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의 아버지가 마흔의 아버지가 사주신 운동화
운동화 運動靴
1.
운동할 때 신는 신. 또는 평상시에 활동하기 편하게 신는 신.
(표준국어대사전)
저는 지금 기내에 있습니다.
이곳은 중국과 한국 사이,
거주지와 집 사이,
어딘가 경계 위에 놓인 자리입니다.
이훤 시인이 산문에서 집(home)과 거주지(house)를 구별한 이후로,
저는 한국을 ‘집’, 중국을 ‘거주지’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집에 올 때마다 아버지의 나이듦을 느낍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음성 인식이 되지 않았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습니다.
몇 해 전 뇌혈관 시술을 받으신 이후,
아버지의 말은 조금씩 어눌해지고 있었습니다.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버지 스스로가 그 변화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곧 마흔하나가 되는 아들에게
‘새 운동화’를 사주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싼 러닝화로, 세 켤레나.
일흔을 넘긴 아버지가
마흔을 넘긴 아들에게
25년 만에 사준 운동화.
그 앞에서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중학생 때, 교회를 서울로 다녔습니다.
여의도 친구들이 신고 다니던 나이키 맥스 시리즈가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프로스펙스 이상은 어려운 형편이라는 걸
이미 어린 나이에 알고 있었던 저는
열다섯 살부터 신발을 제 돈으로 사기 시작했습니다.
부평 지하상가를 지나
동대문에 ‘두타’가 생겼을 때,
친구와 함께 나이키 가품 운동화를 사러 가던 날이 떠오릅니다.
3만 5천 원짜리 A급 가품 운동화를 신고 교회에 갔는데,
여의도에 사는 친구가 같은 모델의 정품을 신고 왔습니다.
그날 저는
저녁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입학을 기념해 받은 세뱃돈으로
처음으로 나이키 맥스를 샀습니다.
아마도 제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던 소비였을 겁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을까요.
진짜 신발 하나를 사기 위해
물 밖에 나온 생선처럼 파닥거리던 아들의 마음을.
아니면
이제야 떠오르신 걸까요.
그래서
이렇게 비싼 러닝화를
세 켤레나 사주신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건강을 챙기라는 뜻일 수도 있고,
그저 문득 생각나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출국하는 아들을
새 신발을 신고 가볍게 나서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을 떠올리면,
그 마음은
지금의 제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삼십 년쯤 지나
제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야
조금은 알게 되겠지요.
삶은 어쩌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해의 과정 같습니다.
마흔이 된 저는
그 나이에 가족을 두고 부산으로 내려가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
마흔이 된 아들 준서에게
좋은 신발을 사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운동화.
평상시에 편하게 신는 신발.
아마 모든 아버지의 바람은
자녀의 삶이 그렇게
편안하고 순탄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러닝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새 신을 신고
가볍게, 폴짝.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이제는 조금은 무겁게 들립니다.
소중한 분이 멀리 있다면,
이번 연휴에는
전화 한 통이라도 드려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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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비행기에 타면 단편소설 한 편을 읽거나 에세이 한 꼭지를 읽고 단상을 적습니다. 때로는 단어 하나를 붙잡고 ‘단어들’이라는 시리즈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