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교무실에 잠깐 온 그 여선생님 이야기)
다음은 월하(月下)의 공동묘지에 세워진 무시무시한 학교 이야기이다. 깜깜한 그믐이 되어도 푸른 달빛이 감도는 어느 무시무시한 학교가 부산의 동북극단의 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낮에는 밝고 건재한 모습으로 요란하지만 밤만 되면 고요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의 비밀스러운 학교이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 무섭고 무서운 이야기가 전설로서 은밀히 살아있다.
극고원(極高原) 티베트밀교의 비밀처럼 아는 사람만 극히 아는 괴이한 이야기로 가슴에서 가슴을 타고 전해지고 있다. 렌이 알기로는 아마 오늘도 직원들이 다 퇴근을 하고 학생들이 교내에서 다 사라지면 공동묘지의 전설들이 어제처럼 되살아나 적막 속에서 도란도란하게 숨소리를 낼 것이다. 그리고 한밤 내내 경비 한분만 남아 TV를 보다가 스르륵 저절로 주무실 것이다.
이런 학교에 렌이 4년간 복무를 했다. 기억을 회상하면 영화의 스크린처럼 화상이 살아난다. 바로 그 학교의 이야기이다. 렌은 부산의 동북 극단 해안에 위치한 남녀공학 중학교의 도덕교사이었다. 뛰어난 교사는 아니지만 하자(瑕疵)가 있는 교사도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간혹 감명(感銘)을 주긴 주어도, 인기가 흐르는 교사도 아니었다. 공립으로는 두 번째인 이 학교에 오기 전에 사립학교를 두 군데 거쳤다.
부산의 동북극단의 한쪽인 이 작은 도시는 통통거리는 근해용(近海用) 어선을 타는 주민들이 꽤 많은 농어촌복합공단도시이다. 학생들의 상당수가 어촌배경의 태생으로 원초적인 생존의 바다와 이리저리 연관이 있는 부모들을 둔 까닭에 제법 시끄럽고 야만스럽다. 그래도 좁은 지역에만 죽 살아온 아이들이라 학교 밖 저 멀리로 견학을 가면 놀라서 금방 꼬리를 내린다. 좋은지 나쁜지 모르지만 학생에 대한 믿음과 인식에서 큰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시간만 나면 떼를 지어 난장(亂場)을 피우고 야단이지만 어디까지나 농어촌시골주민들의 그저 그런 자제로 잘해야 아프리카 초원의 들개나 하이에나 정도일 뿐이다. 렌이 앞의 몇 학교에서 만난 진짜 악질과는 질이 사뭇 달랐다. 렌의 경험에 의하면 진짜 악질은 교사에게는 잘 덤비지 않는다. 이곳 학생들은 자기들끼리보다 오히려 교사들에게 잘 덤벼든다. 키가 180이 넘는 학생이 덤빌 때는 키가 작은 렌은 난감하다. 학비가 없는 의무교육으로 강제퇴학조치가 없다 보니 노예들처럼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다.
렌은 교사로 있으면서 문제학생들을 학생부로 데려가거나 반성문을 쓰게 한 적이 없다. 더 이상의 시비(是非)가 귀찮아서 렌이 손해를 보더라도 그 자리의 일은 그 자리에서 끝냈다. 렌은 아동기부터 고생고생 하다가 운 좋게 대학을 거쳐 행운(幸運)으로 교사가 되었다. 성장기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하여 키가 덜 자라 체격이 작은 편이다. 성장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려면 체격도 크고 주먹이 셀 필요가 있는데 그렇지 못하여 항상 부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보통을 넘는 외모가 여교사들보다도 더 환히 미(美)로 빛날 정도이며 일에도 성실하고 마음씨도 높게 착실하였다. 작게 아담하게 바라볼수록 여성미가 풍기는 심미적 지성과 교사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상상이상의 은은한 매혹의 분위기가 깊게 흐르고 있었다. 소장(少壯) 시절엔 몇몇 이성(異性) 학부모들의 가슴을 울려 은밀한 유혹을 수없이 당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천성(天性)이 단순해 아무런 사고나 걱정 없이 교사를 여유롭게 하고 있다.
렌은 나름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교원대대학원 석사와 국민총리훈장까지 받았지만 공립학교 경력이 일천(日淺)하여 평교사로 정년(停年)을 해야 할 처지이다. 그래도 몸과 마음이 한창 커야 할 시기에 남모르는 생고생을 많이 한 형편에 교사라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신(神)에게 무척 감사드리며 교직의 하루하루 넘기고 있었다. 또 모든 것에 신(神, God)의 섭리를 믿는 자로, 그를 밀실(密室)에서 안아보고자 안달하는 여성 학부모들의 유혹을 긴 포옹과 깊은 입맞춤에서 그칠 만큼 도덕적 여유(餘裕)가 있는 교사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것이 어쩌면 렌에게는 외로움을 이겨내는 숙명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하여튼 렌은 천성적으로 건전한 교사이다. 이런 렌에게 다음의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났다. 시기는 2011년 쌀쌀한 12월경이다. 렌은 일에 밀리어 퇴근도 못하고 4층 교무실에 혼자 남아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시각은 아마 저녁 8시경이다. 이리저리 밀린 일들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렌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리고 의자에 기댄 채로 잠이 들었다. 깊고도 얕은 잠이었다. 바로 그 시각에 한 영혼이 그 학교에 들어온 것이다. 소리 없이 거쳐 1층에서 4층까지 온 것이다.
렌은 종종 퇴근을 늦게 했다. 도덕교사로서 전공도서를 보기도 하지만, 주로 남은 일들을 교무실에서 혼자서 조용히 마무리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집중도 잘 되고, 실수도 적다. 또 수업 도중에 바쁘게 일하기보단 여유가 있어 더 좋았다. 보통의 교사들은 수업하는 짬짬이 쉬는 시간에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시각이 되면 가뿐하게 사라지지만, 렌은 그렇게 바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여유 있게 남아 일하기를 선호했다. 그래서 4시 30분 퇴근 시각보다 한두 시간 더 있다가 귀가를 했다.
렌처럼 홀로 교무실에 남아서 일을 하는 것도 습관이 되면 즐겁다. 또 교사에게 독서는 중요하다. 밀린 업무든 교재용 독서를 하든 조용한 교무실이 마치 그만의 연구실 같다. 그때가 그 학교 4년 차로 다음 학년도에는 다른 학교로 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 늦다. 창문 밖이 이미 깜깜했다. 자신도 모르게 잠깐 잠든 꿈 속에서 렌은 잠시 사념(思念)에 잠긴다.
렌이 공립에 오기 전 사립에서는 퇴근시각에 맞추어 제때 퇴근을 했다. 늦게 남아서 할 만한 일들이 없었다. 사립에서의 학교생활도 시끄러운 가운데서 매일매일 즐거웠다. 사립의 두 학교에 걸쳐 통산 21년간 근무했는데, 사립에서는 교무실에 꼴 보기 싫은 녀석이 있더라도 참고 같이 근무를 해야 한다. 그런데 공립학교는 근무기간이 4년으로 일단 정해져 있어 그런 녀석이 생겨도 다들 알아서 다른 학교로 척척 잘도 자동으로 가 주었다. 렌에게는 이게 아주 매우 너무나 감사하고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렌은 이제 사념(思念)으로 더 깊이 잠이 든다. 바로 그때 교무실 창가에 어떤 분이 깜깜한 가운데 홀로 하얀 모습으로 렌을 주시(注視)하면서 아까부터 서 계셨다. 꾸벅꾸벅 졸다가 퍼뜩 느낀 당시의 느낌으로 그랬다는 것이다. 바로 그 시각에 그 학교에 들어온 영혼인 것이다. 현관을 거쳐 4층까지 렌이 있는 곳까지 서서히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렌이 깊고도 얕은 미몽(迷夢)의 느낌으로 그분을 보니 그분은 놀랍게도 바로 1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신 여선생님이었다. 너무나 훌륭하신 분이었다. 미적인 외모에다가 매력의 격조가 물씬 넘치는 높은 분이었다. 미술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인기도 상당했다. 그렇게 강하고 매력적인 분임에도 불구하고 안으로는 아픈 데가 많았다.
임신이 잘 안 되고 수술도 여러 번 했고 하혈도 몇 번 있었다는 것이다. 하혈이야기는 앞전의 여(女) 학교장이 다른 여교사들과 복도에서 하는 이야기를 렌이 옆에서 듣고 아는 정도이다. 임신 후 유산(流産) 이야기도 들었다. 매력 이상의 아름다운 분인데도 그런 슬픔이 있었다는 것이다. 옆에서 들은 내용이지만 다 사실이었다. 바로 그분이 지금 창가에서 렌을 꿈속에 몰아넣고 아까부터 주시(注視)하고 있었다.
렌은 미몽(迷夢)의 꿈속에서 그분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또 보았다. 어두운 실내 창가에 비친 그분의 모습이 너무나 단정하고도 경이로웠다. 렌이 이윽고 말했다.
“아니 작년에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냥요. 학교가 궁금해서 왔습니다.”
“그럼 들어오셔서 저랑 이야기하다가 가시죠.”
“아니에요. 이제 가야 합니다. 1층에서 보니 불이 켜져 있어 와 봤습니다.”
창가의 불빛에 희미하게 비친 그분의 모습이 더 경이로웠다. 렌은 계속해서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이렇게 올 수가 있나 하는 것이 꿈속에서 오히려 그게 더 궁금했다. 그분은 렌을 잠시 보다가 시간이 없다며 가려고 하였다. 렌은 꿈속에서 비몽사몽(非夢似夢)으로 하나뿐인 교무실의 출입문을 열고는 사라지는 그분의 뒷모습을 봤다. 4층의 복도모서리를 돌아 하얀 옷자락의 뒷모습을 보이면서 사라졌다. 소리와 흔적 없이 가신 것이다.
그리고 보니 작년에 렌이 그분의 마지막 본교모습을 본 것이다. 마지막 장례식 날 그분의 영정이 장례차를 타고 본교의 교문 안까지 들어와서 잠깐 지체 후 가셨다. 불교신자로 비구니 두 분도 동승해서 왔다. 비구니 두 분의 염불경 속에서 교직원과의 이별을 교문 안에서 나누고 애도(哀悼) 속에서 가셨다. 겨울방학 중이라 학생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학부모도 안 보였다. 오직 교사 몇 분과 렌만 있었다. 이상하게 남교사들이 안 보였다. 교감도 안 보였다. 남교사는 렌뿐이었다. 이상하게도 행정실의 직원도 전혀 안 보였다. 왜지?
마지막 그분의 영정차량이 애도 속에서 교문 밖으로 빠져나가 멀리 북쪽으로 길을 몰아 미끄러져 빠르게 나아갔다. 그리고는 먼발치 모퉁이에서 영락공원 쪽으로 사라졌다. 슬프고도 슬픈 모습이다. 그런데 장의차량이 교문 밖을 나서 큰길로 오르자마자 슬퍼한다는 교사들이 차가 아직 멀쩡히 시야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문 안으로 바로 싹 다 들어가 버렸다. 결국 렌 혼자 그분의 영정차량이 길을 따라 사라지는 모습을 마지막 끝까지 본 셈이다. 이거 정말로 교사들이 슬퍼서 온 것인지, 슬퍼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놀러 온 것인지 렌은 헷갈렸다.
그날 화장(火葬)하는 영락공원을 거쳐 부산추모공원으로 모셔졌다. 장례식장에 유족으로 여동생 두 분이 있었는데 먼저 하루 전에도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봤지만 언니 못지않게 무척 미인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밑의 동생 되는 분의 말씀이 생각났다. 장례 마지막 하루 전 성모병원장례식장에서 건너들은 이야기로, 언니의 결혼 전에 그 동생의 꿈속에 언니가 나타났는데 이마에 선혈이 낭자한 채로 서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놀라고, 위험한 꿈이라 결혼을 파기하라고 몇 번인가 말하려고 하다가 차마 못했고 이제야 말한다고 하였다. 선혈이 낭자한 언니의 모습!! 이를 차마 말 못 한 동생의 고뇌!!!
추모공원의 동편 1층의 끝 칸에 그분의 영정(影幀)이 모셔졌다. 들어가는 1층 동편 안의 영안실 입구엔 미니공원이 빨갛게 잘 꾸며져 있었고, 떠난 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작은 우체통도 빨갛게 칠해져 있었다. 렌은 영정으로 거치되는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온전히 보았다. 그런데 교사들의 대화에서 작년 학교장은 그런 말이 없었는데, 그해 온 학교장은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그분이 사고로 돌아간 그날 밤 자기 꿈속에 그분이 나타나서 “교장선생님 덕분에 잘 있다가 갑니다.”라고 하면서 하직인사를 했다고 했다. 렌으로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었다. 불시의 사고사(事故死)인데 학교장의 꿈속에 나타나서 하직인사를 했다고? 렌은 그 꿈이 사실이라도 웃기는 이야기로 여겨졌다. 그런데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이 되고 만 것이다. 장례가 끝난 후 교사들은 담소도 할 겸 해운대 쪽으로 장소를 정해 모두들 가고 렌 혼자 집으로 왔다.
바로 그렇게 돌아가신 여교사 그분이 방금 렌이 있는 교무실을 다녀간 것이다. 렌은 미몽 속에서 스르륵 잠이 깼다. 깨자마자 정신이 번쩍했다. 머리끝이 곤두섰다. 순간 오싹 소름이 끼쳤다. 작년에 돌아가신 분이 아닌가?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그는 놀라 가방을 빨리 챙겨 1층 행정실로 갔다. 당일 경비하는 분이 TV를 느긋하게 열심히 보고 계셨다. 사실을 그대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늦게 퇴근하는 것도 미안한데 다른 별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영감님, 먼저 갑니다.”하고 인사만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렌은 그의 차로 귀가를 했다. 차로 가면서 렌은 갑자기 또 오한이 왔다. 꿈속에서 분명히 교무실의 출입문을 열고 그분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깨어날 때 교무실의 문은 그대로 닫혀 있었다.
그 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미신(迷信) 같은 괴이한 이야기라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다음의 해운대 신도시 학교를 거쳐 마지막 그의 근무교가 부산 기장군의 정관에 있는 추모공원 근처이고 출퇴근길이라서 일찍 마치는 날에는 그분의 안식처에 몇 번 가 보았다. 봉안함 영정사진이 처음엔 하얀 드레스차림이었는데, 그 뒤엔 수수한 푸른빛의 스웨터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실제 모습보다는 덜 예뻤지만 창백하고 불안한 느낌을 주는 드레스보다는 안정감이 있는 모습이었다. 몇 번 더 가다 보니 렌보다 19년 연하로 표기된 명패(冥牌)가 새삼 보였다.
슬프지만 그런 일은 머지않아 먼지처럼 공중에 몇 번 떠돌다가 다 사라진다. 2003년 3월에 개교한 지 10년도 안 되는 그런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학교의 교정은 원래는 공동묘지 터이었다. 신라시대부터 써 내려온 수많은 무덤이 있던 곳이었다. 마을에서 조금 멀고 햇볕이 잘 들어서 공동묘지 터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밤이 되면 뭔지 모르게 교정이 여기저기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렌이 그 학교에 가기 전에도 어떤 여교사님이 그 학교에서 재직 중 사고사로 가셨다는 소문이 있었다. 듣는바 상당한 인격자였다고 하였다. 그때 들은 이야기로 그 학교는 이상하게도 2년쯤 주기로 교사들이 꼭 사고사로 가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미술교사 그분이 돌아가신 1년 반 후에 그 학교에서 그분과 같이 근무한 또 한 분의 여교사님이 다른 학교로 전출을 가서 얼마 되지 않아 사고사로 돌아가셨다. 문상(問喪)을 가니 그때도 교사들 사이에 2년 주기(週期)의 전설이 낭설(浪說)로 떠돌았다. 그런 사후 2년 때 다음 학교에서 전출을 앞둔 행정실장님이 렌에게 바로 앞에 근무한 학교의 분위기를 남교사 모임 때 물었다. 다소 걱정하는 느낌의 분위기라서 렌은 즉시 이렇게 답했다. “그 학교는 전설이 가득 찬 공동묘지 터를 무연고로 처리하고 밀어서 세운 학교라서 그런지 교사들이 2년 주기로 꼭 죽는다는 괴설(怪說)이 있는 무서운 학교입니다.” 렌도 모르게 막 터져 나온 무시무시한 대답이었다.
그 말 때문인지 그 행정실장님은 그 학교로 가지 않고 그 지역의 다른 학교로 전출을 갔다. 애석하게도 그런 일들은 교사(校史)에 전혀 남지 않는다. 그냥 당시의 몇몇 교사와 행정실의 직원들만 그때의 일로 기억으로 알뿐이다. 그리고 꼭 2년마다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 학교의 교사들의 사고사가 해거리 격년(隔年)으로 자주 있기도 했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누구나 흠모할 만한 우수한 분들이 사고사로 가신다는 것이다. 렌도 추모공원에서 그분의 영정사진을 볼 때마다 흠모(欽慕)의 어려움을 느꼈다. “이런 분이 가셔도 되는 것이 맞나?”
지난 교직을 회고하는 렌은 스산한 기분을 느낀다. ‘그래도 나에겐 영광의 분들이었다. 어디 가서 내 형편에 그런 분들을 보기나 하겠냐 말이다.’ 사실이었다. 정년 후론 그렇게 매력적인 분들은 결코 단 한 분도 만나지 못했다. 퇴직을 하고 나오니 갑남을녀(甲男乙女)의 세상은 학교처럼 분위기 안락하고 행복한 도시(都市)가 아니었다. 급하면 반말과 욕지거리가 난무했다. 주먹으로 밀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것 같은 팔순노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장면들은 렌이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35년 6개월 근무한 동안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다. 그래도 나름은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보니 렌에게는 교직이 무조건 천국이었다. 교직에서 동료나 학생들에게 한 번도 반말을 해 본 적이 없는 렌이 밖에 나와 보니 호랑이가 토끼를 보고 놀라서 피하는 꼴이 되었다. 렌은 더 생각한다. ‘만약 한 번 더 교직의 생(生)이 온다면 난 정말 학교와 집만 알고 다닐 것이다.’ 사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다. 렌에게 학교는 그만큼 수도원처럼 안전하고 복된 곳이었다. 교사는 그렇게 생활해도 아무런 탈이 없는 구조이다. 그만한 대우를 국가로부터 법으로 정해 받고 있다. 학교와 교사들은 백년대계의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사범(師範)의 교육기관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 곳이다.
오늘도 렌은 그 학교의 스산한 교정의 어둠을 타고 일어 난 그때의 일을 회고하면 그 미술선생님의 모든 것을 위하여 괴이한 이야기나 낭설로 여기지 않는다. 렌에게 정말로 일어난 사실로서, 밤마다 일어나는 묘지의 수많은 영혼의 전설을 위하여 어둠이 내리면 월하(月下)의 공동묘지로 변조되는 교정을 꿈꾼다. 렌이 그 학교의 근무를 4년 온전히 마치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날 교정(校庭)의 모든 모습을 운동장의 옆의 주차장에서 마저 보았다. 4년간의 사사로운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어둠 속에서 2012년의 2월의 겨울비가 인조잔디축구구장에 촉촉하게 낮게 갈려 내렸다. 어둑어둑 깜깜했지만 교정의 불빛에 학교가 은은하게 빗소리에 젖어 공허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 서서히 월광(月光)의 푸른빛 공동묘지로 바뀌는 긴장의 순간이 점점이 무르익고 있었다.
렌이 있던 4층 교무실에는 새로 부임한 30대의 젊은 교사가 미리 와서 불을 켜고 일을 하고 있었다. 밤이면 공동묘지로 변조되어 월하(月下)의 푸른빛으로 바뀌는 이 학교에 새로운 이야기가 잉태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교정의 어느 한 곳에 깊이 묻혀있는 묘지의 오래된 목관에서 한 시신이 먼지를 모으면서 눈을 뜨고 있었다. 렌은 밤에 잠시 찾아온 그 여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아쉽게 이제 물러가고 있었다. 렌의 움직이는 차 뒤로 월광의 푸른빛이 감도는 공동묘지학교의 어느 한 이야기가 밤의 기운 속에서 또 서서히 일어나 렌이 있던 불 켜진 4층을 주시하고 있었다. 원귀(寃鬼)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어느 영혼과 함께 새로이 숙명의 이야기가 창백하게 어두운 밤을 타고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