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을 맞다

좋은 날, 좋은 사람들

by데이지

94년 12월 어느 날, 새벽같이 일어나 아파트 상가 미장원으로 향했다. 한복에 어울리는 ‘올림머리’를 하기 위해 며칠 전에 예약해 둔 터였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 만 두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두 시간여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하니 갈 길이 멀다. 하루 자고 올 예정이니 챙겨야 할 짐은 또 얼마나 많았을꼬.


늘 그렇듯 아마도 조금 늦게 도착한 모양이다. 뷔페식당의 큰 연회장에선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민요를 부르고 있었다. 친척들, 손님들, 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느라 떠들썩하다.

드디어 슬롯자가 마이크를 잡더니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한다. 한복을 입은 우리 ‘아부지’가 멋쩍은 듯 천천히 앞으로 나오신다. 다들 큰 박수로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1934년생 아버지의 회갑 잔치 풍경이다.


슬롯자는 더 멋지게 아버지의 약력을 소개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우리 아버지를 수식하는 건 ‘좋은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 외엔 없었다. 배운 건 많지 않으셨지만 당신의 노력만으로 번듯한 사업체를 일궜고, 하루도 쉬지 않는 노동으로 사 남매를 키웠다. 그때 이미 우린 막내를 제외하고 모두 결혼을 한 터라, 아버지는 며느리와 사위 둘에, 손자손녀가 넷이나 있는 다복한 할아버지였다.


12월인데도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인지 실내가 후끈했던 기억, 아버지의 표정이 좋으셨던 기억이 있다. 다만, 팔순 잔치에나 어울릴 법한 음악은 나로선 적응하기 힘들었다. 슬롯자가 자꾸만 딸들에게 춤을 추라고 해서 싫었던 기억도 남아 있다. 결혼식 뒤풀이 때도 남편 친구들의 과도한 춤 요구에 성질이 났던 나 아닌가. 대체 누구를 위해 그렇게 춤을 추라는 건지, 원. 동생과 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같은 트로트를 부르는 것으로 때웠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 난 고작 스물여덟 살이었다.




2년 전 여름, 남편의 육십 세 생일에 난 캐나다 밴프에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형제가 미국/캐나다 여행을 함께 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평소 생일(물론 회갑은 좀 다르긴 하다)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허전한 마음은 딸 S가 생일상을 차려 주는 것으로 달래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해가 가기 전에 함께 파리로 회갑 기념 여행을 떠났다.


올해는 66년생 ‘적말띠’인 내가 회갑을 맞았다. 남편의 회갑 생일 때 지은 죄가 있던 터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밥 한 끼 먹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S가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을 내민다. 언젠가 통화를 하다가 노트북이 있으면 좋지, 그 정도로 얘기했던 것 같은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자기는 싼 걸 찾느라 구형 모델을 사더니, 엄마에겐 최신형 맥북을 안겨 준다. 저가형으로 나온 거라 안 비싸다고 하는데 그럴 리가. 다들 대학교에 입학하면 고사양 노트북을 하나씩 사준다던데, 그것도 못해 준 엄마에게 늘 좋은 걸 주려는 그 마음이 고맙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밤, 가족들과 함께 산바카라하며 아버지의 회갑잔치를 떠올렸다. 나는 아직도 내 나이를 실감할 수가 없다. 그 시절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어른 같은데 나는 여전히 철이 덜 든 것 같다. 언제쯤 나이에 걸맞은 내가 될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아버지는 회갑을 기점으로 크리스천이 되었다. 엄마가 그렇게 전도를 하려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시더니, 회갑잔치에 온 목사님이 “이제 교회에 나오셔야죠.” 이 한 마디에 마음을 바꾸셨다. 그야말로 ‘빅뉴스’였다. 아버지는 목사님과 약속한 대로 바로 다음주부터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그리고 엄마가 치매 때문에 교회에 나가기 힘들어 하실 때까지 함께 했다.


한편, 나는 회갑이 되었지만 이렇다 할 계획이나 결심은 없다. 그저 지금처럼 수영하고, 바카라 읽고, 글 쓰고, 영화 보고, 피아노 치고, 스페인어 공부하고, 가끔 친구들 만나고, 때론 여행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욕심부리지 않고 현재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생일 다음날, 동네 친구들이 회갑 축하 번개를 하잔다.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는 하지만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 준 적은 없다. 그런데 회갑은 다르다고, 지난주에 벚꽃 구경하자고 만났는데 또 보잔다.

A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까운 포구로 갔다. 초봄인데 살짝 덥기까지 한 날씨, 그래선지 하늘도 바다도 더없이 파랗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엄마 생각을 한다. 이 좋은 때 나를 낳아주셨네…. 엄마 생신 때 내가 미역국을 끓여드린 적 있었나. 성질 급한 엄마는 늘 당신이 미리 음식 준비를 하시곤 했다. 불쑥 엄마가 보고 싶다.


평일 낮인데도 자리가 꽉 차 있는 횟집 한구석에서 도다리 회와 간자미 무침을 앞에 두고 건배를 한다. “새로운 삶을 위하여!” “이제부터 다시 한 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귀한 인연들. 기꺼이 시간을 내고 굳이 밥을 사주는 친구들이 더없이 고맙다.


네 명의 멤버 중에 이제 두 사람이 육십 줄에 들어섰다. A언니는 어서 노인복지관에 회원 등록하라고 성화다. ‘만 60세 이상 어르신’(가입 조건이다)이 되었으니 같이 경로식당에 가잔다. 집에서 혼자 점심 차려 먹기 귀찮다나. 아, 하지만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계속 미적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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