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소릴 못하는 사람입니다만

by안희정

“넌 남한테 싫은 소리 하나 못하잖아.”


방심하고 있다가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말을 들었다. 순간, 내가 심각한 결격사유를 가진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나를 깎아내리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단 한마디도 맞받아치지 못했다.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어색한 웃음까지 지었으니,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만 증명한 셈이었다.


몇 년 전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바카라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서점에서 그 바카라을 발견했을 때 호기심에 몇 장 들춰보았다. 무례에 대처할 수 있는 기막히게 멋진 비법을 알고 싶어서였다. 다만 기대했던 방향과는 달라 몇 장 안 읽고 덮고 말았다. 설령 읽지 못했던 부분 어딘가에서 그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던 확실한 비법이 숨어 있었다 하더라도, 어차피 무례한 사람에게 단호하고 깔끔한(?) 대처를 제대로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강력한 대응에는 상대를 다시 보지 않을 각오와 이후의 평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도 세트 상품처럼 따라붙기 마련이니까.


‘사람 좋다’는 말은 ‘마음이 약해 남에게 끌려다닌다’로, ‘착하다’라는 말은 ‘다루기 쉽고 만만하다’로 읽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남에게 싫은 소리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사는 나는 어쩌면 세상이 말하는 ‘사람 좋고 착한 사람’ 분류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혀 놀랍지도 않게 내 속내를 살짝만 들춰도 차마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잔졸하고도 살스러운 미움이 폐허에 가득한 잡초처럼 자라 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고 몇 날 며칠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타인 향한 미움의 끝판왕으로 등극하기도 한다. 열탕에서 냉탕으로 들어가듯 상대를 탓하며 분노로 들끓다가도 순식간에 자기 비하에 빠져 마음속 냉기에 허우적거린다. 그러니 내가 말을 삼키는 이유는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미움이 얼마나 날카로워질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꽤 설득력 있는 변명이 되려나.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라는 말 뒤에 감춰진 ‘내가 상처받았으니 너도 상처받아야 해’라는 못된 마음을 가슴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싶진 않다.


물론 때로는 반드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도 안다. 떨리는 마음을 겨우 다잡고서라도 자신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그런 자리에서조차 끝내 입을 제대로 떼지 못할 때면 스스로가 답답하고 한심해 화가 울컥 목구멍을 들이받기도 한다. 밤새도록 그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혼자만의 통쾌한 복수극을 수없이 다시 찍으며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닥치면 그때야말로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다짐도 한다. 간혹 소원대로 벼르고 별렀던 말을 할 기회를 잡으면 머릿속 시나리오의 반도 꺼내지 못하지만, 작게나마 내 의사를 밝히고 나면 후련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잠시일 뿐이다. 혹여 상대가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으로 가슴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니까.


이런 구제 불능인 내면을 잘 알기에 결국 웬만한 일에는 그냥 참고 지나간다. 남들이 보기엔 한없이 소심하고 우유부단해 보이겠지만, 사실은 보기보다 쉬운 일만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다. 가슴에 화상을 입더라도 순간 끓어오르는 감정을 꾹꾹 눌러야 하니까. 그렇게 힘든 일이라 징징거리면서도 왜 그렇게 사냐고? 나는 그저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게 아니라 남을 할퀴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지키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뿐이다.


나를 약한 사람의 전형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고한다. 내가 입을 다물고 산다고 해서 함부로 무시하지 마시길. 평소 언성을 잘 높이지 않는 이유는 그럴 수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러기 싫기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내가 상처 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사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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