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공감과 배려
▲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 Kyrene KM 2026
교복을 벗고 첫발을 딛는 대학 교정(校庭)에서 청춘의 낭만을 읽기에는 당시 슬롯 분위기가 녹록지 않았다. 내 가치관과 부조화를 이루는 슬롯 현상에 분노하고 좌절하면서 나는 터무니없게 하루빨리 늙기를 소원했다. 나이든다는 것이 내심(內心) 나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로 세워졌던 모양이다.
그랬던 나는 지금 삶의 끝자락을 지내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기록에서나 볼 수 있는 굵직한 역사 현장들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뇌리에 재생된다. 마음은 빛바램 없이 청춘인 듯한데 청년의 몸은 어느새 사라지고 백발과 주름살이 그 자리를 대신(代身)하고 있다. 달라지는 모습이 가끔 낯설지만 대체로 다정하다.
자신의 내면(內面)을 순전히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 않다. 하물며 타인의 마음을 판단하는 일은 참으로 신중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남녀노소 가림 없이 존엄하다. 각자가 지닌 여하한 조건과 무관(無關)하게 그래야 한다. 늙음은 기다리지 않아도 서둘러 찾아온다(https://fishingproductfr.com/@kyrene/86).
존엄(尊嚴)한 존재의 존엄한 삶과 더불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잘 늙어야 한다. 젊음과 나이듦을 내 뜻대로 할 수 없으나 늙어감의 내용은 내 의지로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늙어 갈수록 관계의 무게 중심이 타인(他人)을 향해 기울어지기도 한다.
나의 존재가 타인에 기대지 않고 똑바로 서기 위해서 정신(精神)과 신체의 협업(協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렷한 정신을 담고 있는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거나 방황하는 정신이 건강한 신체를 위험에 노출시킬 때, 주변의 타인은 이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 정신과 신체의 절대가치는 서로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다. 얼굴 화장을 비롯 몸을 가꾸고 돋보이게 치장하는 일보다 단순하고 정갈함이 좋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의 영역이니 거론(擧論)할 일도 아니지만 천성이 그렇다. 각자의 취향과 직업 및
상황의 요구와 능력에 따라 전문가의 손을 빌려 성형을 하고 체형 조정을 하며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노년기의 이러한 노력을 혹자(或者)는 젊음을 향한 발악이라고 비웃는다. 나를 지키고 타인을 자유롭게 하는 수단(手段)의 선택은 오로지 개개인의 몫이다. 마음만 청춘이어서는 안된다. 몸과 마음이 서로를 지켜 줘야 한다. 나에게 적합한 운동과 식단관리(食單管理)를 병행해서 각자의 건강한 삶을 누리면 된다.
나는 여전히 병원 입구만 들어서도 혈압이 급상승하고 심장박동은 내 귀에서 쿵쾅거려 괴롭다. 채혈과 예방주사에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리는 겁쟁이다. 가만히 손등을 바라본다. 탄력을 잃고 얇아진 피부에 파란 핏줄이 선명하다. 온몸을 움직이느라 참 고생이 많다. 움푹 들어간 눈꺼풀 속의 눈동자는 맑음과 총기가 엷다.
바카라을 읽고 하늘과 구름을 보고 나뭇잎 흔드는 바람결마저 바라볼 수 있으니 이만하면 충분하다. 세상 마지막 날까지 나의 손발로 나를 돌볼 수 있길 쉼 없이 기도하고 나름 노력한다. 무탈한 하루 그리고 매 순간의 평안(平安)이 축복이다. 이 글을 만나는 모든 분들의 몸과 마음이 강건(強健)하길 기원한다.
※ 참고 : "절대가치"는, 그 대상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고유(固有)의 가치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