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것의 의미

이타적인 삶

by버티기

비가 내리고 있다. 여느 계절 보다, 봄에 내리는 비는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긴긴 겨울을 달려와 목이 마른 대지에 생명수를 뿌려주기 때문이다. 이 비 그치면, 봄은 이미 멀리 달아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봄은 잠시 머문 듯 사라지겠지만, 푸릇푸릇 솟구쳐 오르는 생명력을 보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선지 새로운 봄을 맞을 때마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질문해 보게 된다.


출근길 아파트 어귀에서, 어깨와 머리를 기댄 채 도란거리며 걷고 있는 남녀를 뒤에서 보았다. 얼마나 사랑하면 저럴 수 있을까?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애틋함이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지나쳐 가면서 뒤돌아 보기 전까지는 영락없이 연인으로 만 생각했다. 시기심으로 뒤돌아 두 사람을 보고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남자는 첫눈에도 장애가 있음을 알 수 있는 아이였고, 여자는 그에게 만 온전히 시선을 맞추고 있던 어머니였다. 잠깐 들려오는 대화는, 친구들이 장애를 가진 아들을 업신여기는 데 대한 조언을 하는 것 같았다. 조곤조곤 하지만 사랑이 흠씬 묻어있는 목소리였다.


공원을 돌아나가는 직선 길에서 앞서가는 두 남자를 보았다. 건장한 체구와 왜소한 체격의 조합이다. 체격이 작은 사람은 뒤에서 봐도 정상이 아닌 듯 보였다. 큰 체구를 가진 사람이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며, 대답을 유도하고 있었다. 지나쳐 가며 바라보니 이번엔 아버지와 장애를 가진 아들인 듯했다. 잠깐 붙어서 이야기하다, 또 떨어져 걸었다. 그런 와중에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아들에게 쉽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열정이 느껴졌다. 멀리 앞서나가면서 뒤돌아보았을 때도 여전히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같은 아버지의 위치에서 '나는 저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퇴사를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날, 출근길에서 보았던 두 장면이다. 사람들을 진지하게 관찰하며 걷는 습관이 있던 나의 시야에 연달아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장애아를 둔 엄마, 아빠였다. 내게 비친 그들의 모습에는, 장애아를 키우며 겪었을 온갖 고초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온화한 미소를 띠고 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선을 맞추는 모습에선 경외감 마저 느껴졌다. 자식도 엄격히 말하면 타인 중에 하나이다.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들의 모습은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서도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시 생각은 '나는 잘 살고 있는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로 나아간다. '이타적인 사람일수록 더 행복하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식당에 왔다가 크고 무거운 여닫이 유리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노인분들을 위해, 미리 문을 열고 나가실 때까지 보살핀 적이 많았다. 선큰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불편한 노인분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위에까지 모신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느낀 것은 분명 뿌듯한 좋은 감정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이었다. 누군가에게 준 도움으로 삶의 가치가 느껴진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장애아가 없다. 다만 그것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본인 이외에는 타인이라는 관점에서 자식도 타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아들을 쳐다보고 있던 그들의 눈빛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을 얻은 듯하다. 나를 위해 살면서도, 동시에 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는 삶!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의 삶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여정이 될 것이다.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려면, 내가 그 누군가에게 줄 것을 계속 만들어 가야 한다.


공원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었다 지기를 반복한다. 그 시기마다 사람들은 그 꽃들의 화려함을 즐기며 환호한다. 벚꽃, 진달래, 개나리가 피었을 때도 그랬다. 이제 철쭉과 영산홍이 눈을 즐겁게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쳐다본 나뭇가지에 꽃들이 보였다. 푸른 잎들 뒤로 숨어있어 한참 자세히 보아야 보였다. 팻말을 보니 보리수 나무라고 쓰여있다. 가까이 가면 그 화려함이 더 빛났고 은은한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언뜻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피어 그 자리에서 역할을 다한다는 생각이 든다.


척박한 땅에서 잎을 틔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향기를 내뿜는 보리수나무 꽃. 잎 뒷면이 은빛이라 바람이 불 때 반짝이는 느낌이 매력적이다. 멀리서 보면 꽃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가까이서 보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꽃이다.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내면에 가득한 향기를 지닌 사람. 보리수나무 꽃이 그런 삶을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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