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이란 있을까

1. 일이 없다


늘 분주했는데, 아이가 아프니 일이 없다. 쫓아다니면서 치울 일도 없고 돌아다님서 지켜볼 일도 없이 옆에 종일 있었다. 병원을 다녀와서 나도 두통이 왔다. 속상하다. 괜히 글을 쓰는 걸까. 내가 내 시간을 찾는게 잘못된 것일까? 모르겠다. 전전긍긍하지 말라는데.. 지켜보지 않으면 아이 컨디션은 알수가 없다. 치울것도 적고 먹지 않으니 설거지 할것도 없다. 놀이터에 쫓아갈일이 없어 무릎도 덜 아파야 하는데 몸도 마음도 가시방석이다. 도리어 아이 빈 자리만 더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까지 곡기를 끊고 굶는 건 작년 추석 이후로 오랜만이다. 매번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내가 이 아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2. 모순


“작가님은 신사임당 이미지를 유지하세요.”

<정원, 뜻밖의 여정> 출간 이후 뾰족한 글을 써보고 싶단 내게 어떤 분이 이야기했다. 그럼 두번째 바카라을 쓸 수 있을까란 또 다른 물음에는..

“글쎄요. 정원이 외 다른 주제로 쓰셔야겠지요.”


모순이라 느꼈다.

훌륭한 어머니이자 글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 단편적으로는 나도(?) 그런 이미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나는 훌륭한 어머니가 아닌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정원이를 키우며 정원을 가꾸는 <선우>. 그리고 상처와 고통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선우>가 되고 싶었다. 난 불완전한 사람이니까.


정원이는 최중증ㅡ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자폐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나 역시 우울증 약을 먹어감서 공부하고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이래저래 애쓰지만 무력함은 늘 깊숙이 깔려 있다.

정원이는 지금 위기 상황이다.

고비는 늘 반복된다.


지금은 아이가 위기니까 조금만 더 애쓰다 나중에 하고 싶은걸 하란 이야길 듣는다. 수도 없이.


나중이란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 나중은 언제까지 미뤄지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한 걸음 물러나 날 돌보는 순간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미안함에 스스로를 자바카라했다. 지금처럼. 누구보다도 열심히 돌보면서도 전전긍긍했다. 정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열심히 돌보다 보면 성장의 기회를 뺐는다는 말도 들었다. 모순이었다. 적당한 거리감이란 경험으로 터득하는 것이었을 뿐. 계속 시행착오는 이어졌다.

정원이의 위기는 때로는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중심을 잡기 위해 나를 돌보았다. 그 과정은 치열했더.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살기 위해서 썼는데.

가장 힘든 순간에 쓰고 그리고 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에너지가 요구된다. 나는 여전히 우울증과 통증과 싸우며 온 힘 다해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며 나를 치열하게 돌보고 있다. 그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3. 6월의 마지막 날.


정원이는 걷지 않는다. 병원에서 집으로 둘이서 아이를 옮겨서 침대에 눕혔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 아이아빠와 둘이 옮겨야 겨우 가능하다. 오늘은 한 걸음도 걷지 않는다. 수액를 맞고 나니 피부도 눈빛도 조금 괜찮은데. 내 기분 탓일까. 뭐가 문제인지 여전히 웅크리고 귀를 막는다. 마음이 무겁네. 내일도 다 쉬어야겠다. 일단 이번주까진 일정 취소 및 정리를 완료했다. 어여 나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가라앉고 얼어붙은 모습을 보기가 마음이 아리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내 눈앞의 일들을 헤쳐나가면 되니까. 하나씩,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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