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의 겨울밤은 서울의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빨리 찾아오는 듯했다. 언덕 위라 그런지 골목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도 훨씬 매서웠다. 방 안에서 수면 양말을 치켜올리며 노트북 화면만 노려보고 있을 때, 거실에서 정희 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들 다 기어 나오나! 오늘 무슨 날인 줄 아나!"
거실로 나가보니 정희 씨가 커다란 양은솥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두고 국자로 연신 김을 올리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투박하게 썰린 수육 한 접시와 김장 김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줌마, 오늘 누구 생일이에요?"
"생일은 무슨! 오늘 시장 갔드만 배추가 너무 좋길래 김치 좀 버무렸다. 김치 버무린 날에 수육 안 묵으모 그게 사람이가? 지훈이 니도 퍼뜩 나오나!"
2번 방 문이 빼꼼 열리더니, 초췌한 지훈 씨가 안경을 치켜 쓰며 나타났다. 우리는 홀린 듯 식탁 주위에 둘러앉았다. 정희 씨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 한 점을 손으로 툭 떼어 내 앞접시에 놓아주었다.
"자, 한 입 묵어봐라. 서울 하늘 아래서 내 입에 고기 넣어주는 사람 찾기 힘들제? 여기가 니들 고향 아이가. 묵고 힘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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