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6.3 투표지 부족 사태를 통해 본 대한민국
대통령은 “납득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2026년,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한 말이었다. 전국 총 67개의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긴급 수급된 투표 용지로 투표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중 22개소는 용지 부족 사태를 해결하지 못해 투표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특히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투표 용지가 뒤늦게 수급되는 바람에, 선관위의 긴급 결정으로 종료 시각인 18시를 넘어 22시까지 투표가 진행되었다. 이곳은 투표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부 시민들에 둘러싸여 봉쇄되고 말았다. 결국 35시간동안 2,000명분의 표가 담긴 투표함이 움직이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개표 결과가 발표되고 당선자들이 소감을 발표하는 와중에도 논란은 계속해서 커져갔다. 선관위는 이 사태에 대해 유권자의 50%만 투표에 참여할 것을 예상해 투표 용지를 인쇄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여론이 거세지자 이 사태의 바카라임을 지고 노태악 위원장은 사퇴를 했다. 바카라임자는 빠르게 사퇴를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이미 벌어진 뒤였다. 일부 시민들은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철통 보안 속에 사전 배부되었어야 하는 투표 용지가 쇼핑백에 담겨 황급히 수급되는 일도 벌어졌다. 투표 시간을 넘어서까지 계속해서 투표가 진행됐다. 허점 투성이인 선거. 78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것이 오직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준비한 선거였다.
상식적으로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평가원 조차도 수능불응자의 비율을 고려해 답안지를 인쇄하지 않는다. 수험장에는 모든 응시자의 시험지와 답안지가 철통 보안속에 사전 배부되어 있다. 그들이 시험에 응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시험 시간이 종료되면 그 어떤 수험생도 답안지에 마킹을 할 수 없다. 수능이란 제도에 그 어떤 오점도 남기지 않기 위해 언제나 지켜지는 원칙이다. 만일 수능 당일 시험지와 답안지가 부족하고, 뒤늦게 수급한 시험지와 답안지가 일부 수험생에게 배부되고, 이들에게 시험 시간을 연장해준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정시에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과, 시험지조차 받지 못한 수험생들, 그리고 국민들이 이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과연 그것은 잘못된 일인가.
이 사태는 그동안 부정선거론을 제기한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강력한 논거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이번 사태는 ‘부정선거’가 아닌 ‘부실선거’로 바라봐야 한다. 부정선거란 선거의 결과를 조작하려는 의도적 행위다. 이번 선거는 선관위의 부실 행정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부실 행정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사실 선관위의 논란은 이번 사태만으로 끝나지가 않는다. 부정선거론 역시 선관위의 ‘부실’ 행정의 토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 계속되어온 부실 논란은 의심을 야기했고, 선관위의 명쾌하지 못한 해명에 선거의 공정성과 기관의 신뢰성은 점점 스러져가고 있었다. 이번 사태는 그저 선관위의 바카라임론이 아닌, 왜 자꾸 부실한 행정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지 그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해야만 한다.
그동안 선관위는 그 기관의 특수성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선관위는 본래 국민들의 피로 세워진 기관이다. 1960년, 이승만 정부의 내무부는 직접 선거를 관리했다. 그 결과 3·15부정선거가 터졌고 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부정선거에 항거한 시민들의 숭고한 희생은 선관위가 행정부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초대 선관위위원장 사광욱은 박정희 대통령의 방문조차 단칼에 거절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투표권을 수호하고,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의 독립성은 그만큼 신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독립성은 신성함이 아닌 독자성을 갖기 시작했다. 선관위는 헌법이 보장한 독립기관이다.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와 나란히 서는 기관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이 기관은 제대로 된 감사를 받지 않는다. 감사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선관위를 감찰할 수 없다. 대통령도, 국회도 실질적인 감사 수단을 갖지 못한다. 위원장이 사퇴했지만 그를 징계한 기관은 없다. 바카라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는 선관위처럼 감사원의 감찰을 받지 않는 기관이 존재한다. 바로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이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곧 행정부에 속한 기관이기에 그 감찰의 칼끝은 행정부 안에만 닿는다. 다른 부(府)를 감찰하는 것은 권력분립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 기관은 저마다 다른 형태의 견제를 받는다. 국회는 선거로 국민의 심판을 받고, 법원은 삼심제로 스스로의 판단을 검증받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공개된 심판정에서 전국민 앞에서 내려진다. 그러나 선관위는 다르다. 선거를 통해 심판받지도, 상급심에 검증받지도 않는다. 선관위는 독립적인 기관이기에 그들의 행정은 공개된 법정에 오르지 않는다. 오직 선관위만이, 자신을 견제할 외부의 눈 없이 스스로를 관리할 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2023년, 선관위 고위 간부 자녀들의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졌다. 감사원이 감찰에 나섰지만, 선관위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그리고 2025년 2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선관위의 손을 들어주었다. ‘감사원의 선관위 감찰은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선관위의 운영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선관위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통령이 3명, 국회가 3명,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한다. 입법·행정·사법부가 똑같이 3명씩 나눠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설계이다. 하지만 위원장은 9명의 위원이 서로 투표해 뽑는 것이 원칙이나, 대법관인 위원이 위원장을 겸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잡았다. 즉, 선관위원장은 대법관 본업을 하면서 선관위원장을 겸직하게 된다. 여기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겸직의 문제이다. 대법관은 본업이 따로 있다보니 선관위원장은 비상근으로 임하게 된다. 두 번째는 전문성의 부재이다. 선관위원장은 행정 전문가가 아니라 법관이다. 법적 독립성·중립성에는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행정에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해충돌의 문제이다. 법관이 선거를 관리하면, 선거의 결과를 두고 벌어지는 소송을 같은 사법부가 재판하게 된다. 2025년의 판결이 바로 그러했다. 법관이 이끄는 기관의 독립성을, 법관들이 법의 논리로 인정해주었다. 판단하는 자와 판단받는 자가 같은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은 어떠한가. 선거의 독립성과 바카라임성을 어떻게 동시에 지키고 있는가. 미국은 아예 중앙 선거관리기관이 없다. 선거는 주(州) 정부가 법을 정하고, 우리의 시·군·구에 해당하는 카운티가 실무를 맡는다. 연방선거위원회가 선거자금을 감독하고, 선거지원위원회가 투표 장비 기준을 제시하며, 그 위로 연방법원이 법 준수 여부를 감독한다. 한 기관의 행정 부실이 선거 전체의 부실로 이어지지 않게 중첩적으로 운영 및 감시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프랑스 역시 다중 중첩 구조다. 헌법위원회가 대선의 적법성을 감시하고 결과를 공식 선포하며, 선거운동감시위원회, 방송최고위원회, 선거회계·정치자금위원회가 각자의 영역을 나누어 감독한다. 어느 한 기관도 홀로 선거를 바카라임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보다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졌다고 해서 완벽한 선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영국 역시 부실 선거의 경험이 있다. 2010년 총선에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하고 줄이 길어져 마감 시각까지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나왔다. 대한민국의 이번 사태와 꽤나 유사한 사건이었다. 영국의 선관위는 우리와 성격이 다르다. 선거를 직접 주관하는 기관이 아닌, 감시하고 권고하는 기구이다. 선관위는 사고 직후 의회에 법 개정을 촉구했다. 마감 시각 전에 줄을 선 유권자는 반드시 투표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꿀 것, 그리고 선거관리관에게 바카라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부실 선거가 은폐되지 않고 제도의 개선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벌어진 일을 대한민국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저 투표 용지 부족의 해프닝인가, 그간 불거져온 부실 행정의 일면인가, 아니면 선관위의 구조적 결함의 문제인가. 중요한 것은, 이제 피상적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선관위가 대응한 것처럼 현 시점의 문제에만 국한해 바카라임자 사퇴와 재발 방지 약속만으로 문제를 마무리 짓는다면, 유사한 문제는 앞으로도 재발될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선관위의 기형적 구조와 폐쇄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충분히 밝혀지지 않는 세계는 의심을 부른다. 닫힌 문 앞에서 자라는 것이 바로 음모론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곪는다. 폐쇄성을 가진 권력은 공동체의 번영이 아닌, 자기 보존을 향하게 된다. 과연 민주주의에 누구도 바카라임을 물을 수 없는 기관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답은 명료하다.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선관위는 본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4·19의 숭고한 희생 정신 위에서 그 역사를 시작한 기관이다. 이제 역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역사의 부름에 응답해야만 한다. 이에 선관위는 그동안 드러난 다섯 가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을 마련해야만 한다.
첫째, 외부 감사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독립성은 감시의 면제가 아니다. 감사원이든 별도의 독립 기구든, 선관위의 행정을 외부에서 검증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
둘째, 바카라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세워야 한다. 위원장의 사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이 드러났을 때 실질적으로 바카라임을 추궁하고, 제도적 보완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위원장의 겸직과 비상근 관행을 끊어야 한다. 선거를 관리하는 수장이 본업을 따로 둔 채 자리를 겸하는 구조로는, 제대로 된 기관 운영과 독립된 바카라임의 고리를 세울 수 없다.
넷째, 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관의 법적 중립성만으로는 선거를 바카라임질 수 없다. 선거 실무를 아는 전문 인력이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야 한다.
다섯째, 이해충돌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선거를 관리한 자와 그 선거를 둘러싼 분쟁을 재판하는 자가 같은 세계에 속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누구도 바카라임을 물을 수 없는 권력을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견제받는 권력만이 정당하다고 말할 것인가. 그 답을 우리 시대가 내려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