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에서 아우라를 가진 분들의 특징과 이유와 그 연유

(한 노객의 지난 삶에 대한 어떤 아쉬움과 그 잔상에 대한 직감적 소회)

<지은이 주: 인간의 뇌엔 파충류와 같은 부문이 있습니다. 보는 즉시 바로 알죠. 그 사람은 나보다 강자다. 나에게 이익이 된다. 사기를 치고 있다. 등등 그리고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저분은 범접불가한 아우라가 있다. 이 글은 나의 삶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아우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필요한 분은 참조해 주시면 감사.>


해 질 녘의 공기는 묘하게도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젊은 날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하루의 끝자락에 서면 비로소 윤곽을 드러낸다.
나는 오랜 세월을 건너오며 몇몇 사람을 떠올린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곁에 서 있기만 해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지런해지던 이들.
나는 그들에게서 ‘아우라’를 느꼈다.

처음에는 나 또한 그것을 타고난 기질이나 운명의 편애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은 번쩍이는 재능도, 타고난 외양도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된 나무의 결처럼, 눈에 띄지 않는 시간의 축적이었다.

그들은 대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침묵이 공허하지 않았다.
마치 많은 말을 이미 지나온 사람처럼, 굳이 더 보태지 않아도 되는 얼굴이었다.
나는 한때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자신과의 긴 대화가 끝난 그 사람의 표정이라는 것을.

젊은 날의 나는 늘 증명하려 했다.
내가 옳다는 것, 내가 가치 있다는 것, 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말이 많았고, 표정이 바빴으며, 마음은 늘 어딘가에 쫓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묘하게도 나를 가르친다.
증명하려 할수록 가벼워지고, 피하려고 할수록 더 상처가 깊었다는 것을.

아우라를 가진 이들은 자신의 삶을 변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자기 안에 조용히 내려놓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흉터를 굳이 숨기지 않는 사람처럼.

나는 그 점이 늘 궁금했다.
어째서 이들은 그렇게 담담할 수 있는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들은 고통을 일부러 피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냥 받아주었고,
상처를 받아도 자기 자리를 이탈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의외로 단순한 어떤 것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나로서 신의 뜻에 따라 살겠다.”

내가 이 한 문장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나야 했는가.

어쩌면 아우라는 그 문장 이후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스스로 납득하는 삶을 살기 시작할 때, 나는 비로소 조용해진다.

그리고 그 조용함이, 이상하게도 나의 마음을 흔든다.

나는 이제 점점 나이 들어간다.
눈은 흐려지고, 걸음은 느려졌다.

그 대신 한 가지는 조금 분명해졌다.
사람의 무게는 그가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았느냐로 결정된다는 것.

아우라란,
어쩌면 특별한 무엇을 더한 결과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끝내 비워낸 자리에서 생겨나는 빛일지도 모른다.

삶의 해가 더 저물기 전에 나는 생각한다.
내게도 그런 결이 조금은 남아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잘 살아서가 아니라
많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나 자신으로 돌아오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면, 이 늦은 저녁의 삶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누가 나에게 묻는다.

"혹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습니까?"

"아닙니다. 지금이 더 좋습니다. 다가오는 석양을 맨눈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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