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산, 하나의 계절

풍경은 지나가고 마음은 머물렀다

by이병희


세 개의 산, 하나의 계절
칠선계곡에서 황석산, 적상산까지의 마음이 머문 3박4일


프롤로그
길을 떠난다는 것은 더 많은 풍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머물 마음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다.
2026년 7월 9일부터 12일까지 이번 여정은 세 개의 산과 하나의 계곡을 만나는 시간이었지만 돌아와 보니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풍경보다 마음이었다

칠선계곡은 물이 걸음을 늦추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황석산은 된비알 끝에서 하늘을 만나는 기쁨을 알려 주었으며
적상산은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를 선물해 주었다
산은 모두 달랐고, 오르는 이유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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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
물이 마음을 씻어준 하루
칠선계곡은 지리산의 마지막 비경이라 불린다
맑은 물이 오랜 세월 바위를 다듬어 만든 폭포, 짙은 숲이 드리운 그늘,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물소리는 걸음의 속도를 저절로 늦추게 했다

계곡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바위를 천천히 기억하고 있었다

맑은 날에는 풍경을 만나고, 흐린 날에는 마음을 만나고, 비 오는 날에는 기다림을 배우는 길
그 모든 시간이 결국 산행이 되었다
칠선계곡의 물은 우리의 나이를 묻지 않았다

발끝을 적시는 시원함 하나에 우리는 어느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나이는 젖지 않고, 웃음만 흠뻑 젖었다.

<황석산>
된비알 끝에서 만난 하늘
황석산은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 산이 아니었다
피바위를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너덜길이 시작되고, 로프를 잡고 한 걸음씩 올라야 비로소 황석산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상은 끝까지 사람을 시험했다
그러나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맑은 하늘과 시원한 능선이 한눈에 펼쳐졌다
그 순간 알았다
정상은 높이가 아니라, 견뎌낸 시간의 보상이란 것을.
하늘가까이에 서니, 마음은 오히려 낮아졌다
가장 단단한 바위 위에서 가장 부드러운 생각이 찾아왔다
오늘은 발보다 마음이 먼저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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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이유

적상산은 명산이라는 이름보다 편안한 걸음이 먼저 다가오는 산이다
안국사에서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천천히 걸어도 충분했다
등산로에서 만난 고사목 하나, 생을 마친 나무의 몸에는 커다란 암석이 붙어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얼마나 무거운 시간을 견뎠을까.를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향로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정상은 고요한데, 산꾼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멀리 향적봉과 무룡산.남덕유산 능선이 시원하게 이어지고, 우리는 준비해 온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잠시 바람보다 천천히 쉬었다
적상산은 오래 오르는 산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산이었다

세 개의 산은 모두 달랐다
칠선계곡은 웃음을 선물했고, 황석산은 용기를 남겼으며, 적상산은 쉼을 가르쳐 주었다
결국 걸은 것은 산길이 아니라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향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3박 4일의 일정이었지만 , 계절 하나를 마음에 오래 머물게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계절은, 돌아온 지금도 내 안에서 천천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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