 재깍 마칠 수 없을 것 같은데
식사는요?"
"이일 마치고 다른 곳에 또 가야 돼요."
"그래도 어차피 밥은 먹어야죠. 몸도 안 좋은데. 먹고살자고 일하는 건데.
라면이라도 드실래요?"
계란을 하나 넣었으나 변변찮은 라면과 후식으로 내어놓은 귤을 맛있게 먹은 그는
작업을 계속했다.
거진 다 마친 중문을 이리저리 찬찬히 단장하기 시작했다.
공사가 아니라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여기저기 손대더니 나를 부른다.
"아주머니 여기 보세요 어때요?"
"아이고, 전문가가 알아서 해 주세요"
"아니요, 아주머니 눈에 좋아야 돼요."
정성껏 마무리된 중문.
그런데
기존문 규격과 달라 시멘트 벽이 드러난 부분이, 어떻게 무얼 덧대었는지 깜쪽같이 멋있게 마감되어 있다.
헐!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깨진 유리값을 준 건 아닌데...
깨진 유리창 값이 그의 일당을 빼먹을 것 같고 마침내 수중에 현찰이 있어서
그에게 준 건데.
그리고 싸게 하기도 했으니 손해 본 건 없지.
이럴러고 그런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찔려준(?) 돈 효과가 만점!
선물이 뇌물이 되었다.
충분히 완벽하게 아쿠아 3 연동 중문을 설치하고 "아주 멋있네요" 나의 평을 듣고서야 중문맨은 연장을 챙기고 떠나셨다.
내 집에는 장인이 만든 현관 중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