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철학: 노년의 강가에서

<신 앞에 설 수 있는 영혼을 위하여>

<신 앞에 설 수 있는 영혼을 위하여>

인생이란 버스에서 노년의 강, 일흔 고희(古稀)가 벌써 풍경으로 지나갔다.

사라져 가는 풍광이 기억에서 더 소멸되기 전에 반추의 의미로 소강(小講)을 표기해 본다.


대략 젊은 날의 인간은 자신이 쌓아 올린 것들로 서로서로 자신들을 설명하려 한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무엇을 공부했는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이루었는가. 이처럼 사람은 자신의 이력과 성취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마치 거대한 건축물이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듯이, 인간도 배움과 경험을 축적하여 자신의 존재를 완성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세월은 모든 것을 시험한다.

노년은 인간에게 잔인한 스승이다. 젊음의 체력도, 기억력도, 슬롯적 명성도 서서히 소멸로 멀어진다. 수십 년 동안 외웠던 지식이 희미해지고, 한때는 손바닥처럼 알던 분야도 점차 낯설어진다.

예순이나 고희를 보내면서 인생의 황혼에 이른 사람은 문득 자신에게 묻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남는가?"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면서 흙과 돌을 내려놓듯, 인간 역시 삶의 마지막 구간에 이르러 수많은 것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남는 것이 있다.


타고난 기질이다.

어떤 사람은 늙어서도 온화하고, 어떤 사람은 늙어서도 강직하다. 어떤 사람은 가난해도 품위를 잃지 않고, 어떤 사람은 부유해도 늘 불안하다. 젊은 시절에는 슬롯적 규범과 역할이 이러한 본성을 가리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은 점차 자신의 근원에 가까워진다.


마치 겨울나무가 모든 잎을 떨어뜨린 뒤에야 본래의 줄기와 가지를 드러내듯이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유전자의 산물만은 아니다.

그 곁에는 어린 시절의 여러 기억이 있다.


부모님의 여러 모습과 행위,

학교에서 배운 예절, 사람을 대하는 태도,

약속을 지키는 습관, 거짓말을 부끄러워하던 마음.

그것들은 지식이 아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외운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삶의 가장 깊은 곳에 스며든 정신의 영혼적 습관이다.


그래서 노인이 되었을 때 사람은 자신이 읽었던 수천 권의 바카라 제목은 잊어도,

평생 몸에 밴 품성은 쉽게 잊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은 지식을 쌓는 과정이라기보다 영혼을 형성하는 과정에 가깝다.

바카라의 내용은 잊힐 수 있다.

하지만 그 바카라을 읽으며 길러진 사유의 습관은 남는다.


강의의 문장은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강의를 통해 형성된 판단력은 남는다.

판단력으론 누구에겐 도서의 흔적이 기라성 같이 거대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연히 학습된 철학의 개념은 흐려질 것이다.

하지만 철학이 남긴 삶의 태도는 남는다.


따라서 노년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깊은 진실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아는 것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되어 버린 것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삶의 마지막에 신은 인간에게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바카라을 읽었느냐고.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고.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고.


오히려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면서, 너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남는 것은 학위도 아니고 명함도 아니며 재산도 아니다.

타고난 기질 위에 평생의 수양이 더해져 형성된 인격, 그리고 어린 시절 가정에서 심어진 선과 사랑의 흔적뿐이다.

결론적으로 신이 준 DNA와 소양으로 길러진 기질과 본인에게 담지된 무의식의 세계가 그가 챙길 수 있는 고유자산이 될 것이다.


그래도 인간에게 노년은 전체적으론 상실의 계절이 이면서도,

노력하면 삶을 영혼적으로 정리해 나갈 수 있는 지고의 행복한 시절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래서 그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이 드러나는 계절이다.

자신이 소멸로 사라진 뒤에도 끝내 남아 있는 것이 있든 없든,

영혼의 흔적이야말로 '나'라는 한 인간의 마지막 유산이며,

그것이 신 앞에서도 나 스스로 논할 수 있는 '나(吾)'라는 영혼의 한 줄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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