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선배가 로스쿨 교수가 되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행정법 교수가 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by민법은 조변


안녕하세요.

행정법을 가르치고 있는 민법은 조변입니다.


모교 로스쿨에서 조교수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낯선 것도 많지만 한 달간의 소회를 간단히 간단히 남깁니다.


1. 50명의 과제 답안지를 매주 첨삭하고 있습니다.


매주 변호사시험 기출문제 작성 답안을 50건 정도 읽고 첨삭하고 있습니다. 행정소송 소장, 헌법소원심판청구서, 행정법 사례문제 답안지 등 40~50건의 답안 작성 파일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코멘트를 달고 피드백을 하고 있습니다.


업무량이 많았던 법제처에서도 걸리지 않았던, 손목 터너 증후군이 재발했습니다(예전 전략컨설팅펌에서 PPT 슬라이드를 수백 장 그릴 때 경험했던 손목 터너 증후군이 재발해서 손목 보호대를 늘 착용하고 있습니다). 읽고 코멘트 달고 파일 보내고를 매주 50번씩 반복하니 손목에 무리가 좀 온 모양입니다.


하루에 15건 정도를 검토하면 하루가 다 갑니다.

그래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이 꼬박 걸립니다.


행정법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도 있고, 어느 정도 준비가 잘 된 학생도 있습니다. 출발선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매주 성장하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 코멘트를 했던 부분이 잘 반영된 파일을 이번 주에 만나면 꽤 뿌듯합니다.


2. 질문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교수면 초보이지 않아? 부교수도 아니고..."

저 또한 로스쿨 다닐 때 가졌었던 생각입니다.


지금 로스쿨에 있는 후배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제가 극복해야 할 지점입니다.


매주 100장씩 PPT 슬라이드를 준비해서 6시간의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실무에서 더 중요한 사항도 빠짐없이 알려주었고,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해하고 암기해야 하는 사항도 따로 정리를 했습니다. 낯선 법률이 더 이상 낯설지 않도록, 어려운 판례가 더 이상 어렵지 않도록...


힘들고 버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더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조교수"라는 편견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30분 넘게 질문이 이어집니다.

질문이 꽤 날카롭습니다. 답변이 부족할 때는 저녁에 따로 게시판에 보충 답변을 올립니다.


학생들이, 후배님들이 저를 조금씩 신뢰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믿음이 가야 질문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답을 해주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3. 어려운 것을 쉽게 정리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매주 변호사시험 기출문제를 1회분 씩 풀이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배경은 각 문장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문장에서는 어떤 법적 쟁점이 있는지,

그 쟁점을 토대로 어떻게 목차를 잡아야 하는지,

그 목차를 바탕으로 내용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위 각 단계마다 하나씩 하나씩 같이 고민하고 같이 쓰고 있습니다. 문제만 띡 주고 답만 쓱 읽고 넘어가는 강의로는 변호사시험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시험은 변호사실무를 지향하는 시험입니다.

시험을 잘 준비하면 실무도 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관계에서 쟁점이 무엇인지, 목차를 어떻게 잡고 어떻게 써 내려가는지, 실제로 변호사는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 함께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려운 문제가 있기도 합니다.

실무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쟁점,

실무에서는 찾아보면서 풀어가면 되는 쟁점,

실무에서는 한 번 겪어보면 아무것도 아닌 쟁점이

변호사시험에 드물지 않게 출제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해서 함께 해결하고 있습니다. 혹여 실무에서도 그렇게 해결할 수 있도록.



4. "교수님, 오늘 강의는 강O민 변호사보다 더 좋았어요."


학원가에서 행정법 1타 강사로 유명한 변호사님, 강사님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저보다 그들이 더 친숙할 것입니다. 저도 조금 들어봤지만, 정말 잘합니다.


지난주 목요일, 행정법 사례 강의를 마치고 한 후배님이 저에게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오늘 강의는 강O민 변호사님 실강보다 더 좋았습니다.

그때 이해가 잘 안 되었던 문제가 오늘 강의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찾아보고 고민하며 손목이 시큰거려 가며 그렸던 PPT 자료가 조금씩 인정받고 있습니다. 1문제였지만, 1타 강사보다 나았다고 하니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조금씩 성과가 나오는 듯합니다.


실무 경험의 힘입니다.

송무를 해 본 경험, 행정을 해 본 경험,

지자체와 협업한 경험, 법제업무를 해 본 경험.

이러한 경험으로 설명을 하니 이해가 좀 더 잘 되나 봅니다.


5. 후배들의 시간을 아껴주는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수업시간에 멍하게 있다가, 따로 변시 공부를 하는 것은 비효율입니다.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이해하고 암기하고 정리할 수 있어야, 다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행정법만큼은 수업시간에 최대한 소화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다른 시간에 민법도 공부하고, 형법도 공부할 수 있습니다. 수업시간이 유익하고 도움이 되어야, 효율적인 수험생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저의 시간이 소중하듯 후배들의 시간도 중요합니다.


매주 열심히 준비해서 후배들의 시간을 아껴주는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선배 변호사의 생각입니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파리지옥' 식충식물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