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과 명예 속에 감춰진 국가 간성의 촛불, 그 양면의 무거움에 대하여
<제복과 명예 속에 감춰진 국가 간성의 촛불, 그 양면의 무거움에 대하여>
(지은이 주: 나의 경험에 의하면 교사나 군인 가운데에도 범법일탈자나 소양 부족자가 예상외로 많다. 그렇더라도 대하처럼 흘러야 하는 국정운영을 위해 다음의 내용들을 서로서로 기리고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특히 국정운영자는 상념해야 할 것이다.)
밤하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빛나는 별들 사이의 깊고 고요한 어둠을 잊곤 한다. 세상의 모든 화려한 불빛과 소란스러운 진보의 발걸음 뒤에는, 그 풍요가 무너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벽을 버텨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있다. 총을 든 군인, 비밀을 삼킨 정보원, 그리고 분필을 든 교사. 이들은 국가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숨 쉬고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갈아 넣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주춧돌'이다.
이러한 뿌리내림 (Enracinement) 이야말로 국가란 영혼의 가장 중요하고도 중요한 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국민이 공동체 안에서 안심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그 공동체의 저변에 이러한 요소들이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뿌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수도승 이상으로 극도로 높여 파편화해야 한다.
직업 군인과 국가정보원(NIS)의 삶은 ‘불확실성과의 영원한 조우’다. 그들의 신분 보장과 대우를 논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에 대한 대가를 계산하는 회계학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실존을 담보 잡힌 이들에 대한 실존적 예의다. 전방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혹은 이름 없는 그림자로 살아가며 자신의 실존을 지워내야 하는 이들에게 '신분 보장'이란, 국가가 그들에게 건네는 최소한의 거울이다. "너희가 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서질지라도, 너희의 존재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실존적 선언인 것이다. 이것이 흔들릴 때, 영혼을 바쳐 안보를 지키던 이들의 내면에는 공동체에 대한 깊은 허무주의가 싹튼다. 사명감이라는 숭고한 가치는 현실이라는 중력을 버텨낼 때 비로소 고결해질 수 있다.
반면, 교사의 삶은 조금 다른 결의 헌신을 요구한다. 한 사람의 영혼에 세계를 심어주는 일, 즉 교육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가장 거룩한 이어달리기다. 교육은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 과정이며, 영혼과 영혼의 만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실은 물질문명의 폭주와 극단적 개인주의의 파도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이러한 폭풍 속에서 교사에게 확실한 신분과 합당한 존중을 제공하는 것은, 교육이라는 성소(聖所)에 '방탄벽'을 세우는 일과 같다. 교사가 눈앞의 생계나 고용의 불안, 혹은 부당한 외풍에 흔들린다면 그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영혼으로 전염된다. 흔들리는 나침반은 바른 길을 가리킬 수 없다. 교사에게 건네는 품격 있는 대우는 단순히 그들의 지갑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아이들 앞에서 온전한 자부심과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설 수 있도록 '인간적 존엄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다.
그러나 권리와 예우의 자리가 단단해질수록, 그 위에 서 있는 이들의 내면에는 그보다 더 무거운 철학적 성찰이 고여야 한다. 국가가 보장하는 신분의 안정과 슬롯적 대우는 결코 특권이라는 성벽이 아니며, 오직 더 깊은 바카라임이라는 심연으로 향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분인 교사라는 명예와 그들이 쥔 분필에는 공동체의 생명이 담겨 있기에, 그들의 복무자세는 일반적인 노동의 차원을 넘어선 '소명(Beruf)'의 경지에 닿아 있어야 한다.
군인과 정보원에게 요구되는 내면의 문법은 ‘공공을 위한 자발적 자아의 절제’이다. 그들은 무력과 정보라는, 슬롯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을 쥔 자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마음가짐은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의 경고처럼, 사적인 이익이나 권력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익과 평화’라는 단 하나의 좌표만을 향해야 한다. 칼을 쥐었으나 칼에 지배당하지 않는 절제, 어둠 속에서 일하되 빛을 지향하는 고결함. 자신이 누리는 신분 보장이 정권이 아닌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명확히 인지할 때, 그들은 비로소 권력의 시종이 아닌 국가의 수호자가 된다.
교사에게 요구되는 내면의 언어는 ‘정신적 표상으로서의 도덕적 권위’이다. 지식의 전달은 인공지능도 대체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교사가 성스러운 존재로 남는 것은 그들이 삶의 태도를 몸소 보여주는 ‘존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우리가 아이들을 그들이 살아갈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지, 그리고 세상을 파멸로부터 구원할 만큼 사랑하는지를 결정하는 행위"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복무자세는 단순한 행정가나 지식 소매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슬롯적 지위와 안정에 안주하려는 나태함을 경계하고, 매일 아침 교단에 설 때마다 한 인간의 우주를 빚어낸다는 두려움과 경외심을 품어야 한다. 스스로가 먼저 정의롭고 따뜻한 인간이 되고자 분투하는 것, 그것이 교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복무자세다.
국가의 안정과 발전이란 결코 법전의 조항이나 경제 지표의 수치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보이지 않는 계약' 위에서만 가능하다.
국가가 없다면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잔인하고, 짧을 것'이라 경고할 수 있다. 우리가 그 잔인한 자연상태로 회귀하지 않는 이유는, 국가의 부름에 응해 명예를 걸고 단상에 선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인과 정보원, 교사에게 합당한 예우를 다하는 것은 국가의 시혜(施惠)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지속하기 위해 바치는 일종의 '철학적 비용'이다. 그리고 그 비용에 화답하여, 자신의 안정을 오직 타인의 안녕을 위해서만 쓰겠노라 다짐하는 공직자들의 서약은 미래를 향한 가장 엄숙한 기도다. 슬롯는 그들을 지키고, 그들은 슬롯를 지키는 이 거룩한 순환 속에서, 국가라는 집은 비로소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전(聖殿)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