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 거자필반

by어슴푸레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시작과 끝은 이어져 있어서. 둘이 아니어서.


휴대폰 캘린더 앱을 열어, 놓치고 있는 건 없나 재차 확인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이사는 잠정 8월 초로 잡혔고. 그에 따라 남은 한 달. 미션처럼 마무리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클리어 중이다. 지난 화요일엔 9개월간 일본어를 가르쳐 주신 마사코 센세께 손편지와 선물을 건네며 작별 인사를 나눴고. 금요일엔 건강검진협회에 전화를 해서 위, 대장 내시경을 포함한 정밀 건강검진 날짜를 잡았다. 오늘 오후엔 남편 차로 신촌에 가서 연구실 짐을 뺐다. 콜록콜록. 바카라상에서 바카라과 머그를 집어 가방에 담을 때마다 뽀얀 먼지가 팔싹거렸다.


아침부터 단톡방엔 언제 내려가냐는 경신 샘의 메시지가. 면허증을 따고 차가 있으면 발이 넓어진다는 영희의 메시지가. 내려가기 전에 따로 보자는 하라 언니의 메시지가. 잘될 거니 건강 잘 챙기라는 광근 선배의 메시지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지금을 살라는 김지연 박사님의 메시지가. 이사 가기 전에 얼굴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연지 샘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걱정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쭉 읽으니 눈시울이 뜨거웠다. 흡. 숨을 들이마시자 왈칵 쏟아지려던 눈물이 넘칠 듯 말듯 찰랑였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꼽는다. 조찬용 선생님 사모님을 뵈러 수원에 가는 것. 서산에 내려가 부모님께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것. 지도 교수님께 전화해서 상황을 말씀드리고 논문에 대해 상의하는 것. 봉 교수님께 차별 어휘 관련 작업 파일과 주요 이슈 및 회의 사항을 정리해 보내는 것, <게으른 오후>에 가서 대표님에게 이사 건을 이야기하고 남은 강연과 공저 작업을 어떻게 할지 의논하는 것. 약사사 기초 교리반 수계식과 송별회 준비를 차질 없이 준비하는 것. 지연이 아빠를 만나 화재보험을 갱신하는 것. 윤기 생일 즈음으로 시간을 맞춰 둘이 얼굴 보는 것. 윤희 샘을 만나 서로의 시간을 축복하는 것. 둘째 방학 기간 중 하루, 원적 학교에 가서 재학 증명서와 교과서 반납증을 발급받는 것. 전학과 관련하여 해당 지자체의 주무관과 전입신고 등 행정 절차에 따른 날짜를 구두로 정하는 것. 기사님을 불러 세탁기가 덜컹거리다 멈추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끝으로. 작성한 목록을 대조하며 이삿짐을 싸기 시작하는 것.


아이의 농촌 유학 결정부터 최종 신청까지 망설임이 없었다. 두려움도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그토록 여러 상징으로 변주되어 꿈속으로 올려지던 무의식도 더 이상 날 찾지 않았다. 모르는 새, 서서히 평온이 깃들었다. 그 평온 속에서 마침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돌아올게요.
얼마가 걸릴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시작과 끝은 이어져 있어서. 둘이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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