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 중입니다

[다큐멘터리] 제27회 제주여성영화제, 10월 15일~18일, 2026

by서희복

길을 품에 안고 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속도를 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잠시 섰다가 딸려 오는 나뭇잎이 오르다 흩어지는 걸 보았다.


제천堤川과 제주濟州

통통통 내를 건너 거기까지 갔다.


제천에 내가 좋아하는 국제음악영화제가 있다.


영화제 하나를 더 마음에 담는다. 다음에는 관객심사단을 신청할까 흥분도 해보고.


'나만 잘 살 순 없지'


올해 제주여성영화제의 주제다. 유쾌한 젊은 영화감독들을 만나고 마음 다해 다큐멘터리 속을 헤매고 다닌다.


잘 살아낸 이야기보다 잘 지켜내고픈 시간들이 가만가만 다가온다. 여운이 눈으로 이어지고 손을 모으게 하고 핏줄을 따라 조용히 흐른다.


상영 중입니다 (다큐)

조조이야기 (영화)

나만 없어 (다큐)

내게서 무엇을 보나요 (영화)

갱년기 소녀 투쟁기 (다큐)

선희이모 (영화)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를 징검다리처럼 건넜다. 다큐멘터리 안에는 흐린 향수가 고여 있기도 하고 다른 세계에 대한 갈망을 향하기도 하고 웃음 뒤에 놓인 두려움의 갈 곳 없음에 대해 생각한다. 겪었거나 겪을 징후들, 그 낮은 채도들을 정비할 다짐을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시간은 없다.


같이 머무는 꾸준한 시선과 삶을 부추기는 최선의 몸짓, 자기를 포기한 의심과 우울한 동행에서 진실을 알 수 없는 미심쩍은 틈새들, 가슴이 큰 사람이 생명을 안아내는 온도에 손을 모았다. 단편 영화들이 주는 장편 못지않은 여운들이 기껍다.



다큐멘터리 '상영 중입니다'의 신이명 감독을 따라간 거다. 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 올라 한껏 축하도 하고. 못난이 찰보리 쿠키를 선물했다.


걷고 있는 순간마다 같이 하는 감독과의 시간마다 영감을 얻는다. 선물같이. 빛이 드문 곳들을 들여다보며 따뜻하게 필름에 감는 그의 다큐멘터리를 따라가고 있다.



예선작 심사위원이 GV의 슬롯를 보니 나누는 이야기들이 깊다. 서로 귀 기울이고 박수로 환대하고 감싸주는 목소리가 감동이다.


관객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시선을 나누고 기대하는 마음을 전한다.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대답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세상을 읽는다.


따뜻하고 다정한 제주에, 낯가림이 심해 어정쩡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다가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