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로마네스크 미술
1024년 하인리히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오토 왕조가 단절되었다. 이후 독일의 유력 제후와 귀족들은 선거를 통해 잘리어 가문의 콘라트 2세를 새로운 국왕으로 선출하였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왕권은 특정 왕조 안에서 계승되는 경향이 강했지만, 동시에 유력 제후들의 선거를 통해 새로운 왕의 정당성이 확인되는 선거군주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잘리어 가문은 슈파이어와 보름스 일대를 주요 기반으로 삼았던 프랑켄계 유력 귀족 가문이었다. 왕으로 선출된 콘라트 2세는 1027년 로마에서 교황 요한 19세에게 황제관을 받아 신성로마황제가 되었다.
콘라트 2세는 새롭게 출범한 잘리어 왕조의 황제권을 가시화하고, 왕조의 기억과 영속성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성당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1030년경 자신의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슈파이어에 대성당 건축을 시작했다. 이 성당은 종교적 예배 공간인 동시에 황제와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고, 왕조 구성원들의 죽음과 기억을 기념하는 공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콘라트 2세는 대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1039년 세상을 떠났으며, 건설 중이던 성당에 안장되었다. 콘라트 2세의 통치기에 시작되어 그의 아들 하인리히 3세 시대까지 이어진 초기 건축 단계를 슈파이어 I이라고 부른다.
슈파이어 I은 당시 독일 지역에서 보기 드문 거대한 규모의 바실리카형 교회로 계획되었다. 기본 구조는 중앙의 넓고 긴 예배 공간인 신랑과 그 양쪽의 측랑으로 이루어진 3랑식 바실리카였다. 동쪽에는 성직자들이 전례를 수행하는 성가대석과 반원형의 앱스가 배치되었고, 서쪽 부분 역시 강한 기념비적 성격을 지니도록 구성되었다.
특히 동쪽 아래에는 넓은 크립트가 조성되었다. 크립트는 성당 지하에 마련된 제의적 공간으로, 제단과 성가대석을 받치는 동시에 성당 전체에 장엄한 종교적 분위기를 부여하였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이후 잘리어 왕조의 장례와 기억을 위한 중요한 장소로 기능하면서 점차 황제 묘역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건축적으로 슈파이어 I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거대한 규모와 명료한 기하학적 질서였다. 신랑의 벽면은 반복되는 기둥과 아치에 의해 규칙적인 리듬을 이루었으며, 내부 공간은 길고 수평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슈파이어 대성당에서 볼 수 있는 본격적인 석조 볼트 구조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슈파이어 I의 신랑에는 처음에 비교적 평평한 목조 천장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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